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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제 입추가 지나고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예전과 같은 선선한 가을이 아니라 제법 무더운 날씨와 간간이 이어지는 소나기 소식이 이어지는 9월인 만큼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글에는 지난번에 이어 그리스 독립 과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글 말미에 그리스 독립이 과연 해피엔딩이었을지 이야기하면서 끝을 맺었습니다. 과연 그리스 독립의 결말은 마냥 행복했을까요?
군벌들 간 갈등이 시작되다
서구 열강의 지원으로 그리스는 독립을 진행했으나, 정작 독립을 앞두고 갈등에 시달리게 됩니다. 독립 후 정부의 주도권을 두고 기존 충돌하고 있던 세력들이 다시 갈등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초창기 그리스 독립운동 세력은 크게 셋으로 구분돼 있었습니다. 첫째는 군인 세력이었는데 이들은 산악 지역을 중심으로 오스만 제국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이는 등 우수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전통을 중시하는 그리스 토착 세력이 주류라 서구식 근대화를 추구하던 정치인들과 갈등을 빚었습니다.
서구식 전통을 중시하는 엘리트들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민족 의식이 고양된 정치인들로 주로 그리스 도시에서 성장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 군인 세력들을 무법자나 도적에 가깝게 보았고, 자신들을 적극 지원해 준 영국 등 서구 열강에 호의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주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에게해 지역에서 무역과 어업에 종사하던 그리스인들로 초기 화공선과 무장상선으로 오스만 제국의 해군에 대항, 승전을 거두는 데 일조했습니다. 이들은 딱히 정치적 이데올로기보다는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앞의 서구식 엘리트들과 협조했습니다.
초기 그리스 엘리트들과 군인 세력들은 정부의 주도권을 두고 다툼을 벌였고 결국 갈등이 폭발, 독립전쟁 중 내전이 발생하게 됩니다. 특히 그리스 독립을 지원하는 영국 차관이 엘리트들이 주도하던 중앙정부로 유입됐는데, 이를 통해 중앙정부는 군권을 쥐고 기존 군인 세력들을 진압하는 데 활용합니다.
때문에 사실 독립전쟁 당시 그리스인들은 오스만 제국과도 싸우면서 동족 간에도 전투를 벌이는 상황이었는데,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이집트군이 개입하자 갈등은 잠시 소강상태를 보입니다. 이집트군이 무자비하게 그리스군을 진압하면서 추풍낙엽처럼 그리스 독립세력이 몰락한 데다, 사면초가의 중앙정부 역시 사면령을 내려 투옥했던 군사 지도자들을 풀어주는 등 일시적 화해가 찾아옵니다.
대통령 이오아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 암살
어쨌든 그리스 중앙정부는 저항을 계속했고 1828년 그리스 제1공화국의 공식적인 국가원수로 추대된 이오아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 통치에 저항을 이어갑니다.
특히 열강의 개입으로 조금씩 독립의 기운이 보이면서 카포디스트리아스는 중앙집권을 강화해 나갔는데 그 과정에서 기존처럼 지방 세력들과 갈등을 빚게 됩니다. 특히 마니 반도에 위치한 페트로스 페트로베이 마브로미할리스와 갈등이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마니 반도의 마브로미할리스 가문은 그리스 내에서도 저명한 가문으로 1821년부터 독립 전쟁 초창기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들은 마니 반도 지역뿐만 아니라 그리스 전역에서도 명성이 높았고, 중앙권력을 강화하려는 이오아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와 갈등을 빚었습니다.
결국 카포디스트리아스는 반역죄로 페트로스 페트로베이 마브로미할리스를 체포해 투옥했습니다.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인 페트로베이의 형 콘스탄티노스, 페트로베이의 아들인 게오르기오스 마브로미할리스는 카포디스트리아스의 암살을 결심합니다.
1831년 9월 27일, 카포디스트리아스는 미사를 보러 가다 콘스탄티노스와 게오르기오스를 만납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인사를 건네는 척하면서 총과 칼을 휘둘렀고 결국 카포디스트리아스는 교회에서 암살당하고 맙니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카포디스트리아스가 죽은 뒤 동생인 아우구스티노스 카포디스트리아스가 뒤를 이어 6개월간 대통령 자리를 이었으나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는 바람에 고작 6개월 만에 사임하고 맙니다.
그리스의 독립, 해피엔딩이었을까?
그리스를 오랫동안 지배했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처참하게 몰락했지만 막상 독립이 된 그리스의 미래도 장밋빛은 아니었습니다. 오랜 독립전쟁으로 국토가 피폐해진 데다 독립전쟁 중 세력 간의 정치적 투쟁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독립 전후의 그리스의 정치적 혼란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