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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벌써 민족의 대명절 설이 찾아왔습니다. 제법 날씨가 쌀쌀한 한겨울이 이어지고 있지만 온기만은 가득한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글에 이어서 그리스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스만 제국의 몰락
오스만 제국은 한 때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할 정도로 최전성기를 자랑했지만 2차 빈 공방전 실패 이후 서서히 몰락합니다. 서구 유럽은 대항해시대와 기술혁명을 거치며 부국강병을 이루게 된 반면 오스만 제국은 봉건체제에 머무르면서 서서히 몰락하게 됩니다. 특히 유럽 강국들은 발전된 전술과 기술을 앞세워 오스만 제국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오스만 제국은 공세에서 수세로 전환하며 영토 지키기에 급급하게 됩니다.
특히 신대륙이 발견되면서 역사의 무대는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넘어가기 시작했고, 금과 은이 구대륙으로 넘어와 인플레이션을 촉발하면서 오스만 제국 역시 큰 타격을 입습니다. 아울러 황실의 근위대였던 예니체리가 군대를 넘어 정치까지 좌지우지하는 세력으로 발전하면서 개혁은 지체되고, 정치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아울러 표트르 대제의 부국강병책으로 전열을 가다듬은 러시아가 적극적인 남하 정책을 펼치면서 오스만 제국은 큰 곤경에 빠집니다. 러시아는 적극적인 서유럽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오스만 제국에 도전했고, 초창기에는 오스만 제국에게 패배하기는 했지만 점차 세력을 넓히며 오스트리아와 함께 오스만이 보유하고 있던 동유럽 지역들을 차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스 독립운동의 시작 한편 러시아 제국은 오스만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그리스 독립투쟁을 지원했고, 그 결과 그리스인들도 이에 적극 호응합니다. 친 러시아 그리스 국가를 설립하기 위해 러시아 제국에 파견된 요원들이 그리스인들과 접촉을 진행했고 그 결과 1770년 오플로프 사건이 터집니다.
1770년 2월 러시아 함대가 그리스에 도착하자, 그리스인들은 무기를 들고 오스만 제국과 맞섭니다. 초창기 그리스 반군들의 전투는 성공적이었지만 러시아 함대가 철군하는 바람에 전쟁은 결국 오스만 제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리스의 독립 시도에 분노한 오스만 제국은 그리스인들을 대상으로 학살을 가했고, 알바니아인들을 용병으로 고용해 반란 진압에 나섰습니다. 문제는 오스만 제국이 용병들에게 제대로 된 급료를 지급하지 못하는 바람에 용병들이 그리스에 거주하는 투르크인들까지 학살할 정도로 폭도로 변했고, 결국 투르크 정규 군대가 파견돼 용병을 진압하며 소요가 종결됩니다.
그리스 민족의식의 고양
그리스인들은 패배했지만 그것이 독립의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와 별개로 러시아는 오스만 제국의 함대를 격파하며 승리를 거뒀고, 쿠츠크 카이나르자에서 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여기서 러시아는 스스로를 정교회의 보호자로 자임하며 이스탄불에 러시아 정교회를 건설할 권리를 얻었고, 오스만 제국 전역에 러시아 영사를 파견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합니다. 러시아는 이 영사들을 대부분 그리스인들로 임명했고 그리스인들의 영향력은 커지게 됩니다.
한편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유럽에서 들불같이 민족의식이 일어나면서 그리스인들 또한 이에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동유럽에서는 1817년 밀로시 오브레노비치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진행, 결국 오스만 제국이 패배하며 세르비아 공국이 탄생합니다. 오스만 제국은 세르비아 공국을 인정하고 그들의 독립을 승인합니다.
세르비아 공국의 탄생에 그리스인들도 고무되었고, 특히 일찍부터 러시아 오데사에서 독립운동을 준비하던 친우회는 이에 주목, 전국적인 봉기를 계획합니다.
1821년 독립운동의 시작
1821년 2월, 다뉴브 공국에서 그리스인들은 봉기를 일으킵니다. 이들의 선봉은 오스만 제국 출신이었지만 러시아로 이주, 나폴레옹 전쟁을 경험했던 알렉산드로스 입실란티스가 있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리스의 독립을 이끈 알렉산드로스 입실란티스와 그의 독립전쟁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2월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