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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함은 불교에서 부처의 사리(진신사리)나 중요한 유물을 담아 봉안하는 용기로, 주로 사리탑이나 부도 안에 안치된다. 불교 유물 중에서도 가장 수준이 높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사리탑·부도 등과 함께 불교 신앙의 중심 역할을 할 정도로 그 가치도 뛰어나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사리함이 다수 발견되었는데 금속, 돌 등 다양한 재료로 정교하게 제작되어, 시대별 공예와 조각 양식을 보여준다.
삼국시대 이후 나타난 공예예술의 백미
사리함을 제작하는 전통은 고대 인도에서 시작해,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한국의 사리함은 6세기를 시작으로 백제, 신라, 고려, 그리고 조선 시대까지 나타나는데, 주로 절의 탑 내에서 발견된다. 기본적으로 삼중구조로 되어 있는 사리함은 가장 바깥에는 금동 혹은 돌 재질의 외함, 그 안에 금동의 내용기, 가장 안에 수정 혹은 유리병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리함을 만드는 순서는 그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그 재료를 귀하게 여겼는가에 따라 결정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돌, 은, 금, 유리 순으로 가치를 매겼으며, 전국 각지에서 조형적, 공예적, 미술사학적으로 귀중한 사리기가 출토되었다. 대표적으로 익산 왕궁리에서 발견된 사리기, 감은사지 동탑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의 사리함, 불국사 석가탑의 사리함 등을 들 수 있다. 이 사리함은 상당히 고난도의 장식과 세공 기술이 반영되었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사리함을 통해 당대 상당히 진전된 공예 기술을 엿볼 수 있다.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
왕흥사 출토 사리기는 바깥에서부터 청동 사리합, 은제 사리호, 금제 사리병 순의 3가지 용기로 구성되어 있다. 청동 사리합 내부의 은제 사리병의 뚜껑에는 연꽃 문양이 장식되어 있으며, 맑은 물이 채워져 있었다. 금제 사리병의 경우 현재까지 발견된 유일한 백제 황동사리병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 다만 금제 사리병 안에서 사리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사기함 명문에 의하면 백제 위덕왕이 죽은 왕자를 기리기 위해 서기 577년에 왕흥사를 세웠다. 사리함에 새겨진 왕흥사의 창건 연대는 『삼국사기』에 적힌 왕흥사의 연대보다 23년 더 늦게 기록되어 있다. 사리 두 매가 세 매가 되었다는 것은 사리를 넣을 때 신묘한 이야기를 함께 지어서 새긴 기록의 전형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사리함과 사리장치 주변에서는 목걸이, 비녀, 팔찌, 옥, 금동제품, 금제품 등 백제 귀금속을 비롯해 중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보이는 남북조시대 화폐도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상류층의 장식 활용 양상 뿐 아니라 백제가 남북조와 활발하게 교류했다는 것도 파악할 수도 있다.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금제 사리함
1965년에 해체된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제1층 옥개석 중앙과 기단부에서 19매의 금은제 금강경판과 사리 내함, 사리병 등의 사리 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제작시기는 백제 무왕 때일 것으로 추정된다. 왕궁리 석탑의 사리 장엄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귀중한 자료이며, 각종 금속 제품은 공예적으로 아주 뛰어난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사리 내함은 네모 지붕형의 뚜껑을 가진 사각형의 합으로 지붕 위에는 반쯤 열린 연꽃 봉오리를 장식했다. 내함의 표면에는 각 면에 작은 원이 구슬처럼 연결된 연주무늬띠를 돌렸으며, 구름과 연꽃무늬가 결합된 연꽃구름무늬가 표현되었다. 백제의 화려함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걸작품이다. 온통 금으로 장식된 사리함과 그 속에 자그마한 몸체로 구성한 사리병은 백제인들의 정교한 세공의 기술과 장인정신이 묻어나는 뛰어난 예술작품이다. 현대의 기술을 적용해 제작하기에도 쉽지 않을 정도로 작고 정교하며 뛰어난 왕궁리 오층석탑 금제 사리함은 예술품은 백제 예술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최고의 걸작이다.
경주 감은사지 사리 장엄구
경주 감은사지 사리 장엄구는 동·서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사리장치로, 동탑 사리 장엄구는 외함·내함·수정 사리병으로 구성되었다. 외함 네 벽에 사천왕이 압출기법으로 새겨져 있고 내함은 기단·신부·천개로 이루어져 아주 섬세함을 자랑한다. 내함 기단 네 모서리에는 사자가 배치되고, 신부는 복발형 용기를 중심으로 사천왕과 승상이 배치되며 천개는 대나무 마디형 기둥이 받친 형태를 하고 있다. 수정 사리병은 높이 3.65cm로 금 알갱이 장식 뚜껑·받침과 함께 세트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서탑 사리 장엄구는 청동제 사각함과 그 안의 사리기로, 사각함 네 면에 사천왕이 부착되고 주위는 꽃무늬 장식판으로 단을 둘렀다. 사리기는 정사각형 기단과 사리병, 수정 보주로 이루어지며 기단에는 안상과 신장상이 배치되고 난간과 주악상·동자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사리 장엄구는 1959년 서탑, 1996년 동탑에서 발견되었으며, 동탑 사리장엄구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누금기법 등 당대 최고의 기술이 반영된 불교 공예의 백미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