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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 깊이 보기 만추(晩秋)의 전령, 은행나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중한 문화유산이 만든
격조 높은 노란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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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진 가을을 가장 서정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은 단연 노랗다 못해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은행나무를 들 수 있다. 은행나무는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수종으로 기나긴 세월을 이겨내고 강인한 생명력을 땅속 깊이 뿌리내린 은행나무가 국내 곳곳에 있다. 특히 가을이면 그 아름다움이 절정에 닿는 은행나무. 그 중에서도 탁월한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등록된 은행나무가 다수 있다.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살아 있는 화석'으로도 불리는 은행나무들을 소개한다.

서울 명륜당 은행나무

명륜당은 태조 7년(1398)에 건립된 성균관의 강당으로, 현재의 건물은 임진왜란 후 1602년에 중건돼 고종대 수리를 거쳐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이 명륜당을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로, 수령이 약 500년이 넘어 조선 왕조의 역사 대부분을 함께 해온 나무라고 할 수 있다. 나무높이 26m, 가슴높이 줄기둘레 12m의 이 은행나무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무너져 내린 문묘 일원을 복원한 1602년에 새로 심었다. 이후 줄곧 같은 자리를 지키며 명실상부한 문묘 일원의 랜드마크다. 가을이면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며, 한옥 건축과 어우러져 서울 도심에서 보기 드문 가을 절경을 연출한다. 명륜당을 배경을 나란히 선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비슷한 크기로 동서 방향에 나란히 서 있어 은행잎이 바닥에 떨어지면 마치 황금 융단처럼 앞마당을 덮는다. 서울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고고한 품격의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 가을이면 최고의 명소로 등극한다.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높이 26.2m,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 14.47m에 달하며, 남북으로 31m 정도로 넓게 펴져 있는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는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단 한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2024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1317살이 넘을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오래된 나무다. 한 스님이 목이 말라 물을 마신 후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꽂아 놓고 간 것이 자란 것이라는 재미있는 전설도 있고, 나무 속에 커다란 흰 뱀이 살고 있어서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는 신성한 나무로 여기기도 했다.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오래되고 큰 나무로서 생물학적 가치가 높은 데다, 신목으로서 역할을 하고 전설을 가지고 있는 등 민속문화를 알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뛰어나다. 1천 년이 넘는 시간동안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으며, 줄기하고 가지가 균형 있게 퍼져 있어 보호되고 있는 은행나무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멋진 나무로 손꼽힌다.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양평 용문사가 경내에 있는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다. 수령 1,110년, 높이 42m, 뿌리부분 둘레 15.2m로 은행잎이 떨어져 노란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우리나라 은행나무 가운데 나이와 높이에 있어서 최고 높은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줄기 아래에 혹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나무는 통일신라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외에도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는데 그 자리에서 피가 났다는 이야기, 정미의병(1907) 항쟁 때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이 나무만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이 전한다. 또한 나라에 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소리를 내어 알렸다고도 한다. 무엇보다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는 조선 세종 때 정3품에 해당하는 당상관이라는 품계를 받을 만큼 중히 여겨져 오랜 세월 동안 관심과 보살핌을 받으며 그 강인한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경내의 풍경과 어우러져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무렵 마주하는 용문사 은행나무는 근사한 동양화 그 자체다.

청도 적천사 은행나무
사진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청도 적천사 은행나무

적천사 일주문 앞의 거대한 은행나무 두 그루 가운데 오른쪽에 있는 큰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청도 적천사 은행나무이다. 수령은 약 800∼1,00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나무의 높이는 28m, 가슴 높이 둘레는 11m로 열매가 달리는 암나무이다. 수관(樹冠)의 폭은 동서로 28.8m, 남북으로31.3m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예가 드물게 노거수로서 수형이 아름답고 움과 유주의 발달이 특이한 나무이다. 3m까지 외줄기이며 그 위에 3개의 가지가 나 있다. 지표 부분의 원줄기에 접해 서쪽으로 1개, 남동쪽으로 1개, 북쪽으로 1개 등 모두 3개의 움이 수직으로 나 있다. 또한 작은 움이 추가로 10개 정도 돋아나고 있다. 유주는 공기 중에 발달하는 뿌리의 일종으로 나뭇가지에서 뿌리를 향해 자라며,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어 희귀한 가치가 있다. 적천사 은행나무는 보조 국사가 1175년에 적천사를 다시 지은 후 짚고 다니던 은행나무 지팡이를 심은 것이 자라서 이처럼 거목이 되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사찰과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적천사 은행나무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고요히 그 멋스러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괴산 읍내리 은행나무
사진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괴산 읍내리 은행나무

약 1천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괴산 읍내리 은행나무는 높이 14.4m, 가슴높이 둘레 7.1m이다. 현재 청안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다. 줄기 곳곳에 가지가 잘려 나간 흔적이 있고 끝가지의 일부는 죽었으나 비교적 사방으로 고르게 퍼져 자랐다. 이 나무는 고려 성종 때 이곳의 성주가 백성들에게 잔치를 베풀면서 성(城)내에 연못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여 백성들이 '청당(淸塘)'이라는 못을 팠다. 그 주변에 나무를 심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살아남은 것이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성주가 죽은 후 좋은 정치를 베푼 성주의 뜻을 기려 나무를 정성껏 가꾸어 왔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오랜 세월을 견뎌온 나무가 다양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어 운치를 자아낸다.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를 비롯해 학교 담장 너머에 있는 보호수 회화나무, 그리고 그 곁에도 별도의 지위를 얻지는 못했지만 오래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