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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경제 이슈 트럼프 라운드 시대 미·중 간 패권 다툼 열쇠... 첨단기술 전쟁, 누가 승리할 것인가?

기고: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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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경제정책인 트럼프노믹스의 최종 목표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다. 금융위기 이후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민주당 집권 시절에 크게 손상됐다고 본 국제 위상과 주도권 상실에 따른 반작용에서 나온 목표다. 한 마디로 글로벌 이익과 미국 국익이 충돌할 때는 후자를 중시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국익을 증대하려면 2차 대전 이후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와 세계무역기구(WTO)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무역질서로는 한계가 있고 오히려 희생만 당한다고 보고 있다. 그 대신 미국의 국익을 확실하게 증대할 수 있는 트럼프 라운드를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2025년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태동하기 시작한 트럼프 라운드의 실체를 보면 종전의 다자주의와는 구별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가장 눈에 따는 것은 '상향 지향(down up)'보다 '하향 지향(top down)' 방식을 취하는 점이다. 협상 기간을 단축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익을 신속 확실하게 반영시킬 수 있는 강점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과제별 딜(step by step deal)'보다 철저하게 '통합 거래(package dea)'로 임하는 것도 다르다. 국방, 상품 수입시장 및 투자 후보지로서 미국처럼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레버리지 카드가 있을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무역적자, 재정적자, 국가 채무, 경기 부양, 인플레이션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트럼프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기도 하다.

협상 파트너와 관련해 서로의 대안을 놓고 협의하는 'B-게임'보다 상대방이 먼저 최선의 대안을 내놓도록 하는 'A-게임'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도 구별된다. EU,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상대방이 제시하는 협상안에 대해 미국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고 있다. 선 부과·후 협상 원칙을 취하고 있는 트럼프 관세 정책에서 후자에 기대를 거는 시각이 있으나 전자가 최선임을 암시하는 자세다.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의 기술」이라는 책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세 가지 협상 원칙을 토대로 2025년에 기반을 마련한 트럼프 라운드를 2026년에는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1차 목표 시한은 내년 11월에 치러질 중간선거 때까지다. 중간선거에서 집권당은 공화당이 레드 스윕(red sweep)이 붕괴하면 트럼프 라운드는 중단될 수 있는 취약성도 동시에 안고 있다.

트럼프 라운드 시대에서도 핵심이 될 미·중 간 경제 패권 다툼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국이 주도했던 다자주의 시대 양국 관계는 1970년대 들어서자마자 '핑퐁 외교'로 상징되는 '커플링(coupling·동조화)'에서 출발했다. 헨리 키신저 당시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이끌었다. 닉슨의 방문 이후 베트남 종전이 선언된 데 이어 1979년에는 미·중 간 국교가 수립됐다.

국교 수립 이후 2012년 시진핑 주석이 취임하기 직전까지 미·중 간 관계는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변된다. 1989년 존 윌리엄슨 미국 정치경제학자에 의해 만들어진 이 개념은 중국을 포함한 비서구 국가를 글로벌화와 시장경제에 편입시켜 궁극적으로 미국의 세력 확장을 위한 전략을 말한다.

미국과의 국교 수립 이후 중국의 대외경제정책 기조인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워싱턴 컨센서스와 충돌하지 않았다. 오히려 2차 대전 이후 전범인 독일을 포함한 유럽 부흥에 기여한 '마샬 플랜'이라 부를 정도로 중국이 성장하고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데 도움이 됐다.

WTO 가입은 세계 모든 국가와 기업에 이르기까지 중국 편향적으로 만들었다. 마치 중국이 없으면 대외경제정책이나 기업경영전략이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중국 경제는 고도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국민총소득(GNI)이 WTO 가입 직전 미국의 17% 수준에서 시진핑 주석이 취임하기 직전에는 55%로 3배 이상 높아졌다.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이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글로벌 시대에 동참해 급성장한 것은 미국에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과의 경제 패권 경쟁자로 키우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미·중 간 관계가 커플링에서 디커플링으로 변해야 한다는 시각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중국 중심의 팍스 시니카 야망을 꿈꾸었던 시진핑 주석은 취임하자마자 대외경제정책 기조를 '주동작위(主動作爲·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낸다)'로 급선회했다. 행동계획으로 중국의 세력 확장 전략인 베이징 컨센서스를 순차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워싱턴 컨센서스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양국 간 충돌이 정점에 이른 것은 이슬람 율법의 '키사스 원칙(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 따라 강경한 중국 정책을 추진했던 트럼프 집권 1기 때다. 미·중 간 관계 개선에 다리를 놓았던 키신저마저 "제3차 세계대전이 우려될 정도다"라는 극단적인 비관론이 나와 디커플링 전략의 한계를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먼저 손을 내민 쪽은 중국이다. 중앙아시아 정상회담을 계기로 '정랭경온(政冷經溫·정치 군사적으로 냉랭한 관계 속 경제적으로 친밀한 관계)' 기류로 바뀌었다. 미국도 조 바이든 정부 들어 트럼프 집권 1기 때 뒷전으로 밀려 수정된 워싱턴 컨센서스인 '설리번 패러다임'을 재추진하면서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미·중 간 샌프란시스코 합의에 양국 관계가 골든 게이트로 접어들기도 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했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집권 1기 때와 마찬가지로 디커플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전통적인 동맹국보다 더 유연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 대신 중국은 미국이 저버리는 민주주의 국가를 끌어안으면서 다자주의를 지향하고 있어 경제 패권 다툼의 최종 승자가 누가 될 것인가 판가름하기가 더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처럼 안보와 경제 간의 연계가 불가피한 지경학적(geo-economic) 시대에 있어서 경제 패권 경쟁은 첨단기술 주도력에 의해 좌우된다. 지정학적(geo-political) 시대처럼 정치 군사력 주도권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가 하나인 디지털 시대에 관세와 환율 등 국경을 전제로 한 수단은 뒷전에 물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첨단기술 패권 다툼의 혁신과 보안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은 경쟁 촉진적인 기업규제 수단이 가장 효과적이다. 엄격한 배출가스 기준이 자동차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린 '캘리포니아 효과'와 유럽연합(EU)의 까다로운 규칙이 글로벌 벤치마크를 제시한 '브뤼셀 효과'가 대표적인 예다.

앞으로 본격화될 미·중 간 첨단기술 패권 다툼은 '베이징 거버넌스'와 '트럼프 거버넌스' 간 대결로 집약된다. 전자는 권위주의적 통제와 전략적 관용을 경합한 모델이다. 외부에서는 중국의 규제가 첨단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첨단기술 혁신을 촉진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반면 후자는 미국 첨단기술 기업을 규제하는 국가에 징벌적 관세를 부과해 보호하는 모델이다. 개인의 권리를 지경학적 경쟁에 종속시킨다는 점에서는 두 모델이 같으나 그 희생의 대가로 전자는 첨단기술 혁신을 택했고 후자는 첨단기술 기득권을 지키는 쪽으로 민족주의를 택했다는 점이 다르다.

첨단기술은 모든 영역을 재편하는 가운데 두 모델이 인간의 존엄성을 섬기는지 아니면 훼손하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미·중 간 첨단기술 패권 경쟁은 인간의 번영을 저해하지 않고 증진할 수 있느냐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첨단기술 전쟁은 양국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를 파멸로 몰아간다. 갈수록 첨단기술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미·중 간 경제 패권 다툼이 기대보다 우려가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