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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관세정책…'경제적 베트남 전쟁 수렁'에 빠지나?

트럼프 관세정책…'경제적 베트남 전쟁 수렁'에 빠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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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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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관세 유예 협상이 시작된 지도 두 달이 넘는다. 도널드 트럼프 집권 2기 관세정책의 근간인 <미란 보고서>의 시나리오대로 관세에서 환율 문제로 넘어가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미란 보고서>의 핵심은 이렇다. 1971년 금 태환 정지 선언 이후 달러 가치가 고평가돼 제조업이 뿌리째 흔들리고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거시적으로는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동반 확대돼 국가 부도 위기까지 몰렸다고 강조했다. 국별로는 자국 통화가 크게 저평가된 중국,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의 책임이 크다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문제는 달러 가치 고평가를 시정하더라도 과연 제조업 수출이 늘어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특정국 통화가 약세가 되어 수출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마샬-러너(M-L) 조건((외화표시 수출수요 가격탄력성+자국통화표시 수입수요 가격탄력성)>1)'을 충족해야 한다. 한마디로 미국의 수출입 구조가 환율과 같은 가격경쟁력에 민감해야 한다는 의미다.

제3국 시장에서 교역국과의 수출경합지수(ESI)를 구해보면 미국의 제조업은 기술, 품질, 디자인과 같은 환율 이외 비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 약세 유도에 성공하더라도 수출 증대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도 이 근거에서다. 1970년 이후 달러 가치 하락률과 수출 증가율 간 상관계수도 '0.2'로 낮게 나온다.

모든 정책은 의도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부작용이 발생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이 수입 물가 상승에 따른 내수 부진이다. 이미 지난 1분기 성장률이 -0.3%로 역성장했다. 기저 효과로 2분기에는 2% 이상이 가능해 보이지만 관세 영향이 본격화될 3분기 이후에는 성장률이 잠재 수준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자산시장 수축에 따른 역자산 효과도 우려된다. 관세 부과 이후 달러인덱스가 110에서 100 내외로 하락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자금의 탈미 현상으로 주식, 채권, 부동산 가격이 모두 내렸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추정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역자산 계수는 그 어느 국가보다 높게 나온다.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관세에다 달러 약세까지 겹치면 제조 비용과 생필품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경제전망(SEP)에서 Fed는 통화정책의 잣대가 되는 가격소비지출(PCE) 물가 상승률을 성장률 하향 조정 폭보다 2배 이상 상향 조정했다.

지난 5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OMC) 회의 이후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은 올해 말까지 금리인하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6월 점도표에서 중립 금리가 상향 조정되면 작년 9월 이후 추진해온 피벗(pivot)도 종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Fed가 금리를 내리지 못한다면 트럼프 진영이 당면한 최대 현안인 부채 디톡스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국 재무부 금고에 현금이 바닥이 난 상황에서 'X-date(국가 부도 예정일)'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미란 보고서>가 제시한 방안이다. 만기가 돌아오는 미국 국채를 보유한 국가를 대상으로 100년 무이자 국채를 떠넘기는 일이다.

'함께 무너질 수 없다'는 중국과 일본은 미국 국채를 서둘러 팔면서 관세로 시작된 전쟁이 환율에 이어 국채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과연 트럼프 진영은 이 상황까지 몰고 갈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 100일 전후에 열린 <2025 밀컨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남긴 잘못된 <미란 보고서>로는 '마가(MAGA·미국을 더 위대하게)'를 달성할 수 없다는 교훈이 그 답이다.

하루빨리 관세를 철폐하거나 대폭 완화하는 것이 세계 경제 이전에 미국경제부터 살릴 수 있는 길이다. 관세정책을 밀고 갈 수 있는 여건도 종전만 못 하다. 무엇보다 국민 지지도마저 급락하고 있다. 5월 이후 여론조사에서는 40% 밑으로 떨어져 두 번 이상 재임한 대통령 가운데 가장 낮게 나왔다.

트럼프 진영 내부도 권력 다툼으로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대선 과정부터 잠복해 왔던 친머스크와 반머스크 간의 알력으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이 조만간 정부효율부(DOGE)를 떠난다. 중재 역할을 해야 할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와 달리 최근에는 어느 한 편의 손도 들어주지 않고 있어 앞으로 더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적으로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구축한 미국 위주의 국제협력 체제도 급속히 붕괴하고 있다. 집권 1기 때는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등 경제 양대 기관에 재원을 조달해 주지 않아 그 기능이 많이 약화했다. 집권 2기 들어서자마자 정치 군사적으로 유엔(UN)마저 탈퇴를 선언했다. 특히 전통적인 동맹국의 이탈이 치명적이다.

대내외적으로 힘을 잃어가는 관세정책을 포기할 것인가. 이 점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진행된 관세 협상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확실하게 반영할 수 있는 '톱 다운(top down)' 방식을 취하고 있는 점이다. 협상 기간을 단축하면서 미국의 국익을 최대한 반영시킬 수 있는 강점도 갖고 있다.

철저하게 '패키지 딜(package deal·통합 거래)'로 임하고 있다. 국방, 상품 수입시장 및 투자 후보지로서 미국처럼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레버리지 카드가 있을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무역적자, 재정적자, 국가 채무, 경기 부양, 인플레이션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트럼프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기도 하다.

협상 파트너와 관련해 상대방이 먼저 최선의 대안을 내놓도록 하는 'A-게임'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도 눈에 들어온다. EU,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상대방이 제시하는 협상안에 대해 미국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고 있다. 선 부과·후 협상 원칙을 취하고 있는 트럼프 관세정책에서 후자에 기대를 거는 시각이 있으나 전자가 최선임을 암시하는 자세다.

협상에 임하는 자세도 미국의 국익만을 생각하는 '슈뢰딩거 방식'이다. 오스트리아 물리학자인 에르빈 슈뢰딩거의 파동과 입자가 공존하는 양성자 실험에서 유래된 이 방식은 교역 상대국을 파동(경쟁할 힘)은 죽이고 입자(국가)는 살리는 완전 제압식 관세정책을 말한다. 톱 다운, 패키지 딜, A-게임도 이 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결국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취임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국의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가 경제적으로 1960년대 10년 동안 지속됐던 베트남 전쟁 수렁에 빠질 것으로 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집권 1기까지 합친다면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5년째 접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방향을 못 잡고 혼란한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트럼프 관세정책이 장기화함에 따라 가장 우려되는 것이 세계가치사슬(GVC·global value chain)이 본격적으로 무너질 가능성이다. GVC란 '기업 간 무역(inter firm trade)'과 '기업 내 무역(intra firm trade)'으로 대변되는 국제 분업 체계를 말하는 것으로 세계 교역과 경기를 좌우한다.

글로벌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던 1990년대 이후 세계교역증가율과 GVC 간 상관계수를 추정해 보면 0.85에 이를 만큼 높게 나온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세계교역탄성치(세계교역증가율÷세계경제성장률)에서 GVC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처럼 대외환경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타격이 크다.

궁금한 것은 세계 경기가 침체 국면에 들어서자마자 'R(경기침체·recession) 공포'를 뛰어넘어 'D(성장률과 물가 동시 마이너스·deflation) 공포'가 곧바로 제기되느냐 하는 점이다. 그 답은 글로벌화와 네트워킹이 급진전한 1990년대 이후 세계 경제를 가장 잘 설명하는 '대안정기'와 '대수축기' 이론으로 보면 구할 수 있다.

세계 경기는 리먼 브러더스 사태 직후 2009년 6월부터 회복 국면에 들어갔다. 예측기관이 장기 침체 국면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성장률이 최종적으로 확정된 2019년 2분기까지 10년 동안 지속됐다. 기간만 놓고 따진다면 1960년대 케네디~존슨, 1990년대 부시~클린턴 성장 국면을 뛰어넘는 전후 최장이다.

모든 정책은 양면성이 있다. 비상 대책일수록 더 크게 나타난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 직후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식 금융위기 극복책은 두 가지 결정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 하나는 위기 극복 과정에서 풀린 과잉 유동성, 또 다른 하나는 제로 혹은 마이너스 금리정책에 따라 급증한 과잉 부채다.

'위기 후 과제(after crisis)'로 통칭하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출구전략을 적기에 추진해야 대안정기가 지속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추진하거나, 너무 늦게 추진하면 곧바로 대수축기가 찾아온다. 성급한 출구전략은 '에클스 실수', 너무 늦은 출구전략은 '그린스펀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에클스 실수란 1930년대 위기 극복을 지나치게 낙관해 금리인상 등의 긴축기조로 성급하게 돌아서 대공황을 초래했던 당시 Fed 의장이었던 마리너 에클스의 이름을 따 붙여진 용어다. 조기 출구전략은 어렵게 마련된 경기 회복의 '싹(green shoots)'이 노랗게 질려 경기침체라는 '시든 잡초(yellow weeds)'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칭송받았던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은 2004년 초까지 기준금리를 1%까지 내렸다가 인상 국면에 들어갔다. 하지만 중국의 국채 매입 등으로 시장금리는 더 떨어지는 수수께끼 현상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저금리와 레버리지 차입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2008년 이후 금융위기로 연결됐다. '그린스펀 실수'다.

금융위기 이후 대안정기의 내용도 좋지 못하다, 연평균 성장률이 종전 성장 국면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성장의 질도 자산 가격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로 취약하다. 2020년대 들어 세계 경제는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과도기에 놓여있다. 이런 여건에서 트럼프 관세정책이 장기간 지속되면 대수축기가 의외로 빨리 찾아올 확률이 높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탈리아 천문학자와 물리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극한 상황에서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고 던진 말 한마디가 먼 훗날 높게 평가받으면서 '지동설'이 확고해졌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으로 세계 경제 앞날이 당장은 어두워 보이지만 그 속에서 움트고 있는 새로운 통합의 싹이 태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갈라파고스 함정은 또 하나의 고통이다."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보다 도덕적으로 결점이 많은 트럼프 대통령이 고립을 계속 고집하면 마가 구상은 고사하고 미국경제가 선진국 함정에 걸려 추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합만이 미국경제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빅 텐트를 뛰어넘는 그랜드 텐트가 형성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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