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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어느덧 마른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입니다. 무더워진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이번 글에는 지난 번에 이어 그리스 독립 승인과 그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전쟁에 대가를 원한 이집트의 반란
1832년 유럽 열강들과 오스만 제국은 이스탄불에 모여 그리스의 독립을 승인합니다. 동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오랫동안 근 4백 년 간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통치를 받았던 그리스인들이 자기들이 염원하던 민족국가를 세우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 독립은 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장 직접적인 것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몰락이었습니다. 그리스 독립전쟁을 진압하기 위해 많은 군사력을 투입했던 이집트의 무함마드 알리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패배가 확실해질 조짐이 보이자, 일단 전쟁 결과와 상관없이 자신에게 약속한 보상을 요구합니다. 바로 현재 이집트의 총독직(파샤)을 자식들에게 대대로 물려줄 수 있게 임명직에서 세습직으로 바꿔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술탄 마흐무트 2세 입장에서는 무함마드 알리가 사실상 이집트를 자신만의 독립된 왕국으로 영원히 지배하겠다는 생각이다 보니 거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1831년 이집트는 총부리를 그리스에서 오스만투르크 제국으로 돌리게 됩니다.
이집트는 오스만투르크 제국 군을 공격,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합니다. 뒤이어 이스탄불까지 공격할 조짐을 보이자 몹시 다급해진 오스만투르크는 적이었던 러시아 제국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결국 러시아 제국과 프랑스까지 나서 무함마드 알리에게 진격을 멈추고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휴전할 것을 압박합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총독 세습을 허락해 주고 시리아 등 일부 속령을 이집트에 내주는 조건으로 굴욕적인 휴전 협상을 맺습니다.
일개 총독의 반란에 패배해 제국의 술탄이 휴전을 읍소하는 것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권위를 크게 실추시켰습니다. 무함마드 알리 역시 생각과 다르게 오스만투르크 제국 군이 싸우지도 못한 채 무기력하게 패퇴하고 더 많은 영토를 얻게 되자 아예 형식적인 주종관계까지 완전히 청산하고 오스만투르크를 대체할 새로운 이슬람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야망에 불타게 됩니다.
하지만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술탄 마흐무트 2세도 두고 보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무함마드 알리에 대한 복수심에 불탄 술탄은 근대화를 통해 서구식 군대를 육성하며 복수를 꿈꿉니다. 특히 마흐무트 2세는 지병인 결핵이 악화하면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자신이 죽기 전에 화근이 될 무함마드 알리를 제거하려 했습니다.
네지브 전투의 패배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완전한 몰락
1839년, 병세가 크게 악화된 술탄은 기존에 무함마드 알리에게 '기존에 맺은 약속이 모두 무효'라고 선언하며 전군에 무함마드 알리를 토벌할 것을 명했고 오스만투르크 제국 군과 이집트 군은 시리아의 네지브에서 맞붙습니다.
후일 보오 전쟁과 보불 전쟁의 영웅이 된 헬무트 폰 몰트케 등 유럽인 군사고문단도 초빙하고 충분한 물자를 갖추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한 4만 명의 오스만투르크 제국 군은 전투 초기에 승기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진격을 망설이는 바람에 이집트 군의 반격에 순식간에 당해 패배하고 맙니다. 아울러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봉쇄하러 떠난 오스만투르크 해군은 이집트 군이 네지브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집트 해군에 투항합니다. 결국 애써 키워 놓은 오스만투르크 제국 군의 근대화는 허사로 끝나고 맙니다.
이번에도 무함마드 알리는 아들인 이브라힘 파샤를 통해 이스탄불을 공격, 제국을 차지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프랑스가 이집트를 압박하면서 이집트의 실질적 독립에 만족하는 선에서 전쟁을 끝냅니다.
마흐무트 2세는 네지브 전투 종전 직후 사망했고 압둘메지트 1세가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이어받으며 탄지마트 개혁 등 제국의 중건을 시도하지만 실패합니다. 이후 제국은 급속한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스의 독립, 해피엔딩이었을까?
그리스를 오랫동안 지배했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처참하게 몰락했지만 막상 독립이 된 그리스의 미래도 장밋빛은 아니었습니다. 오랜 독립전쟁으로 국토가 피폐해진 데다 독립전쟁 중 세력 간의 정치적 투쟁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독립 전후의 그리스의 정치적 혼란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