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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재미있는 투자의 역사 그리스 오톤 왕의 치세와 크림 전쟁

기고: 미래에셋증권 전략팀 권형우 수석매니저

안녕하세요. 벌써 한파특보가 발효될 정도로 날씨가 급격히 쌀쌀해지고 있습니다. 독감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하니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지난 호에서는 디폴트에 대해 다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세계 최초의 디폴트도 그리스에서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바로 고대 그리스 시대입니다.

그리스의 신화에 따르면 태양과 음악의 신 아폴론은 에게 해에 위치한 키클라데스 제도의 작은 섬 델로스에서 태어났습니다. 때문에 고대 델로스 섬에는 순례자들이 모여들었고 해마다 신자들이 기부한 금과 은 덕분에 델로스 신전의 부는 크게 늘어났습니다. 델로스 신전은 이를 바탕으로 각 도시, 폴리스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금융업을 했습니다. 각 도시들은 델로스 신전에서 차입한 재화를 바탕으로 공공시설을 늘리거나 도시 발전에 활용했습니다.

문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그리스 폴리스들의 세력이 약화하고 북부의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지역을 정복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전역을 정복하는 초유의 사태가 터지자 도시들의 교역량이 급감했고 결국 그리스 도시들은 부채를 갚을 수 없다는 디폴트를 선언했습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델로스 신전은 대여금의 80%가량을 떼였다고 합니다.

그리스 최초의 왕 오톤의 위기

그리스 왕국은 긴축정책을 실시하고 세금을 올리는 등 재정을 관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리스 국민들의 불만은 날로 커졌습니다. 특히 오톤은 바이에른 왕국 출신으로 전제주의 성향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 국민들은 비록 유럽 열강의 도움을 받기는 했으나 피를 흘려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을 해낸 만큼 자유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서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아울러 종교도 문제였는데 전통적으로 오톤은 가톨릭을 믿은 데 반해 그리스 국민들은 그리스 정교를 믿었기에 종교적 차이도 심했습니다. 때문에 그리스 국민들은 오톤에 실망하기 시작합니다.

1843년 아테네 왕궁 앞에서 군인과 시민들이 오톤 국왕에게 헌법 제정을 요구하는 모습을 묘사한 역사화

비참한 실패로 끝난 고토 회복의 열망

한편 쇠퇴해가는 오스만 제국은 계속해서 남하하는 러시아 제국의 공격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흑해 지역을 장악한 러시아 제국은 흑해를 통해 함대를 양성하며 지중해 방면까지 진출을 노렸고,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보스포루스 해협, 다르다넬스 해협을 장악할 계획을 세웁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영국은 러시아 제국의 해양진출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이에 영국은 압력을 가해 러시아 제국의 진출을 막았으나 러시아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오스만 제국을 공격했습니다.

결국 러시아 제국이 오스만에 예속된 도나우 공국들을 점령하자,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 제국에 전쟁을 선포합니다. 사실 이미 오스만 제국은 힘이 없어 러시아 제국과 붙으면 패배할 것이 자명했으나 영국이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을 약속하며 러시아 제국에 맞설 것을 제안했고, 프랑스 역시 오스만 제국을 지원하기로 합니다. 바로 1853년에 발발한 크림 전쟁입니다.

이때 그리스 왕국은 러시아 제국과 함께 고토 수복을 진행합니다. 그리스 국민들은 옛 동로마 제국의 영토를 수복하겠다는 열망에 불탔고 오톤은 이를 묵인합니다. 그리스 민병대와 군인들은 오스만 지배 지역에서 봉기하고 공격을 진행했습니다.

문제는 영국과 프랑스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속절없이 패배하자 이들은 직접 연합함대를 구성해 러시아 제국과 전쟁을 벌입니다. 당연히 러시아 제국의 동맹으로 오스만 제국을 공격하고 있던 그리스 왕국도 영국과 프랑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1854년 크림전쟁 당시 러시아 제국과 영국·프랑스 연합군 사이에 벌어진 세바스토폴 포위전을 묘사한 역사화

한때의 우군이 이제 적군이 된 상황에서 그리스는 영국과 프랑스의 공격에 속절없이 패배했습니다. 연합함대는 그리스 항구도시에 포격을 가해 철저히 파괴했고 주요 도시들을 봉쇄했습니다. 결국 그리스는 속절없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영국과 프랑스에 강화를 요청합니다.

한때의 우방이 가혹한 적이 되다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에 큰 피해를 입혔지만 결국 영국과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전쟁에 따른 배상금을 받는 게 맞으나 정식 참전국도 아니었던 데다 이미 영국과 프랑스에 부채가 밀린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는 배상금을 요구하는 대신, ‘재정감독’을 통해 그리스를 압박합니다. 아울러 그리스의 친러 내각은 영국과 프랑스의 요구에 따라 교체됩니다.

결국 동로마 제국의 부활을 꿈꿨던 그리스 국민들의 열망은 사라지고 파괴된 항구들과 열강의 가혹한 재정통제만 남았습니다. 이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그리스의 왕 오톤을 향합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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