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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특파원 ASML을 지키기 위한 25억 유로의 선택,
에인트호번에서 본 유럽 산업 전략

기고: 제34기 미래에셋 해외교환 장학생 박시현

안녕하세요! 네덜란드 Vrije Universiteit Amsterdam에서 교환학생 생활 중인 미래에셋 글로벌 특파원 박시현입니다.

네덜란드라고 하면 보통 튤립과 풍차, 운하가 떠오르지만, 최근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이 주목하는 곳은 네덜란드 남부의 도시 에인트호번입니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네덜란드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교환학생으로 네덜란드에서 생활하며 현지 뉴스를 접하고 수업을 듣는 과정에서, ASML은 단순한 기업을 넘어 유럽 경제와 글로벌 공급망 전략의 핵심 키워드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직접 방문한 에인트호번 현장과 ASML 사례를 통해 최근 심화되고 있는 반도체 패권 경쟁과 공급망 재편 흐름, 그리고 이를 둘러싼 유럽의 산업 전략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네덜란드 경제의 핵심 기업, ASML은 어떤 회사일까?

ASML 공식 로고
ASML 공식 로고

반도체 업계에서는 ASML을 흔히 '슈퍼 을'이라고 부릅니다. ASML은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사실상 독점 생산하는 네덜란드 기업입니다. 스마트폰, AI 반도체, 자율주행 기술 등에 사용되는 고성능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초미세 공정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ASML의 장비는 필수적입니다.

장비 한 대 가격이 수천억 원에 달할 정도로 고가이지만,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장비를 공급받기 위해 오랜 기간 대기할 만큼 ASML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만큼 ASML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기업으로 평가받으며, 네덜란드 경제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기술 패권 경쟁 속 ASML이 마주한 딜레마

최근 미국과 중국 간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ASML 역시 지정학적 갈등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중국의 첨단 반도체 산업 성장을 견제하기 위해 ASML의 첨단 노광장비 수출 제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은 ASML의 주요 시장 중 하나이기 때문에, 수출 제한은 기업 실적과 네덜란드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안보 협력과 경제적 이해관계 사이에서 네덜란드 정부 역시 쉽지 않은 선택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첨단 기술이 단순한 산업 경쟁력을 넘어 국제 정치와 안보 전략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현지 대학 수업에서도 ASML과 반도체 공급망 문제는 사례로 자주 언급되었습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유럽 기업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토론하는 과정이 인상 깊었습니다. 한국에서 뉴스로 접하던 이슈를 유럽 현지의 시각에서 바라보니, 글로벌 경제가 훨씬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베토벤 프로젝트'... ASML을 지키기 위한 네덜란드의 선택

이러한 지정학적 압박 속에서 ASML은 인력 부족과 주택난, 규제 문제 등을 지속적으로 지적해 왔으며, 이에 네덜란드 정부는 총 25억 유로(약 3조 7,000억 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는 기업 경쟁력 유지를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 정책인 '베토벤 프로젝트(Project Beethoven)'를 추진하게 됩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기업 지원 정책이 아닙니다. 반도체 산업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시대에 정부가 산업 정책과 도시개발 정책을 결합한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정부는 ASML 본사가 위치한 에인트호번 지역의 도로와 철도를 확충하고, 학생 및 전문 인력을 위한 주택 공급을 확대하며, 반도체 전문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투자까지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업 한 곳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자체를 구축하려는 전략인 것입니다.

에인트호번 중앙역 일대의 대형 쇼핑몰과 주변 공사 현장이 보이는 사진
에인트호번 중앙역 일대에서 주거시설과 교통 인프라 공사가 진행 중인 도시 전경 사진

지난 6월 직접 방문한 에인트호번 중앙역 일대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역을 나서자마자 곳곳에 설치된 공사 가림막과 대형 크레인이 눈에 들어왔고, 역 주변에서는 새로운 주거시설과 교통 인프라 구축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역 일대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개발 사업은 도시 전체가 첨단 산업 중심지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글로벌 기업 유치를 위해 국가가 도시 인프라와 정주 환경 개선까지 추진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교환학생 생활 동안 이용했던 네덜란드의 철도 시스템과 도시 인프라를 떠올려보면, 첨단 산업 경쟁력은 기술력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기반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경영학과 학생으로서 바라본 글로벌 공급망 전략의 변화

현재 저는 파견 학교에서 Sustainable Supply Chain Management(SCM) 관련 수업을 수강하고 있습니다. 수업을 통해 배운 내용을 실제 유럽 산업 사례와 연결해 보니, 공급망 전략의 변화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ASML Expedition 표지판이 설치된 건물 외부 전경 사진
ASML 17 표지판과 ASML 건물 전경이 보이는 사진

최근 SCM 분야에서는 비용 효율성뿐 아니라 회복탄력성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과거 기업들은 생산 비용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지정학적 갈등과 수출 규제, 공급망 리스크까지 고려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전략 역시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에인트호번 공항 인근에서 직접 본 ASML 빌딩 17번 구역과 첨단 산업 시설들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철저하게 계획된 친환경 인프라와 연구개발 중심의 산업 환경 속에서 글로벌 공급망 전략의 최전선을 직접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ASML 사례는 단순한 반도체 기업 이야기가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이 어떤 기준으로 미래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Insight Interview: 현지 학생들이 바라보는 유럽 기술 산업의 미래

이와 관련해 현지 대학 친구들과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Q 최근 유럽에서 이야기되는 '기술 자립' 움직임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네덜란드 학생 A는 "네덜란드는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에 친숙한 국가이기 때문에 지금의 분위기가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며 "하지만 공급망 안정성과 기술 독립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유럽 역시 자체 기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Q 정부의 '베토벤 프로젝트'에 대한 청년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프랑스 출신 교환학생 B는 "막대한 예산 투입에 대한 의견은 나뉘지만, 장기적으로는 첨단 산업 일자리 창출과 지역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과 글로벌 산업 이슈를 토론하며 각국이 바라보는 산업 전략의 차이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노트북을 사용하며 강의를 듣고 있는 강의실 사진

마무리하며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의 대규모 인프라 개발 현장과 ASML 빌딩 앞을 직접 둘러보며 마주한 공급망 이슈는 첨단 산업 경쟁력이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전략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ASML은 첨단 기술 기업 하나가 국가 경제와 산업 정책, 글로벌 공급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은 앞으로도 글로벌 경제와 공급망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