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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한국 정말 좋아해요! 안녕하세요!"
믿기 어려울 만큼 밝은 미소의 학생들이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했습니다.
'아오야마 뷰티 아카데미 고등학교'. 이곳은 올해 91세를 맞은 뷰티 연구가 고바야시 데루코(小林照子) 씨가 75세 때 청소년을 위해 세운 고등학교입니다. 오랫동안 성인 전문가 육성에 힘을 쏟아온 고바야시 씨가 청소년을 위한 고등학교 설립으로 방향을 튼 배경에는 현대 학교 교육과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약 20년 전부터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거나, 등교 거부 및 은둔형 외톨이가 된 학생들이 급증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많은 고등학교는 청소년들이 지닌 순수한 미적 감각을 억누르려고만 합니다. 여름방학 동안 자유롭게 금발을 하거나 메이크업을 즐겨도, 9월이 되면 다시 검은 머리로 염색하라고 강요하지요. 15세부터 18세라는, 인생에서 자신을 가장 아름답게 꾸미고 싶어 하는 예민한 시기에 '학교용 나'와 '진짜 나'라는 이중생활을 강요받으며 부모와 교사를 속이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56세에 '미·파인 연구소(美ファイン究所)'를 설립하고, 75세에 뷰티 고등학교를 세운 고바야시 씨의 삶은 "도전에 늦은 때란 없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합니다. 그는 일본의 대형 화장품 회사 '고세(KOSE)'에서 35년간 근무하며 안정된 지위를 보장받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세우려 했을 때, 주변에서는 "당신 나이가 몇 살인데 그러냐"며 강하게 만류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50대와 70대에 미지의 영역으로 뛰어들었을까요?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이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이를 핑계 삼지 않고 사회적 사명감을 이정표로 삼아 나아가는 흔들림 없는 열정, 그것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다음 걸음을 내딛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그 바탕에는 '아트(예술·사회공헌)'와 '비즈니스(사업)'를 결합한다는 분명한 철학이 있었습니다. 돈이 되지는 않지만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일, 그것이 그가 말하는 '아트'이며 봉사 정신의 근간입니다.
이를 일시적인 선의로 끝내지 않고 사회 속에서 지속 가능한 구조로 만들기 위해, 그는 일부러 회사와 학교라는 '비즈니스'의 형태를 선택했습니다. 변화 속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기술'이 있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지키는 삶'을 선택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인생의 막을 내릴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올해 91세를 맞은 뷰티 연구가 고바야시 씨의 사전에는 '은퇴'라는 두 글자가 없습니다. 그의 저서에 나오는 "인생은 계속 오르막 계단이다"라는 말처럼, 그는 지금도 새로운 계단을 한 단계씩 단단한 걸음으로 오르고 있습니다.
고바야시 씨가 "평생 내 힘으로 나를 먹여 살리겠다"고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격동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전쟁 전후의 혼란기 속에서 그는 '기술이 없는 사람'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 얼마나 혹독한 상황에 놓이는지 직접 목격했습니다. 반면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시대에도 존중받으며 자립적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양녀로 들어가 연로한 부모를 부양해야 했던 가정환경까지 더해지며 일찍부터 강한 자립심을 키웠습니다. '손에 기술을 갖는 것'. 이 생생한 유년의 경험이야말로 그를 평생 현역의 삶으로 이끌어온 에너지의 근원이었습니다.
교육에 대한 열정 - 젊은 세대의 가능성을 믿는다는 것
고바야시 씨가 창설한 고등학교에서는 토털 뷰티를 배우면서 고등학교 졸업 자격도 취득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군대식의 획일적인 규율이 없습니다. 학생들은 핑크색, 파란색, 금발 등 각자 원하는 모습으로 학교에 다니면서 생기 넘치게 배웁니다. 교사들은 마치 어머니처럼 따스하게 아이들을 보듬습니다. 과거의 졸업생들이 성장해 이제는 새로운 선생님이 되어 후배들을 가르치는 아름다운 선순환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장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손에 기술'을 익히게 하면, 청소년들은 놀라운 흡수력으로 기술을 습득하고 자존감을 회복합니다. 현재 약 100명의 재학생이 이곳에서 배우고 있으며, 많은 학생이 미용사 자격증 등을 취득해 당당히 사회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재능을 키우고 자립의 길을 열어준 것, 그것이야말로 고바야시 씨 교육론의 가장 빛나는 결실입니다.
피부가 말하는 진심, 그리고 '마법의 손'
반세기 이상 미용 업계에서 수많은 여성을 지켜본 고바야시 씨. 그가 정의하는 외모를 넘어선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내면과 외면이 완전히 하나가 된 삶에 깃드는 것입니다.
고세 재직 시절, 그는 홀로 미용연구소를 세웠습니다. 당시 제품이라는 '하드웨어' 중심이었던 미용 업계에, 미용 이론과 기술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에게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것은 피부를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입니다. 또한 아름다움을 지탱하는 것은 매일의 '식사'만큼이나 '배설(디톡스)'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영양을 공급하는 것뿐만 아니라, 피부의 노폐물과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일의 중요성을 그는 오랫동안 강조해왔습니다.
"사람의 얼굴과 피부에 손을 대면 그 사람의 진심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고 겉으로는 당당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피부에 닿는 순간 그가 안고 있는 깊은 고민과 외로움이 손끝으로 느껴지죠. 피부를 정성스럽게 터치받을 때 사람은 비로소 해방감을 느끼고,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감각을 되찾습니다. 그래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말하자면 '세상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입니다. 타인의 얼굴을 이토록 깊숙이 만질 수 있는 직업은 또 없으니까요."
고바야시 씨가 제안하는 세안법은 따뜻한 수건으로 피부를 데우고, 정성스럽게 어루만지며 씻는 방식입니다. 그의 강연에는 어려운 화장품 성분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한 시간 동안 직접 손을 움직이고 따뜻한 수건을 이용해 케어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그것만으로도 참가자들의 미용에 대한 생각을 뿌리째 바꿉니다.
사람의 손가락에는 수많은 모세혈관이 있어 마음을 담아 만지면 손이 금방 따뜻해집니다. 이 배려가 담긴 손을 고바야시 씨는 '마법의 손'이라고 부릅니다. 타인은 물론, 먼저 자기 자신의 피부를 애정 어린 손길로 대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향하는 첫걸음입니다.
50대와 60대에게 전하는 메시지 - 나다운 미의식 갖기
현대 사회에서는 '매력적인 어른'이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고바야시 씨는 자신의 삶과 태도를 통해 다음 세대에게 메시지를 전합니다.
"50대 여러분,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세요. 곧 갱년기라는 터널을 빠져나오면 몸은 다시 놀라울 만큼 에너지가 넘쳐납니다. 힘든 시기를 지나면 더 강력해진 자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넘치는 에너지를 제발 남편을 향한 잔소리에만 쓰지 마세요(웃음). 꾹 참고 있는 남편이 가엾잖아요. 그것보다는 지금까지 쌓아온 풍부한 경험을 살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에 에너지를 쏟으세요. 유행하는 옷도 입고, 적극적으로 밖으로 나가는 겁니다."
그리고 60대 이상의 세대를 향해서는 "늘 미의식을 가지고, 사회의 아름다운 풍경의 일부가 되라"고 당부합니다. 나이를 핑계 삼지 말고, 나답게 당당하게 자신의 몸을 사랑하며 정성껏 가꾸어 나가는 것 자체가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빛이 된다는 뜻입니다.
나이 듦은 '상실'이 아니라 '축적'이다 - 90대에 비로소 보이는 인생의 절경
세상은 흔히 나이 듦을 체력과 기회의 '상실'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고바야시 씨의 시선은 전혀 다릅니다. 그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곧 '경험의 축적'입니다. 인생의 밑바닥을 치던 시간도, 즐거웠던 기억도 모두 배움이 되며, 시간이 흐르면 이것들은 '가장 강력한 무기'로 승화됩니다.
"시니어 세대는 이미 40~50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오며 엄청난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것은 이미 자기 자신의 피와 살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풍부한 기반을 살려, 단순히 과거의 연장선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일과 도전에 나서야 합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과정을 어떻게 즐거움으로 바꿀 것인가. 그것을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인생 후반전의 진정한 묘미입니다."
고바야시 씨는 "오히려 인생에서 힘든 경험을 한 번도 겪지 않은 사람이 더 안타깝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깊은 절망의 시간이었다 해도, 그것을 나름대로 극복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앞으로의 삶을 지탱하는 강한 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문득 슬럼프가 찾아올 때가 있다는 그녀지만, 90대가 되었기에 비로소 바라볼 수 있는 '인생의 절경'이 있습니다. 그 절경 속에서는 과거의 상처와 기쁨, 실패와 성취가 아름다운 모자이크화처럼 어우러지고, 그 모든 시간은 또 다른 도전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새로운 추진력으로 되살아납니다.
반대자를 가장 든든한 내 편으로 만드는 대화의 힘
남성 중심의 사회와 굳어버린 고정관념 속에서 고바야시 씨는 수없이 많은 유리천장과 벽에 부딪혀 왔습니다. 특히 20대와 30대 시절은 그러한 장벽에 정면으로 맞서며 스스로의 손으로 벽을 깨뜨려온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고비를 지나며 그는 하나의 진리에 도달했습니다. "벽을 그곳에 세워두는 것도, 그것을 치우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반대자가 나타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때 고바야시 씨가 택한 방식은 외면이나 회피가 아니라 깊은 '대화'였습니다.
"겉보기에는 까다로운 반대자처럼 보여도 끝까지 이야기를 나누어 봅니다. 상대에게는 반대하는 나름의 이유가 반드시 있습니다. 어쩌면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빈틈'을 정확히 짚어주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대화를 거듭해 상대의 논리를 이해하고 나의 열정을 나눌 때, 그 반대자는 어느 순간 '가장 강력한 협력자', 즉 든든한 내 편이 됩니다."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사랑과 응원
고바야시 씨에게 한국은 인연이 깊은 나라입니다. 그는 과거 한국의 대형 화장품 기업 '아모레퍼시픽'에서 반년 동안 컨설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세계적으로 보아도 미용에 대한 관심과 미의식이 매우 높습니다. 그 배경에는 한국만의 독창적이고 풍요로운 식문화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예전에 연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인은 일본인의 40배에 달하는 채소와 고추(캡사이신)를 섭취하고 발효식품도 많이 먹습니다. 이 훌륭한 영양이 혈액 순환을 극대화해 모공이 작고 비단처럼 고운 '세계 최고의 피부'와 멋진 골격, 그리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인터뷰의 마지막, 고바야시 씨는 자신의 큰 손을 내밀며 "이 손으로 정말 많은 사람의 피부를 만지고 아름답게 해주었다"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손에는 시대를 개척해온 리더의 힘과 타인을 품어 안는 어머니 같은 다정함이 함께 깃들어 있었습니다.
"제가 너무 좋아하는 BTS를 언젠가 꼭 만나보고 싶어요."
소녀처럼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그의 열정은 나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초월해 있었습니다. 인생의 후반전은 결코 끝의 시작이 아닙니다. 쌓아온 경험이라는 무기를 들고 더 높은 곳으로 오르는 '또 하나의 찬란한 시작'입니다. 고바야시 데루코 씨의 삶은 늙어가는 것을 즐거움으로 바꾸어주는 최고의 이정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