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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에 소개된 기업은 추천 종목이 아니며, 중국의 산업 트렌드를 소개하기 위한 내용입니다.
중동전쟁이 치열하게 진행되는 요즘, 중국 투자업계가 주목하는 또다른 사안이 하나 있습니다.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회사인 CXMT(ChangXin Memory Technologies)의 상장이 그것입니다. 이 회사는 하이테크 기업으로 구성된 상하이증시의 커촹반(科創板) 상장을 진행 중입니다. 빠르면 이번 달, 늦어도 6월 안으로 성사됩니다. 중국 투자 업계는 IPO 규모가 약 295억 위안(약 6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합니다. SMIC(532억 위안, 2020년 상장)에 이은 두 번째 기록입니다. 업계 전문가들은 CXMT 상장 관련 보고서 작성에 분주합니다.
CXMT,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치명적일 회사
우리에게는 통신 인프라 회사인 화웨이도, 로봇 제작 회사인 유니트리도, 전기차 메이커인 BYD도 모두 경계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줄 회사를 꼽으라면, 필자는 단연 CXMT를 꼽겠습니다. 이 회사는 지금 메모리 반도체로 근근이 먹고 사는 우리 밥그릇을 빼앗으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에 이어 세계 DRAM 시장 점유율 4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술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DDR4 등 범용 제품군에서 CXMT는 이미 '가격 파괴자'로 군림하며 한국 기업들의 수익성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CXMT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CEO 주이밍(朱一明) 회장입니다. 그는 단순히 기술을 아는 경영자를 넘어, 중국 반도체 굴기의 '야전사령관'이라 불릴 만한 인물입니다. 1972년생, 올해 53세인 주이밍은 중국의 명문 칭화대(미세전자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졸업 후 실리콘밸리의 반도체 기업에서 R&D 엔지니어로 실력을 쌓고 중국으로 귀국한 전형적인 해외 귀환 전문가입니다.
시작부터 메모리 반도체에 특화했습니다. 중국으로 돌아온 그는 2005년 베이징에 반도체 설계 회사인 기가디바이스(GigaDevice, 兆易創新)를 설립하게 됩니다. 당시 그는 노트북 가방을 메고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현장을 누비는 '미국식 스타일'의 경영자로 유명했습니다.
기가디바이스의 주력 품종은 노어(NOR) 플래시입니다. 이 분야 전 세계 점유율 2~3위를 다투는 강자로 성장했습니다. 애플 에어팟에 들어가는 메모리를 공급하며 '중국 반도체도 애플의 요구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증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성공했습니다. 설립 10년 만인 2016년 상하이 증시에 화려하게 입성했습니다. 중국에서 돈 많은 사람 리스트 50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미 수조 원대 자산가가 된 그에게 남은 과제는 더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바로 이때 그의 두 번째 도전이 시작됩니다.
허페이 시정부와 기가 디바이스의 성공적인 콜라보
주이밍이 기가디바이스로 한창 이름을 날리던 2015년 '중국 제조 2025'가 발표됐습니다. 반도체 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국가 지원이 시작됐습니다. 주 회장의 메모리 반도체 열망과 중국 정부의 반도체 자립 의지는 안후이성 허페이시에서 만납니다.
"판은 우리가 깔 테니, 직접 제조 사령탑을 맡아달라"
주이밍의 두 번째 도전을 가능케 했던 제안이 안휘성 허페이 시정부로부터 날아들었습니다. 허페이 시정부는 설계 역량을 갖춘 주이밍에게 "반도체 회사를 지어달라"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팹리스(설계)에 안주하던 주이밍에게 설계와 제조를 아우르는 종합반도체 기업으로의 전환은 엄청난 리스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케이 했습니다. 국가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출범한 게 바로 CXMT입니다.
주이밍은 기가디바이스 상장으로 거둔 자금, 그리고 메모리 분야 설계 노하우를 모두 CXMT에 투입했습니다. 기가디바이스를 통해 기초 체력을 다진 뒤, CXMT라는 '무거운 제조'의 바다로 뛰어들었던 셈입니다.
2016년 설립 당시 허페이 시정부는 초기 자본금의 대부분을 직접 출자하며 '뒷배'를 자처했습니다. 180억 위안(약 3조5,000억 원)의 설립 자금 중 75%는 허페이시가, 나머지는 기가 디바이스가 냈습니다. 주이밍은 지금도 CXMT 지분 25% 안팎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민간 기업, 사실상 국유기업
CXMT의 지배구조를 들여다보면 중국 특유의 '그림자 지배' 공식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겉으로는 '실질적 지배주주(Controller)가 없는 현대적 지배구조'를 표방하지만, 그 속을 채운 것은 결국 국가와 성(省)정부의 자본입니다.
당초 시작할 때 75% 지분을 투자했던 '허페이(合肥)산업투자'라는 회사는 허페이시 정부 산하 국유기업입니다. 이 회사가 갖고 있는 CXMT의 75% 지분은 6차례의 증자 과정을 통해 대부분 다른 국유 펀드에 팔렸습니다. 중국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조성한 '빅펀드' 역시 2기 때 CXMT에 들어왔습니다. 민간기업으로는 알리바바, 텅쉰, 샤오미 등이 안정적인 칩 공급을 위해 각각 소량의 지분을 들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민간이 회사를 지배하는 듯싶지만, 실제는 국가가 통제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CXMT는 주이밍이 이사회 회장으로 기업 실권자로 활동하는 민간 기업 형태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다릅니다. 사실상 국유회사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상장 후에도 그 구조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CXMT는 주식의 15%를 일반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기존 주주는 같은 비율로 줄어듭니다.
상장 통해 추격 속도를 높이는 CXMT
그렇다면 CXMT의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요. 2026년 현재 CXMT와 한국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 사이의 거리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범용은 턱밑까지, 첨단은 한 발 뒤"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합니다. 범용 DRAM의 경우 불과 2~3년 전만 해도 한국과 중국의 격차는 5년 이상으로 평가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현장의 목소리는 다릅니다. 최근 CXMT가 선보인 LPDDR5X는 동작 속도 면에서 삼성·SK의 최신 제품과 수치상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업계에선 범용 제품의 기술 격차를 사실상 '1~2년' 내외로 봅니다.
인공지능(AI)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선 아직 한국이 '넘사벽'인 건 사실입니다. SK하이닉스가 6세대(HBM4) 양산을 논하는 시점에, CXMT는 이제 막 4세대(HBM3) 샘플을 화웨이에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분야의 격차를 여전히 3~4년 정도로 평가합니다.
문제는 속도입니다. CXMT는 2025년 하반기 수율을 80%대까지 끌어올리며 '수율 불능'이라는 비아냥을 실력으로 잠재웠습니다. 여기에 화웨이를 필두로 한 중국 내수 연합군이 "수율이 좀 낮아도 우리가 다 사주겠다"며 판을 깔아주고 있습니다. 우리 메모리 기술이 10나노의 벽에서 멈칫하는 사이, CXMT는 국가를 등에 업고 추격의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상장으로 6조 원을 확보하게 됐으니, 달리는 말이 날개를 다는 모양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