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특파원) 독일에서 들어보는 정의의 목소리, 뉘른베르크 재판! | 미래에셋증권 웹진(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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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특파원 독일에서 들어보는 정의의 목소리,
뉘른베르크 재판(Nuremberg Trials)!

기고: 제33기 미래에셋 해외교환 장학생 김이령

안녕하세요, 독일 만하임대학 교환학생으로 생활 중인 미래에셋 장학생 특파원 김이령입니다. 이번 글을 통해서는 독일의 역사 '뉘른베르크 재판'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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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Nürnberg)는 독일 바이에른 주에 위치한 도시로 만하임에서 기차로 약 3시간 30분, 뮌헨에서 기차로 약 1시간 30분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뉘른베르크는 신성로마제국의 중요한 도시였으며 중세 건축물과 현대적 문화가 조화된 도시입니다. 또, 크리스마스 마켓으로도 세계적 명성을 알리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 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으로도 잘 알려져 있어 역사적 의의까지 알고 여행을 떠난다면 더 깊이있는 여행이 될 것입니다.

1. 뉘른베르크 역사

전쟁의 상흔과 정의의 요구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종전은 인류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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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전쟁 범죄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전쟁의 폐허 위에서 세계는 단순한 복수가 아닌, 정의의 실현과 평화 질서 재건이라는 과제를 마주했습니다. 그 중심에 선 것이 바로 '뉘른베르크 재판(Nuremberg Trials)'이었습니다. 뉘른베르크 재판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전쟁 지도자 개인에게 국제법적 책임을 물으며, '전범 처벌을 통한 평화 구축'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향한 첫 걸음이 되었습니다.

왜 '뉘른베르크(Nürnberg)' 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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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장소로 '뉘른베르크(Nürnberg)'가 선택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이 도시는 나치 독일 시절 매년 대규모 '나치 당대회(Nazi Party Rally)'가 열리던, '나치즘의 상징' 그 자체인 공간이었습니다. 또한 뉘른베르크(Nürnberg)에는 사법궁전(Justizpalast)과 감옥이 함께 있어 재판과 구금이 모두 가능한 실질적 조건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나치의 상징'을 '정의의 상징'으로 바꾸려는 의지였습니다. '장소적 전환'은 곧 과거의 폭력 위에 정의와 책임의 질서를 세우겠다는 국제사회의 선언이었습니다.

재판의 전개와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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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재판(Nuremberg Trials)'은 1945년 11월부터 1946년 10월까지 약 1년간 진행되었습니다. 주요 피고는 헤르만 괴링,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루돌프 헤스 등 나치 핵심 인사들이었으며, 그들에게 적용된 죄목은 3가지였습니다. 1. 침략전쟁 계획 2. 전쟁범죄 3. 반인도적 범죄, 최종 판결에서 12명은 사형, 7명은 징역형 선고를 받았으며 3명은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이는 단순한 처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승자의 재판'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인류는 처음으로 '국가의 명령이라도 인간의 양심보다 우선할 수 없다'라는 원칙을 법적으로 선언한 것입니다.

독일 사회의 반응과 과거사 청산

전후 초기의 독일 사회는 재판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패전의 충격 속에서 침묵하거나 재판을 '승자들의 복수극'으로 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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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60년대 학생 운동과 지식인들의 역사 논쟁이 일어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젊은 세대는 과거를 외면한 부모 세대를 비판하며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이후 뉘른베르크는 단순한 재판의 장소가 아니라 '기억과 교육의 공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오늘날 이 도시는 학생과 방문객들이 끊임없이 찾는 '과거를 잊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역사 교실이 되었다고 합니다.

2. 뉘른베르크 재판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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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재판(Nuremberg Trials)'은 국제사회에 깊은 유산을 남겼습니다. 우선 국제법으로 전쟁 범죄를 처벌한 최초의 대규모 재판으로 '전범재판(War Crimes Tribunal)'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어 훗날 국제형사재판소(ICC) 설립의 법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또한 '인류에 대한 범죄'라는 개념은 이후 인권 담론과 국제 정의 논의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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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으로도 독일 사회에 '역사를 잊지 않는 법'이라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이후 수 많은 영화, 전시, 교육 프로그램이 뉘른베르크를 소재로 하며 정의와 책임의 가치를 문화 속에 녹여내고 있습니다.

3. 뉘른베르크 재판 영화

'뉘른베르크 재판(Nuremberg Trials)'을 바탕으로 한 법정 영화로 단순히 전범 처벌에 그치지 않고 전쟁 중 침묵하거나 협조한 이들의 윤리적 책임에 대해 날카롭게 묻습니다. '법과 양심, 그리고 책임'이라는 주제를 인간적인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악의 평범성' 개념과도 맞닿으며 단순히 처벌을 넘어 도덕적 책임의 문제를 묻습니다. 영화를 통해 역사적 내용에 대해 깊이 통찰하고 본인에게 던져지는 질문들에 답하며 뉘른베르크 지역을 둘러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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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영화 「Judgment at Nuremberg」(뉘른베르크 재판, 1961) 포스터

4. 정의의 목소리가 남긴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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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재판은 단지 과거를 심판한 사건이 아니라, 미래의 정의를 세운 역사적 실험이었다. 이 재판을 통해 독일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근간을 다시 세우는 계기를 마련했고, 국제사회는 전쟁과 인권 문제에 대응할 법적·도덕적 기준을 확립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이 재판은 우리에게 묻는다. "정의는 언제나 승리하는가?" 그 답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다. 정의의 목소리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까지 독일 뉘른베르크 지역의 역사와 의의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정의의 목소리가 들렸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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