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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여러분들이 국경을 넘어 투자하는 돈의 물결이 거세어졌습니다. 돈의 흐름을 한국 내로 국한해 생각하면 오판하기 쉬운 세상입니다. 자산을 늘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키우려면 전세계적인 돈의 흐름을 면밀하게 감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20년 사이 4배로 늘어난 글로벌 통화량
먼저 전 세계 통화량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살펴보죠. 전부 다 집계하는 건 어렵고 큰 의미도 없습니다. 커다란 경제규모를 가진 미국·유로존·중국·일본이라는 4대 경제 권역의 통화량 합계만 봐도 충분히 감지가 됩니다. 이들 4개 지역의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유럽중앙은행·인민은행·일본은행)이 각자 집계한 광의의 통화량(M2)의 합계를 '글로벌 M2'라 합시다. 20년 전인 2005년 5월 '글로벌 M2'는 달러로 환산해 23조 2,800억 달러였습니다. 8년쯤 지난 2013년 12월이 되자 50조 달러 문턱을 넘어섰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를 발 아래 용수철처럼 달아 통화량이 엄청나게 튀어 오른 것입니다. 이후로도 속도 제어가 되지 않더니 2024년 9월 90조 달러 벽을 넘어섰고, 올해는 5월 기준 93조 700억 달러까지 늘어났습니다.
'글로벌 M2'가 20년간 23조 2,800억 달러에서 93조 700억 달러로 4배 늘어나는 사이 미국의 S&P500지수는 4.77배 뛰었습니다. 엄청난 돈 잔치를 벌였고, 그만큼 화폐 가치가 낮아졌습니다. 자산의 명목 가격이 큰 폭으로 뛰었습니다. 2005년부터 올해까지 20년 사이 우리나라의 M2 역시 세계 4대 경제권역과 거의 엇비슷하게 4배 늘었습니다. 그래서 돈의 양이 얼마나 늘어나느냐를 러프하게 따져본다면 10년이면 2배, 20년이면 4배라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따라서 돈의 양이 늘어나 화폐 가치가 하락하는 흐름을 방어하려면 재산의 명목 가치를 10년 사이 2배로 늘리는 게 좋습니다. 물론 이미 은퇴하신 분들은 소득이 받쳐주지 않으니 자산을 더 늘리기가 쉽지는 않겠죠. 하지만 돈이 빠르게 늘어 화폐 가치가 추세적으로 하락한다는 경각심을 갖는 은퇴자와 그렇지 않은 은퇴자의 여생은 다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계 시가총액에서 뉴욕 증시의 비율 48%에 달해
세계 주요국에서 빠른 속도로 늘어난 돈 가운데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학개미라는 용어가 있듯이 국내 주식 투자자들이 미국 증시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데요. 일본이나 유럽 주요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요즘에는 미국에 투자를 집중적으로 합니다.
그렇다면 미국 주식시장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몰려드는 걸까요. 글로벌 주식 가치 평가분석을 하는 데이터 제공업체인 시빌리스 리서치의 집계에 따르면, 2024년 12월 31일 기준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을 합쳐 미국에 상장된 기업들의 시가총액의 합계는 62조 2,047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약 9경 원에 달하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숫자죠. 경제 규모 세계 10권인 대한민국 GDP의 36배쯤 되는 액수입니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의 2024년 GDP는 19조 4,000억 달러입니다. 그러니까 유럽의 27개국의 GDP를 합쳐도 미국 기업 시가총액 합계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는 뜻이죠. 미국의 거대한 자본시장에 엄청난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겁니다. 시빌리스 리서치는 2010년부터 모든 전 세계 상장사의 시가총액 합계도 산출하고 있습니다. 이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2010년 말 기준 미국 상장사 시가총액은 전 세계 상장사 시가총액의 31.5%를 차지했습니다. 이 비율은 이후 꾸준히 상승해 2024년 말에는 48.5%에 달했습니다.
14년 사이 대략 미국의 비중이 3분의 1에서 절반으로 올라간 것이라고 할 수 있죠. 미국 주식시장 가치가 나머지 모든 나라의 주식 가치를 합친 것과 거의 같은 셈입니다. 세계 시가총액 합계 가운데 두 번째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이 13%로 미국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고요. EU 회원국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치면 12% 정도입니다. 시가총액의 변화를 토대로 2010년 이후 14년 사이 미국 주식 수익률은 260%이고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의 평균수익률은 75.6%로 집계됩니다. 그러니 다들 미국 주식에 거액을 투자할 수 밖에요.
세계 각지에서 해일처럼 불어난 돈이 뉴욕 자본시장에 들어오면, 미국의 거대 기술 기업이 흡입하기 마련입니다. 쏟아지는 돈을 밑천으로 빅테크들은 신기술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습니다. 고급 인력들에게는 거액의 연봉을 안겨줍니다. 이런 순환고리 덕에 매력적인 성과물이 나와 세상의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다시 더 많은 돈이 미국에 몰려드는 선순환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은 미국에서 이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미국인들을 열광시키는 서비스나 상품이 나오면 뉴스로만 읽고 넘기지 마세요. 그게 세계 표준이 될 가능성을 탐색하면서 투자할 생각을 해보는 게 좋습니다.
요즘은 AI 경쟁에서 결국은 구글이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에 조금씩 힘이 실리는 분위기라는 점을 염두에 두세요. 특히,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가 올해 3분기에 구글을 집중 매수한 것이 'AI 구글 패권론'을 뒷받침한다는 해설이 나오고 있습니다.
통화량을 보고 내다보는 원·달러 환율 추이
세계 각지에서 미국에 투자하고 있고, 역으로 미국의 '큰손'들이 한국 시장에도 뭉칫돈을 투자하는 만큼 우리는 미국의 통화량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추세를 잘 봐야 합니다. 주요국 통화 중에서도 달러 통화량이 얼마나 증가하느냐를 주목하는 게 글로벌 경제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투자에도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미국의 통화량은 코로나 사태 때 급격히 늘었습니다. 미국은 달러를 마음대로 찍을 수 있으니까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빨리 통화공급이 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민간에서 서서히 대출이 이뤄지도록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나라입니다. 유럽이나 우리나라는 통화량이 늘어나는 이유 중 민간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80% 정도인데 미국은 60% 정도 밖에 안됩니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배리 아이컨그린 UC버클리 교수는 "100달러를 만들어내기 위해 미국은 몇 센트를 들여 돈을 찍어내면 되지만, 다른 나라들은 물건을 팔아 100달러만큼 이익을 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압도적인 달러의 힘을 보여주는 표현이죠.
요즘은 원·달러 환율이 올라서 골치인 분들이 많고 한국 경제에도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진 이유의 하나로 한·미 간 통화량 격차를 지목하기도 하니 이와 관련한 해설을 해보고자 합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 사태 수습을 위해 풀어놓은 막대한 돈으로 물가가 너무 많이 오르자 2022년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급격하게 높이고 양적긴축(보유한 채권을 팔아서 시중의 돈을 흡수)을 실시해 통화량을 줄였습니다. 통화량은 대체로 늘어나기만 하고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때 1960년대 이후 처음으로 미국에서 통화량이 줄었습니다. 이럴 때 '돈의 파도'를 잘 타야 합니다. 통화량이 줄어들 때 주가가 오를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2022년에 뉴욕 증시는 큰 폭의 하락을 거듭했습니다. 주변에 보면 항상 주식에 투자 중인 사람들이 있는데 현명하지 않습니다. 시장 흐름이 좋을 때 들어갔다가 심상치 않으면 빠져나와서 다음 기회를 노리는 '치고 빠지기'가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가 주목할 건 2022~2024년 사이 미국에서 통화량이 거의 증가하지 않는 사이 우리나라에서는 지속적으로 원화 통화량을 늘렸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M2는 2022년 1월과 올해 1월이 거의 비슷할 정도로 3년간 횡보를 하다가 올해 봄 이후에 본격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한국의 원화 M2는 최근 3년 사이 계속 늘어나기만 했습니다. 이것이 달러 대비 원화의 유통량을 지나치게 늘려 최근에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는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환율을 미리 점치기는 매우 어렵지만 현재 수준에서 원·달러 환율이 추가로 급등할 확률은 낮다고 조심스레 예측해봅니다. 왜냐하면 미국이 다시 본격적으로 통화량을 늘리는 흐름으로 들어갔기 때문이죠.
올해 12월부터 연방준비제도가 양적긴축(채권을 팔아 시중의 돈을 흡수하는 정책)을 중단하는 데다, 기준금리도 인하할 가능성이 동결할 가능성보다 높은 것으로 예측됩니다. 다시 미국에서 유동성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신호가 나오고 있다는 얘기죠. 따라서 올해 여름과 가을에 급격하게 오른 뉴욕 증시가 최근 조정 국면에 들어가 이르면 연말이나 내년 초에 다시 상승할 가능성이 있으니 투자 타이밍을 조절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