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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자연의 세레나데가 전하는 찬란한 순간의 기억
내륙에 숨은 보석, 충주

역사와 자연의 세레나데가 전하는 찬란한 순간의 기억 내륙에 숨은 보석, 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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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진 겨울의 기운을 조금 조용하고 차분하게 느껴볼 수 있는 여행지가 있을까요?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 고요히 계절의 풍경을 감상하며, 쌀쌀한 기운 속에서도 따스한 일상을 꿈꾸어 보고 싶습니다.
좋은 곳을 알려주세요.
수주팔봉 사진
수주팔봉
수안보온천 사진
수안보온천
올갱이 해장국 사진
식사
미륵대원지 사진
미륵대원지
달천에 솟아오른
여덟 개의 고고하고
수려한 봉우리,
수주팔봉
충주 달천은 '달고 청정하다'는 뜻으로 속리산에서 발원한 물이 괴산을 거쳐 충주 남쪽을 가르며 달천을 이룬다. 달천은 충주의 상징이자 뛰어난 생태지역에서 사는 수달이 서식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생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는 의미다. 이토록 물 맑은 달천에 솟은 수려한 봉우리가 수주팔봉이다. 높이가 493m의 수주팔봉은 야트막하지만 날카로운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그 위세가 당당하기로 유명한데 드라마 <빈센조>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수주팔봉은 팔봉마을에서 달천 건너 동쪽의 산을 바라볼 때, 정상에서 강기슭까지 달천 위에 여덟 개의 봉우리가 떠오른 것 같은 풍경을 빚어낸다. 이름 역시 이러한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이 수려하고 고고한 수주팔봉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산을 오르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산에서 바라보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펼쳐 놓은 듯 절경을 이루고, 송곳바위·중바위·칼바위 등 창검처럼 세워진 날카로운 바위들이 수직 절벽을 이룬 모습이 감탄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트래킹하는 기분으로 올라 마주한 수주팔봉의 풍경은 달천의 맑은 물과 깎은 듯한 절벽을 안고 서 있는 기암 계곡이 형성되어 있어 그야말로 황홀경. 싸늘한 겨울공기를 호흡하며 이토록 멋스러운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일상의 시름 따위는 조용히 뒷걸음 친다. 특히 이곳은 갈라진 칼바위 사이에 출렁다리가 놓여 있어 출렁다리와 전망대에서 보면 달천과 수주팔봉, 팔봉마을이 조화롭게 시선에 잡힌다. 특히 이곳은 최근에는 차박 명소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데 팔봉마을과 캠핑장 텐트에 하나둘 불빛이 스며드는 해 질 녘 풍경은 가히 압도적이라 기억에 남을 한 장면을 마주할 수 있다. 겨울날, 조금은 스산함이 느껴지는 속에서 이토록 서정적이면서도 수려한 자연을 감상하는 것은 삶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 위치: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토계리 일원
  • 문의: 043-850-2313
수주팔봉 출렁다리 사진 수주팔봉 마을 전경 사진 수주팔봉 겨울 전경 사진
왕의 온천으로 불린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 용출 온천수,
수안보온천
충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온천의 고장이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수안보온천은 물론 탄산온천인 앙성온천도 있다. 그중 전통의 온천 휴양지로 잘 알려진 수안보온천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명성이 높은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 용출 온천수로서 3만 년 전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는 수안보온천은 효능도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하 250m에서 용출되는 온천의 수온은 53℃로 약알칼리성으로 인체에 유익한 원적외선뿐 아니라 각종 광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덕분에 예부터 수안보온천은 질병을 치료하고 휴양할 목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무엇보다 수안보온천 관광특구에 들어서면 커다란 엄지손가락을 든 왕의 그림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왕의 온천' 수안보를 상징하는 캐릭터다. 수안보온천은 조선 시대 왕과 사대부에게 사랑을 받았는데 태조 이성계가 피부염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고, 숙종 역시 수안보에서 온천을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수안보온천은 자연 용출 온천으로, pH 8.3 약알칼리 온천수로 칼슘과 나트륨, 불소, 마그네슘 등 몸에 좋은 성분을 함유해 온천욕을 하면 피부가 매끈해진다. 이토록 장점이 많은 전통의 온천이니 충주를 찾았다면 여행을 하고 온천욕을 즐기면서 피로도 풀고 지친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것은 필수. 따스한 물에 몸을 담그고 몸은 물론 마음의 안식까지 찾았다면 조용한 분위기 속에 화려한 불빛을 밝힌 루미나리에 골목을 걸으면서 여유를 만끽하는 것도 좋다. 수안보온천지구는 아름다운 월악산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해 눈 쌓인 설산의 풍경과 겨울날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한층 평화롭고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덕분에 온천이 주는 치유의 에너지도 커진다.
  • 위치: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주정산로 12
  • 문의: 043-846-3605
마의태자 전설과 함께
아스라히 사라진
사찰의 흔적,
미륵대원지
삼국이 치열하게 싸운 중원 땅, 지금의 충주에는 걸출한 절터 두 곳이 있다. 그중 미륵대원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인 하늘재 아래 자리 잡았다. 북쪽 월악산을 바라보는 석불은 마의태자와 얽힌 애잔한 이야기가 내려온다. 미륵리 사지(彌勒里寺址)는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꿈에 관세음보살로부터 석불을 세우라는 계시를 받고 하늘재를 넘자마자 지세를 확인하고는 지금의 미륵리에 석불을 세워 절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은 발굴조사를 통해 절의 명칭이 미륵대원사였음이 밝혀졌고, 여기에 일찍이 석굴사원이 자리했다가 소실되어 현재의 석조물만 남았다는 것을 밝혔다. 발굴조사가 계속되고 있는 미륵사지는 14,000평 정도의 넓은 규모에 직사각형 절터에 일탑일금당이 배치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절터 안에는 5층 석탑과 석불입상, 석등과 3층 석탑이 있다. 미륵대원지는 석조와 목구조를 합성시킨 석굴사원 터로 석굴을 금당으로 삼은 북향의 특이한 형식을 취한 유일한 유적이라 귀한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 전설처럼 사라져버린 이토록 위대한 사찰 터인 미륵대원지에서 눈 여겨 봐야 할 문화유산은 미륵대원지의 중심 공간 한가운데 건립한 오층석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조 귀부이다. 그리고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석불이다. 절터의 주존불인 이 석불은 높이가 무려 10.6m에 이르는데, 커다란 돌덩이 네 개로 몸을 만들고 갓과 좌대는 다른 돌을 썼다. 웅장한 규모와 걸맞지 않게 석불의 표정이 너무나 순박하고 다정해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미륵대원지를 구경했으면 마의태자의 발걸음을 따라 하늘재에 올라보자. 하늘재는 충주 미륵리와 문경 관음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고려 시대까지 남북 교통로의 중심지였다. 2km 거리로 40분쯤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는 길을 걷어 정상에 닿으면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을 보면 이곳이 왜 하늘재인지 짐작이 가고, 나라를 잃고 그 깊은 하늘재를 걸었던 마의태자의 마음을 더듬게 된다.
  • 위치: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사지길 150
  • 문의: 043-850-6724
미륵대원지 3층 석탑 사진 미륵대원지 석조귀부 사진 미륵대원지 석불 사진
Tip. 내륙 깊이 숨어 있는 충주의 또 다른 명소
비내섬

전국의 '우리마을 녹색길 베스트 10'에 선정된 최고의 명품길인 비내섬은 국가 내륙습지보호지역으로 무성한 갈대 등으로 풍광이 아름답다. 비내섬은 수달, 흰목물떼새, 삵 등 18종의 멸종위기종을 포함해 865종의 야생동식물이 서식하는 안식처이기도 할 정도로 자연의 보존상태가 뛰어나고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을 갖추고 있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비내섬 사진
사진출처: 충주시 공식 인스타그램
중앙탑사적공원

탑평리 7층석탑(일명 중앙탑)을 중심으로 남한강변 넓은 영역이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어 중앙탑 사적공원이라 부르는 이곳은 남한강변에 자리잡은 낭만적인 호반산책로다. 이곳의 백미는 어느 곳에서 보아도 한눈에 보일 정도로 높이 서 있는 국보 탑평리 7층석탑(중앙탑)이다. 정교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이 엿보이는 이 탑은 통일신라 탑 중에서 높이가 가장 높은 탑이라 가치가 높다.

중앙탑사적공원 사진
탄금대

탄금대는 본래 대문산이라 부르던 야산인데, 기암절벽을 휘감아 돌며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과 울창한 송림으로 경치가 매우 좋은 곳이다. 탄금대라는 이름은 신라 진흥왕 때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하나인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졌다. 가야 출신인 우륵은 탄금대 절벽바위를 주거지로 삼고 풍광을 감상하면서 가야금을 타며 소일하다가 신라에 투항한 후 정착하여 신라의 음악가들을 교육했다고 한다.

탄금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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