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휩쓸던 IT버블은 가라앉았지만 미국 경제는 곧 회복을 시작합니다. 회복의 중심에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인 앨런 그리스펀(Alan Greenspan)이 있었습니다. IT 버블로 인해 미국 경제가 휘청이자 FRB는 전격적으로 2000년 12월 6.5%였던 금리를 1년 만에 1.75%까지 내리는 강력한 통화정책을 시행했고 2001년 미국 경제의 성장률은 다시 반등하며 회복하기 시작합니다.
IT버블이 꺼지기는 했지만 후에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검색시장을 주름잡는 기업 구글이 1998년 창업 이후 꾸준한 성장을 이어가며 2004년 성공적으로 나스닥에 안착하고, 생존한 IT 기업들이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혁신을 진행하며 미국 경제는 다시 활기를 찾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 미국 경제에 쇼크를 안긴 것은 디플레이션이나 경기불황이 아니라 바로 대규모 회계부정 사태였습니다. 2001년~2002년 굴지의 기업들이 일으킨 대규모 회계부정사태로 인해 월스트리트는 때 아닌 격랑에 빠집니다.
2001년 10월 16일, 미국의 건실한 에너지, 물류 기업으로 알려져 있던 엔론 사는 2001년 3분기 6억 1,800만 달러의 손실이 났음을 공시했으며 2억 달러 규모의 자본감소, 즉 감자를 하겠다는 발표를 해 거래소를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엔론은 소문난 에너지 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미국 텍사스에 본사를 둔 엔론은 1985년 천연가스 유통회사인 인터노스와 휴스턴 내추럴 가스 간 합병으로 탄생했습니다.
그 전까지 엔론 사가 밝힌 공시 자료에 의하면, 엔론 사의 매출액은 1986년 76억 달러 수준에서 2000년 1,010억 달러까지 상승했고, 시가총액은 무려 660조 원에 달했습니다. 아울러 전 세계 40개 국에 2만 1천 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그 규모는 미국 제 7위에 달했습니다. 이에 미국의 경제지 <포춘>은 1996년에서 2001년까지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엔론을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엔론의 기록적인 매출 성장세와 이익 대부분은 회계조작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엔론의 회장 케네스 레이와 CEO 제프리 스킬링이 있었습니다.
둘의 이야기는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터노스와 휴스턴 내추럴 가스의 합병으로 엔론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인수 합병에 든 비용 50억 달러의 채무가 발생했는데, 케네스 레이 회장은 이 채무를 드러내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엔론의 주요 업종 중 하나로 레이 회장은 중개업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중개업은 중개업자의 신용도가 매우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중개업자의 부채가 많거나 현금이 없어서 신용도가 낮게 평가된다면, 거래 업체들은 물건과 대금을 떼일 우려가 있어 거래에 쉽게 나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개업체들은 자산 건전성 수준이 높아야 하는데, 50억 달러나 채무가 있다는 것은 당시 중소업체에 불과했던 엔론에게는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분식회계와 회계조작으로 실적을 쌓다 이를 해결해 준 사람이 바로 맥킨지 출신 컨설턴트 스킬링이었습니다. 그의 전술은 특수목적법인(SPE)을 이용한 회계조작이었습니다. 즉 엔론이 진 빚을 법인에게 떠넘겨 엔론은 빚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으로 이 특수목적법인들은 엔론의 부실한 고정자산과 부채를 인수했습니다.
당연히 특수목적법인들은 엔론 본사가 털어낸 자산을 보유하게 되니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엔론은 이들에게 '지급보증'을 해줬지만 그 내용을 재무제표에는 표기하지 않는 방식으로 분식회계를 합니다.
한편 엔론은 매출을 늘리고 사세를 키우기 위해 M&A 시장과 신사업에 주력해 수력 발전업, 텔레콤 산업, 파생상품 투자 등을 시작합니다. 당시 엔론은 경영진들이 적극적으로 인수합병과 신사업 진출에 참여하게끔 동기를 이끌어내고자, 해당 프로젝트가 성공할 경우 경영진들에게 푸짐한 성과급을 지급했습니다.
실제로 엔론은 '자동차의 날(Car Day)'이라 불리는 때가 있었는데 이는 엔론사가 임직원과 경영진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던 때를 의미했습니다. 이 때 멋진 스포츠카들이 회사 앞에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 단어였습니다.
문제는 이 성과급이 실제 발생한 이익이 아니라 새로운 인수 합병 계약이 체결되거나 신사업이 체결되는 시점에 맞추어서 미래이익을 추정, 그 일부분을 지급하는 방식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되니 엔론의 경영진들은 해당 기업이 진짜로 합병할 만한 기업인지, 혹은 신사업이 잘 되는지에 대해 관심 없이 성과급과 직결되는 프로젝트 진행과 체결에만 관심을 보였습니다.
어쨌든 M&A와 신사업이 계속되다 보니 엔론의 사세와 매출 규모는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 기업들의 실적은 암울한 수준이었고 엔론은 곧 현금 부족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엔론은 실적을 부풀려 시장에 발표, 주가를 띄운 다음 이를 바탕으로 사채를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아울러 기존에 해오던 데서 더 나아가, 4개의 별도 조합 회사를 설립하여 해당 회사들과 거짓 거래를 통해 매출액을 키웠습니다.
분식회계 등으로 인해 회사의 분위기도 엉망이 되어갔습니다. 후에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레프>는 엔론 직원들의 윤리 의식이 바닥을 드러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한편 케네스 레이 회장은 정치권 로비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2000년 공화당 조지 부시 대통령 후보 진영에 29만 달러를 기부한 데 이어, 클린턴 행정부의 린다 로버트슨 재무차관보를 로비스트로 영입하는 등 민주당과 공화당 양 진영에 줄을 대는데 성공합니다.
2001년 레이 회장은 부시 대통령의 정권이양팀 자문 역할에 올랐고, 로비를 통해 에너지 정책 등에 관여하게 됩니다. 아울러 학계, 언론계에도 적극적인 로비로 엔론의 사업을 홍보합니다.
하지만 정치개입으로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엔론의 부실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었습니다. 엔론의 회계조작을 묵인해주던 회계감사법인 아서 앤더슨마저도 레이 회장을 말릴 정도였습니다. 결국 부실은 폭발했고, 10월에 자신들의 회계 상태를 공개하고 맙니다.
주당 80달러에 이르렀던 엔론의 주가는 30달러 수준까지 폭락했고 10월 22일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본격적으로 주가조작과 분식회계를 수사하기 시작합니다.
몰락이 다가오자 레이 회장은 회사를 보전하기 위해 승부수를 던집니다. 그는 엔론을 에너지회사 다이너지에 합병시키는 방식으로 회사를 보전시키기로 합니다. 당시 엔론은 다이너지보다 자산 규모가 4배 가량 컸지만 엔론은 현금 고갈, 분식회계 등으로 인해 회사 존폐 위기에 있었으므로 가릴 것이 없었습니다. 다이너지는 77억 달러의 주식 교환을 통해 엔론을 인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많은 투자자들이 거래소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이너지는 엔론의 숨겨진 부실 등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합병을 취소합니다.엔론의 주가는 5달러 수준으로 떨어졌고 이후 80%나 더 하락, 1달러 수준에 그칩니다. 결국 엔론은 뉴욕의 파산법원에 파산신청을 냈고, 회사는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엔론의 회장이었던 케네스 레이 회장은 24년 4개월, CEO였던 제프리 스킬링은 24년 형을 언도 받습니다.
2002년 1월 미국의 대기업 엔론의 파산은 거대한 후폭풍을 일으켰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고, 회사의 파산 때문에 퇴직연금 역시 모래성처럼 사라졌습니다. 그 이유는 엔론의 임직원 대부분이 상당한 퇴직금을 엔론 사 주식에 투자하는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80달러 수준이던 엔론의 주가가 1달러 미만으로 폭락하자 퇴직금 역시 가치가 폭락했습니다.
엔론의 파산은 월스트리트를 뒤흔드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더 큰 폭풍이 월스트리트와 미국 사회를 덮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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