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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증권 웹진

1980년대 미국에 충격을 주었던
블랙먼데이(Black Monday)는?
(2017년 12월 기사)

1980년대 미국에 충격을 주었던
블랙먼데이(Black Monday)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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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2월 기사)
기고: 디지털서비스팀 권형우 매니저
안녕하세요? 지난 호에서는 1980년대 황금기를 맞이했던 일본의 증권시장과 버블경제를 이야기했지요? 당시 일본이 특이하게도 블랙먼데이의 영향에도 불구, 강세시장을 유지했다는 점을 언급해드린 바 있는데요. 그렇다면 미국의 블랙먼데이는 과연 어떠했을까요?

1980년대 미국의 증권시장

1970년대 말까지 미국 증시는 여러 악재를 만나면서 약세를 이어 나갔습니다. 특히, 오일쇼크가 촉발한 스태그플레이션이 기업, 가계, 국가 경제의 발목을 잡으면서 증권 시장 역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한편,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침체된 경기에 대한 처방으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폴 볼커였습니다. 폴 볼커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처방으로 고금리 정책을 구사했습니다. 우선 1979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미국의 기준금리를 무려 2.5배 상승시켰습니다. 결국 22%까지 치솟은 금리로 인해 파산한 농장주와 기업가들이 시위를 벌일 정도로 반대가 심해집니다. 하지만 역대 그리스펀과 함께 FRB의 카리스마 강한 인물 중 한 명으로 불리는 폴 볼커는 자신의 정책을 고수합니다. 그 결과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3%대까지 떨어지게 되지요.

폴 포커 사진 사진 출처: flickr(https://www.flickr.com)

폴 볼커의 금리 인상책은 스태그플레이션을 잡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증시에 있어서는 그렇게 좋은 대책이 아니었습니다. 금리가 높아지고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회수되면서 미국 증시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니까요.

1980년대 공화당의 지명을 받은 레이건은 민주당의 카터를 누르고 대통령 자리에 오릅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폴 볼커의 지명을 철회하지 않고 그의 노선을 준수하면서 새로운 경제 체제를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레이건 정부는 이전 지미 카터 정부와 다른 노선을 취했는데요. 신자유주의의 선두 주자로 불리게 된 그의 정책은 '레이거노믹스'라는 용어로 알려지게 됩니다.

레이거노믹스와 증권 시장의 활황

일찍이 '미국'의 부활을 염원했던 레이건 대통령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를 도입해 새로운 경제 정책을 구사합니다. 바로 레이거노믹스인데요. 이를 위해 레이건 행정부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이후 계속된 복지 예산의 규모를 대폭 줄이고 수급기준을 강화하면서 정부의 지출을 줄였습니다. 아울러, 전면적인 소득세 감소를 통해 기업들의 세 부담을 줄이는 한편, 이에 따른 투자를 늘리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세 인하에 맞춰 자본이득세도 줄어드는 등 주식시장에 호재가 나타났고 주식시장은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 사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그 결과, 미국 경제는 점차 회복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레이건 행정부 시절 3%대의 성장률을 보일 정도로 외면적인 경제 회복 현상이 나타났는데요. 무엇보다 그동안 전 세계를 괴롭혔던 오일쇼크의 불확실성이 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OPEC의 공급량이 수요량을 넘어서면서 시장이 안정된 것입니다.

이에 1982년 10월 1,000 포인트를 기록했던 다우 지수는 16개월 간 랠리를 이어가면서 83년 1,287 포인트를 기록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1970년대 퇴직연금의 유입도 증시에 호재였습니다.

퇴직연금 자금이 증시로 유입되면서 미국 증시 역시 상승을 지속합니다. 특히 퇴직연금을 운용하기 시작한 연기금과 뮤추얼펀드 등이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했는데요. 실제로 58%에 달했던 미국 주식시장의 투자자 비중은 51%까지 축소되고 그 비중은 연기금과 뮤추얼펀드 등이 채웠습니다.

이처럼 지속되는 강세장이 늘 미국 경제에 장미빛만 드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입 감소와 감세 정책으로 인한 재정 적자와 일본 등으로 인한 무역 적자, '쌍둥이적자'가 골칫거리로 떠오르면서 복지재정의 축소로 양극화가 심화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1987년까지 쉴 새 없이 강세장을 이어가던 미국 증시는 10월 19일 월요일 불가사의한 사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검은 월요일(Black Monday)의 등장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다우 지수는 무려 하루만에 22% 이상 폭락하며 투자자들을 절망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상당히 갑작스러운 폭락이었기 때문에 이는 상당히 많은 투자자들을 놀라게 할 수밖에 없었지요.

1929년의 역사적인 대공황 사태를 불러온 검은 목요일에 빗대 '검은 월요일'로 불린 미국 시장의 폭락 사태로 인해, 무려 1조원이 넘는 금액이 하루 만에 증발돼 버렸는데요. 놀랍게도 이 당시 시장에 준 엄청난 충격과 달리, 블랙먼데이의 원인 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프로그램 차익거래로 인한 '포트폴리오 보험(Portfolio Insurance)'이 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당시 주식시장에 참여하고 있던 많은 뮤추얼펀드와 연기금 등은 대체로 포트폴리오 보험 전략을 채택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시장가격이 하락할 때는 투자 자산의 가치를 보호하고, 반대로 시장 가격이 상승할 때는 이에 편승하여 포트폴리오의 수익을 높이는 전략입니다.

이를 위해 투자자들은 현물 보유+선물 매도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주가가 하락하면 현물 가치가 하락하게 되지만 선물 매도로 인해 이를 상쇄시킬 수 있고 주가가 상승하면 현물 가치가 상승하면서 이에 편승할 수 있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것인데요. 문제는 주가가 폭락하자 이에 선물 매도가 계속되고 선물 매도가 현물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왝더독(Wag the dog) 현상이 일어나면서 현물 시장도 크게 하락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포트폴리오 보험이 당시 블랙먼데이에 악영향을 미쳤다고는 해도 이것이 결과의 전부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당시 레이거노믹스 시절 늘어난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 즉, '쌍둥이적자'가 그 원인이라는 설입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증시 상승 이면에는 거품이 내재되어 있었고, 블랙먼데이 역시 그 거품이 터져버린 사건이라는 해석입니다.

좌절하는 직장인 사진 사진 출처: flickr(https://www.flickr.com)

"일찌감치 배운 것은 월 스트리트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는 사실과거의 반복일 뿐이다"라는 제시 리버모어의 격언이 상기하듯, 1987년 블랙먼데이는 1929년 검은 목요일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월 스트리트에서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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