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원화인 파운드를 현금으로 환전하여 런던으로 떠난 여행객은 길거리에 있는 ATM 기기에서 현금을 카드에 입금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수수료를 받고 대리 현금 입금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포스터를 붙여 둔 슈퍼마켓을 찾아가도 현재는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고만 말합니다. 마지막 수단으로 ATM 기기가 있는 현지 은행에 들어가서 시도해도, 자사 영국 은행 계좌의 카드가 아니면 입금할 수 없다고 안내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국가 간 금융시스템의 차이에 대한 사전 이해와 대비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영국에서는 ATM을 'Cash Point' 또는 'Hole in the wall'이라고도 하며, 이것들은 한국인이 흔히 아는 ATM 기기와는 조금 다른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영국의 CD/ATM은 대부분 입금 기능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현금을 출금하는 용도로만 사용합니다. 입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ATM은 주로 은행 지점 내부에만 설치되어 있으며, 기기 앞면에 'CASH IN' 또는 'Paying-in service'라고 적혀 있습니다. 길거리에 있는 거의 모든 ATM은 주로 현금을 인출하는 기능만 제공하기 때문에, 은행 영업시간이 아니라면 돈이 있어도 현금을 계좌에 입금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발생합니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은행 창구에는 현금 출금기, 현금 입금기, 그리고 비즈니스용 ATM이 각각 분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한 기기에서 출금과 입금 서비스, 개인용과 비즈니스용 거래를 모두 다루는 한국과 달리 영국 은행에서는 본인의 거래 목적에 해당하는 기기를 사용해야만 합니다.
수표 발행 기능도 영국 ATM에서는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는 영국의 수표 형식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인데, 영국은 수표에 금액을 직접 기재하는 백지수표 형식이기 때문에 ATM에서 발행할 수 없습니다. 수표 발행은 주로 계좌를 소지한 고객에게 우편으로 따로 전달합니다.
한국과 비교하여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국 ATM은 휴대전화 충전용 심카드를 충전할 수도 있으며, 간이 거래 내역서를 발급받을 수도 있습니다.
영국의 ATM에서 현금 입금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원인은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추세로부터 비롯됩니다. 그 중에서도 주요한 몇 가지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첫번째, 현금 없는 거래의 증가 현상입니다. 신용/직불 카드, 모바일 지갑, 비접촉식 결제와 같이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결제 수단의 보편적 이용률이 증가함에 따라 현금 처리 ATM에 대한 수요가 감소합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ATM에서의 추가적인 서비스에 대한 투자보다는 현금 없는 거래를 지원하는 기술에 투자하는 것을 우선시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 보안에 대한 우려입니다. ATM에서 현금을 출금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프로세스이지만, 현금을 입금하는 것은 훨씬 더 복잡하며 보안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현금이나 수표를 입금할 때 사기나 도난의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은행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보다 엄격한 보안 절차를 필요로 합니다.
세번째, 비용 및 유지 보수입니다. ATM에는 입금을 처리하기 위한 추가 장비와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며, 이는 설치 및 유지 보수 비용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은행들은 입금 기능을 제공하는 대신에 보다 간소화된 기능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네번째, 시스템 효율성입니다. ATM은 주로 고객들이 신속하게 현금을 인출할 수 있는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입금 기능을 추가할 경우,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ATM이 과부하 상태가 될 수 있으므로 시스템의 효율성이 감소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영국의 은행의 현금 처리 서비스는 번거롭기로 유명합니다. 현금 입금을 위해서는 업무시간(오전 9시부터 오후 4시)에 은행을 직접 방문하여 지로를 작성해야 합니다. 이에 따른 수수료도 부과됩니다. 현금 입금 후 해당 금액이 계좌로 입금되기까지 최소 13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영국의 언론들은 "현금 처리에는 주당 6~10시간의 시간과 매년 1,000~3,000파운드(약 150만~450만 원)의 비용이 든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와 같은 번거로운 절차와 시간이 걸리는 현금 서비스로 인해 런던의 일부 펍들은 현금을 받지 않고, 대신 다른 서비스에 투자하여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방향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실제 영국의 유명 체인점 펍인 '크라운앤드앵커'는 런던 중심부 지점들에서 현금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술집 내부에 "카드만 받습니다. 죄송하지만 디지털 시대입니다"라는 문구도 적혀 있습니다. 펍 운영자는 현금 관리를 하는 캐셔, 은행 업무를 보는 매니저를 따로 두는 비용보다 현금을 받지 않는 것이 더 효율적인 장사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영국에서도 카드 가맹점 수수료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한국에 비해서는 비교적 적은 수준입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펍들은 카드 결제를 선호하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펍들은 더 효율적인 서비스와 향상된 고객 경험을 위해 현금 대신 카드 결제를 채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보수의 심장' 런던마저… 상점에서 현금이 사라진다], 김아진, Chosun Biz, 2019.02.18 中 일부 발췌
영국의 번거로운 현금 처리 서비스로 인해 현금 거래를 하지 않는 상점이 증가함에 따라 비판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영국의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무현금화가 심화되면 노인 등 수백만 명이 경제사회에서 소외될 수 있다. 터치스크린 사용이 어려운 파킨슨 환자, 장애인 등도 디지털 접근이 어렵다"며 "이런 엘리트주의로 가는 경제는 매우 슬프다"고 언급했습니다. 다시 말해, 무현금 사회가 고속화됨으로써 디지털 사용이 어려운 고령층, 장애인 등의 경제 소외계층이 발생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해당 층들은 현금 같은 전통적인 결제 수단에 의존하고,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거나 신체적 제약으로 인해 디지털 서비스를 활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해당 경제층은 현대적인 금융 시스템과 소통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이는 곧 경제적 소외를 야기할 수 있는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동전에는 양면이 있듯, 디지털 경제가 발전함과 동시에 파생되는 캐시리스 사회로의 이동은 이미 경제적으로 약한 계층들에게 더 큰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제는 모든 경제층이 비슷하게 편리한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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