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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북아프리카의 위기와 리프 전쟁의 전조
(2024년 04월 기사)

스페인 북아프리카의 위기와 리프 전쟁의 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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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04월 기사)
기고: IT지원팀 권형우 선임매니저
안녕하세요. 어느덧 화란춘성(花爛春盛)의 시절이 돌아와 온 세상이 봄꽃으로 가득합니다.
일교차가 큰 날씨에 건강 잘 챙기면서 봄꽃이 선사하는 시절의 행복도 듬뿍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글에 이어서 스페인의 근대사를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미서 전쟁 후 스페인에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미서 전쟁 후 스페인의 위기

미서 전쟁 이후 스페인은 쿠바를 비롯한 대부분의 식민지를 상실하고 몰락의 길에 접어들게 됩니다. 특히 미국 해군에게 격파돼 손도 쓰지 못한 스페인 해군은 과거 영화로운 무적함대라는 명성은 사라지고, 장교를 양성하는 해군사관학교를 유지하지도 못할 정도로 몰락한 끝에 1906년 결국 문을 닫는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이런 결정은 해군에 투신하려는 스페인의 젊은이들을 다른 삶으로 이끌게 됩니다. 스페인 해군 기지 갈리시아 엘페롤 출신의 한 청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부장적인 해군 행정장교 출신의 아버지 슬하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가문의 전통에 따라 형처럼 해군사관학교에 입대하려고 했던 이 청년은 진로를 바꿔 톨레도의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는 길을 택합니다. 이 젊은이의 이름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이 결정은 청년의 운명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운명 전체를 바꿔놓게 됩니다.

스페인, 모로코를 차지하다

한편 대부분의 해외식민지를 상실하면서 스페인은 그나마 남은 아프리카 지역의 식민지에 집착하게 됩니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 속담처럼 스페인은 위기를 겪는 중에도 아프리카 지역에 영향력을 조금씩 확장하고 있었고 1860년 술탄에게 승리한 뒤 와드라스 조약을 맺어 모로코의 실질적인 지배권을 획득했습니다.
한편 모로코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나라는 스페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곳 저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있었던 유럽의 전통적인 강국 프랑스, 그리고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유럽의 신흥 강국 독일이 있었습니다.
둘을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스페인은 1900년 프랑스와 밀약을 맺고 모로코를 분할하기로 하는데 이즈음 독일의 빌헬름 2세가 1904년 모로코를 전격 방문, 모로코의 자주와 문호개방을 주장하는 선언문을 발표합니다.
이 소식에 고무된 모로코 술탄은 프랑스의 내정간섭을 거부해 프랑스의 분노를 샀고, 독일과 프랑스가 충돌 직전까지 갔지만 보불 전쟁의 패배를 기억하고 있던 프랑스는 알헤시라스에서 회의를 개최하자고 합니다. 회의 결과는 독일의 기대와 반대로 독일의 모로코 진출에 대한 냉소와 기존의 스페인과 프랑스가 모로코를 지배하는 것을 지지하는 것이었고 결국 이는 독일의 분노를 사게 됩니다.
다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독일은 1911년 모로코에서 발생한 폭동을 프랑스가 무력으로 진압하자 이를 구실삼아 해군 전함을 파견합니다. 이에 프랑스의 동맹이었던 영국이 전함을 보내며 충돌했고 결국 프랑스가 아프리카 식민지 일부를 독일에게 양보하는 대신 독일은 스페인과 프랑스의 모로코 지배를 인정하게 됩니다.
물론 두 나라는 모로코를 합병하지는 않고 보호령으로 삼았지만 사실상 식민지로 만들며 지배를 확고히 하게 됩니다. 특히 식민지가 이제 사실상 모로코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스페인이 더욱 더 필사적이었는데 이는 모로코의 원주민인 베르베르족의 분노를 부르게 됩니다.

베르베르족, 독립을 위해 일어서다

1884년 스페인은 서부 사하라 지역을 보호령으로 만들고, 1912년 프랑스가 모로코 북부 지역을 보호령으로 삼았습니다. 부족 단위로 퍼져 있던 베르베르는 이에 반발, 무기를 들고 일어서게 됩니다. 이 반란은 곧 스페인과 프랑스 군대에 의해 진압됐지만 계속해서 산발적으로 일어나 두 나라의 골치거리가 됩니다.
한편 스페인은 모로코에 위치한 리프 산맥에서 철광석 채굴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리프 산맥은 풍부한 철광석을 가진 산지로 노천에서도 철이 나올 정도로 그 양이 풍부했습니다. 사업가 호라치오 에체 바리에타의 주도 하에 광산이 설치돼 대규모 채굴이 이뤄집니다.
문제는 채굴이 계속되면서 환경오염이 심해져 근처에 살고 있던 부족들에게 피해를 입히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피해가 상당했던 것과는 달리 정작 부족들은 스페인의 채굴로 어떤 경제적 이득을 얻지도 못했고 이에 저항하는 부족들은 탄압의 대상이 돼 고통받게 됩니다.
스페인의 횡포가 심해지자 베르베르족은 결국 반란을 일으켰고, 여기에는 당시 베르베르족 엘리트 출신이었던 압델 카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압델 카림의 지휘 하에 베르베르족은 리프에서 독립을 선언하며 일어서게 됩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본 콘텐츠의 그림은 내용의 이해를 돕고자 표현된 그림이며, 실제 인물 혹은 사건과 관계 없는 픽션이며 모든 인물, 배경, 세부 묘사는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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