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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과 독재의 유산
(2023년 12월 기사)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과 독재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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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2월 기사)
기고: IT지원팀 권형우 선임매니저
안녕하세요. 전국적으로 독감과 폐렴이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고 기온이 뚝 떨어져 겨울을 실감케 합니다. 모두 건강 유의하시고 올해 마무리 잘 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은 독재자 살라자르의 죽음과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 그리고 독재의 유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마지막 식민제국, 포르투갈

살라자르의 독재 정권이 끝나고 포르투갈 정부는 계속 독재 정권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그동안 억눌려왔던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는 분출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68운동의 기운이 포르투갈에도 퍼졌고 민주화 요구가 빗발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살라자르에 이어 포르투갈을 통치하게 된 마르셀루 카에타누 총리는 살라자르 독재 정권의 기조를 약간만 수정한 채 유지하려고 해 국민들의 불만과 분노를 키웠습니다.
문제는 포르투갈이 차지하고 있는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도 알제리를 포기한 시점에서 포르투갈은 늦게까지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등의 아프리카 지역에 식민지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최후의 식민제국'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식민제국 표현 사진
이 아프리카 식민지들이 계속 독립을 요구하고 무장 투쟁에 나서면서 이를 억제하기 위해 포르투갈은 식민지에 대규모 군대를 투입했습니다. 무려 국비의 44%가 국방비에 투입될 정도로 포르투갈 재정에 큰 짐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오랜 전쟁에 지친 소장파 장교들을 중심으로 염전 사상이 퍼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포르투갈군은 식민지 전쟁에서의 철수와 식민지 독립을 카에타누 정부에 건의했으나 카에타누 총리는 이를 건의한 스피놀라 장군을 파면합니다. 이후 전쟁이 계속되고 국방비 지출이 늘어나면서 재정이 악화되자 카에타누 정부는 재정 정상화를 명분으로 군 예산을 전폭 삭감하는 등의 조치를 취합니다. 이는 젊은 군인들의 불만을 삽니다.

군인들이 무혈혁명을 일으키다

1974년 4월 25일 새벽, 청년 장교들이 중심이 된 국군 운동(MFA)은 카에타누 정권을 타도하고자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초기에는 소수의 인원이 참여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에게 가세하는 젊은 군인들이 늘어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의 주요 요충지가 모두 군인들에게 점령됩니다.
군인들의 지지를 상실한 카에타누 총리는 자신이 파면했던 스피놀라 장군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국외 추방되었습니다. 이후 집권한 군사정부는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채 각종 국유화 조치를 시행하고 민주정부로의 이양을 충실히 진행, 1975년 민주적 총선거를 실시하는 등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구성됩니다.
포르투갈 민주화의 특이점은 군인들이 주축이 돼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그 결과가 민주화로 이행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음 글부터 살펴보겠지만 스페인의 경우 독재자 프랑코의 정권 이양 후 일부 군인들이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기존 체제로의 복고를 꾀하는 모습을 보인 것과 대비되기도 합니다.
쿠데타 표현 사진
이 혁명을 카네이션 혁명이라고 합니다. 당시 군인들이 총구에 카네이션을 꽂고 있었다는 것 때문에 4월 25일 혁명은 카네이션 혁명으로 불립니다.
잠깐 사연을 살펴보자면 당시 개업 1주년 기념을 위해 방문 고객들에게 카네이션을 나눠주려고 했던 레스토랑이 혁명 때문에 문을 닫는 바람에 계획이 무산됐습니다. 레스토랑에 근무하고 있던 셀레스트 마르틴스 캐리오라는 직원이 군인들의 총구에 카네이션을 꽂는 방식으로 꽃을 나눠줬고, 이에 시내 꽃집들이 호응하면서 군인들에게 꽃을 나눠주게 됩니다. 때문에 군인들 총구마다 꽃이 한 송이씩 꽂혀 있었고 이 무혈혁명을 카네이션 혁명이라 부르게 됩니다.

독재의 유산

40년 독재가 끝났지만 포르투갈이 겪은 후유증은 컸습니다. 안토니오 살라자르가 적극적인 우민화 정책을 시행하는 바람에 국민들의 교육 수준은 낮아졌고, 공업화의 수준 역시 매우 낮아진 데다 식민지 전쟁으로 인해 재정적 파탄 상황은 지속되었습니다. 특히 전쟁에서 회복해 경제 고도화에 오른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포르투갈은 직접적으로 전쟁을 겪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런 점은 계속해서 포르투갈의 약점으로 작용했고 이후 유로존 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유로존 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던 스페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댓글목록

윤정화님의 댓글

윤정화

포르투칼 이민가고 싶은 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