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미국과 이란 간 전쟁 발생 이후 '대인플레이션(GI·Great Inflation)'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1차 오일쇼크 당시 아서 번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기준금리를 내려 물가를 키웠다는 데서 비롯된 이 용어는 중앙은행이 정치화됐을 때 자주 거론된다.
취임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Fed를 흔들면서 GI가 일찍부터 우려됐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는 Fed가 독립성이 상실되면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되면서 물가가 2040년까지 41% 급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처럼 국가채무가 많은 여건에서는 GI 우려에 따라 국채금리까지 급등해 재정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최근 상황이 2차 오일쇼크 때보다 안 좋다는 점이다. 지미 카터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교체기와 맞물렸던 1980년 전후 미국의 통상정책은 자유무역을 지향해 관세가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됐다. 국가채무비율도 국제통화기금(IMF)의 위험수위를 크게 밑돌아 재정위기가 우려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트럼프 정부의 돈로주의식(Don-Roe Doctrine) 보호주의로 고관세에 따른 인플레이션 요인이 크다. 국가채무비율도 100%를 넘어 Fed가 기준금리를 내리더라도 국채금리는 상승하는 수수께끼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피봇을 단행한 2024년 9월 이후 기준금리가 1.75% 포인트 내렸지만 10년물 국채금리는 0.4% 포인트 올랐다.
정책 처방도 2차 오일쇼크 이후 스태그플레이션을 맞아 레이건 정부는 정책 목표별로 수단을 달리 가져가는 틴버겐 정리(Tinbergen's theorem) 대응했다. 통화정책 주무 부서인 Fed는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만 치중했다. 재정정책 주무 부서인 재무부는 아서 래퍼 이론을 토대로 감세 등을 통해 경기부양을 도모하는 공급 중시 경제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통화와 재정정책 양면에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완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차기 의장인 케빈 워시가 취임한 이후 Fed가 트럼프 대통령의 저금리 요구를 얼마나 수용할 것인가가 벌써부터 관심사다. 스콧 베센트가 이끄는 재무부는 성장률(g)이 이자율(r)보다 높으면 재정 지출을 늘려도 괜찮다는 현대통화이론을 선호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처럼 통수권자에 의해 주도된 전쟁으로 GI가 우려될 때는 최후의 보루인 중앙은행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서 번스의 실수로 후폭풍까지 겹쳤던 2차 오일쇼크 이후에는 레이건 대통령의 적극적인 뒷받침으로 Fed가 물가를 잡을 수 있었다. 기준금리 변경과 같은 주요 통화정책 결정에서도 Fed 이사 간에 균열이 발생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성향에 맞는 크리스토퍼 월러, 미셸 보우먼, 스티븐 마이런을 이사를 임명하고 느닷없는 방문 등으로 Fed는 이미 독립성이 크게 훼손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1913년 설립 이후 Fed가 통수권자에 의해 얼마나 좌우되는가를 알 수 있는 정치화 지수는 비상 상황이었던 대공황과 2차 대전 직후 때보다 높게 나온다.
작년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기준금리 변경을 놓고 친트럼프 인사와 반트럼프 이사 간에 대분열도 발생하고 있다. 차기 의장 케빈 워시도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임명됐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으로 GI가 발생하면 2차 오일쇼크 이후 폴 볼커 의장처럼 인플레 파이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2026년 5월에 공식 취임하는 케빈 워시 차기 의장이 볼커 의장처럼 인플레 파이터가 될 수 있을지 그 답을 알아보려면 Fed의 목표에 대한 입장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다. 케빈 워시 차기 의장은 Fed 이사로 근무할 당시 민감한 사안에 대해 한 번 더 검토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체크 스윙을 활용해 온 점을 고려하면 양대 책무는 유지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 안정을 달성하는 방안도 독특하다. 대차대조표(B/S)상 양적 긴축(QT)을 지속 추진해 기대 인플레이션 심리부터 잡아 흐트러졌던 금리체계를 바로 세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이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기준금리를 내리더라도 국채금리가 오르는 수수께끼 현상을 막을 수 있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봤다.
기준금리를 내리면 더 불안해질 물가를 어떻게 안정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AI를 육성시키면 해결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생산할수록 공급능력이 확대되는 AI가 발전하면 1990년대 후반 정보 기술(IT)이 주력산업으로 부각하면서 고성장 하에 저물가라는 신경제 국면이 재현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기준금리를 변경하는 데도 모교인 스탠퍼드 대학에서 인연이 있었던 존 테일러 교수가 창안한 준칙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론적으로 통화당국이 기준금리를 어떻게 조정해 왔으며 그것이 과연 적절했는가를 사후 검증하는 방법 중이 하나가 '테일러 준칙(Taylor's rule)'이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테일러 준칙에 의해 도출된 적정수준보다 높아 2022년 3월 이후 Fed의 금리 인상이 얼마나 급하게 단행했던가를 입증하고 있다. 2021년 5월 이후 인플레이션이 불거질 당시 '일시적'이라 오판하고 오히려 평균 물가 목표제(AIT)를 도입해 키운 Fed가 뒤늦게 '볼커 모멘텀'으로 대처해 온 결과다.
파월 의장과 구별되는 것은 기준금리가 적정수준보다 높은 여건에서 물가가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Fed의 통제권에 들어오면 통화정책은 '경기부양' 쪽으로 우선순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가가 목표치까지 도달할 때까지 금리인하에 소극적이면 경기를 침체시키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준금리가 높다면 얼마까지 내릴 것인가는 테일러 준칙에 의해 적정수준을 산출하면 어느 정도 감(感)을 잡을 수 있다. 물가와 고용에 대한 정책 의향 계수를 중립적으로 놓으면 3.5%로 나온다. 올해 첫 연준 회의가 끝나고 파월 의장이 기준금리가 중립 금리에 근접했다고 언급했던 것도 이 근거에서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정책 의향 계수를 반영한 적정선은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언급한 2.5% 내외다. 현재 기준금리 밴드의 하단보다 1% 포인트 낮아 0.25%p씩 내린다면 네 차례 인하해야 한다. 적정선이라 할 수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기준금리를 1% 밑으로 내려야 한다. 과연 베센트 장관과 어떻게 조율해 나가느냐로 기준금리 수준이 결정될 것이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으로 코스피 지수가 꿈에서나 그리던 6000선을 넘었던 우리 증시가 심하게 요동을 치는 롤러코스터 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번 전쟁 직전까지 1년 동안 코스피 상승률은 글로벌 증시에서 단연 1위로 블룸버그 등 해외 언론을 중심으로 집중 조명을 받아왔다. 우리 경제가 서울 올림픽 직전에 주목받은 적이 있지만 증시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코스피 지수가 급등하는 과정에서 우려됐던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도 그린 슛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인이 앞으로 우리 경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 수 있는 기업경기실사지수가(BSI)가 4년 만에 100을 넘어섰다. BSI가 100을 넘으면 앞으로 우리 경기가 좋아질 것을, 100 밑으로 떨어지면 안 좋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중 자금도 소비적·담보적·기득권 위주의 금융에서 생산적·혁신적·포괄적 금융으로 이동되는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은행 예금과 퇴장했던 뉴 머니가 증시로 유입되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부동산에 갇혀 있던 스톡 자금도 증시로 들어오고 있다. 마지막까지 버틴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투자 자금도 되돌아오는 리플럭스 조짐도 두드러진다.
2009년 당시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처음 언급했던 그린 슛은 엄동설한을 딛고 봄날에 돋아나는 어린싹에 비유해 위기 극복의 가닥이 잡힌 때를 의미한다. 금융위기를 맞아 버냉키 의장은 마치 헬리콥터가 공중에서 물을 뿌리듯 돈을 공급하고 기준금리도 제로 수준으로 낮추는 등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추진했다.
1년 전 우리도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정부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계엄, 탄핵, 정권 교체가 이어지는 위기 상황을 맞았다. 작년 6월 어렵게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흐트러진 국민의 관심을 한곳에 모으기 위해 비정상적이라 할 만큼 숨 가쁘게 추진해 온 증시 정책으로 한국 증시와 경제가 숨을 쉴 만한 상황까지는 됐다.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후폭풍이 많은 비상수단인 점을 고려하면 그린 슛 단계에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언제 정상화할 것인가 하는 출구전략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한다. 너무 빨리 추진하면 시든 잡초가 되고 너무 늦게 추진하면 곁가지가 무성하게 자라 정작 위기 극복이라는 골든 골 달성이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의 증시 정책 성공 여부는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코스피 지수가 6000선을 넘자 무수히 나오는 곁가지, 즉 각종 비관론부터 전지 작업을 해야 한다. 증시 정책이 6월에 치러질 지방 선거용이라든가,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으면 외환위기가 발생한다든가 하는 것이 최근에 나돌고 있는 대표적인 비관론이다.
전지 작업을 했으면 뼈대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새로운 영양분을 줘야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지금까지 특정 종목을 중심으로 한 코스피 지수 상승세가 남은 코스피 지수 편입 종목, 코스닥 상장 종목 그리고 비상장 종목까지 확산할 수 있도록 증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포트폴리오 위상을 높이는 과제도 시급하다. 올해 2분기에는 FTSE의 세계 채권 지수(WGBI), 세계 3대 평가사의 국가신용등급,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의 포트폴리오 지위의 정례 평가가 예정돼 있다. 모두 한 단계씩 상향 조정되면 100조 원 넘는 글로벌 자금이 유입될 수 있다. 가능성이 큰 만큼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국 증시의 앞날을 결장할 수 있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