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복합기업으로, 월트 디즈니와 로이 디즈니 형제가 1923년에 설립했다. 만화와 영화 제작은 물론이고 영화 배급, 리조트, 테마 파크, TV 채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 산업과 리조트 산업을 아우르고 있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를 설립한 월트 디즈니는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문화'로 만든 인물이다. 다른 이들은 상상도 하지 못한 캐릭터를 개발하고, 최초로 유성 애니메이션 <증기선 윌리>와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만들었으며, 최초로 캐릭터 사업이라는 영역을 일궈냈다. 만일 그가 없었더라면 애니메이션의 현주소는 크게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제작할 당시에는 그의 아내조차 "누가 돈을 내고 난쟁이가 나오는 영화를 보려 하겠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만화영화의 길이가 불과 6분 남짓이었던 시기에 등장한 120분짜리 만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사람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냈고, 결국 45개국 배급이라는 괄목할 만한 성적을 일궜다.
그의 1930년대가 애니메이션으로 가득했다면 1950년대는 테마 파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195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오픈한 이래 일본, 홍콩, 프랑스 등 전 세계에 총 11개가 설립된 디즈니랜드는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꿈의 테마 파크다. 하지만 월트 디즈니가 처음 디즈니랜드를 구상하던 당시,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거리를 활보하고 만화에서 보던 해적선이 서 있는 놀이 공원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의 실패를 예상했지만 월트 디즈니는 절대 멈추지 않았다.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안전하고 즐겁게 놀 수 있는 곳,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세계가 현실로 구현된 꿈의 동산을 만들고 싶었던 그는 직원들에게 상상력을 갖춘 기술자란 뜻을 담은 '이매지니어(Imaginer)'라는 호칭을 붙여주고 그들과 함께 환상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전념했다. 결과는 대성공. 1955년 7월 디즈니랜드 오픈 날은 물론 6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언제나 발 디딜 틈 없이 관람객이 가득 찬다.
월트 디즈니가 1966년 폐암으로 사망하고 나서 디즈니는 공황에 휩싸였다. 형이자 동업자인 로이가 회사를 맡아 운영했으나, 그저 현상 유지에 급급할 뿐이었다. 지속되는 하락세를 타고 1980대가 되자 디즈니랜드의 입장객 수는 절반으로 줄었다. 이처럼 죽어가던 디즈니는 최고 경영자 '마이클 아이즈너(Michael Eisner)'가 취임하고 나서 활로를 찾기 시작한다. 그는 디즈니에 무엇이 필요한지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창의성' 회복.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예전과 같이 재기발랄한 꿈과 모험의 세계를 창조해내야 했다. 직원들의 창의력을 최대한 이끄는 '공쇼(Gong Show) 제도(아마추어들이 나와 자유롭게 재능을 겨루는 당시 TV 프로그램을 본 딴 제도로, 모든 직원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발표하도록 했다)'를 도입해 애니메이션에 대한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를 발굴한 것은 그 노력 중 하나. 덕분에 <인어공주>, <라이온 킹>, <미녀와 야수>라는 불후의 명작이 탄생하고 회사의 이익 구조는 회복 기조에 들어섰다.
하지만 거듭된 성공으로 아집이 생긴 아이즈너 때문에 월트 디즈니 컴퍼니는 다시 한 번 위기에 봉착한다. 독재자처럼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며 회사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박탈해 결국 주주들의 반발을 산 아이즈너는 2005년 사임하고, 최고 경영자로 로버트 아이거(Robert Iger)가 취임한다. 아이즈너의 밑에서 일했던 그는 회사가 안고 있는 문제를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아이즈너와는 반대되는 리더십으로 직원들을 보듬고 제작자들의 아이디어를 존중하며 회사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파트너사인 픽사 애니메이션과 관계를 회복하고 결국엔 인수한 것도 그중 하나.
현재 월트 디즈니 컴퍼니는 글로벌 미디어 기업 중에서도 톱 기업에 포함될 정도로 다양한 사업 분야로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 어린이 대상 콘텐츠 제작 및 유동을 담당하는 월트 디즈니, 세계 주요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는 ESPN, 미국 3대 방송사 중 하나인 ABC 방송사, 세계 최고 수준의 애니메이션 그룹 픽사, 게임 기업 마블까지, 타깃 연령층도 다양하다. 또한 디즈니의 별도 영화사인 터치스톤 픽처스를 통해 <프리티 우먼>, <죽은 시인의 사회>, <시스터 액트> 등 종전의 히트를 기록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나니아 연대기>, <내셔널 트레저>, <캐리비언의 해적>과 같은 작품은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직접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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