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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을 은행이라 하지 못하고…"
프랑스 은행과 금융에 얽힌 이야기

"은행을 은행이라 하지 못하고…" 프랑스 은행과 금융에 얽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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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미래에셋 31기 장학생 특파원 박정원입니다. 혹시 프랑스 여행을 떠났을 때, 은행을 찾아가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프랑스에 처음 방문했을 당시 은행을 찾아 한참을 헤매기도 했고, 길을 지나며 생소한 간판에 고개를 갸웃거렸던 기억도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한국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ㅇㅇ은행'이라는 이름과 달리 '은행 banque'라는 명칭보다도 '금고 caisse', '협회 société', '신용 crédit'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왜 '은행을 은행이라 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되었을까요?
이번 컨텐츠에서는 프랑스 은행이 특이한 명칭을 가지게 된 배경을 알려주는 17세기부터의 프랑스 재정사 및 재정 위기에 대해 알아보고,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유럽 내 1·2위를 다투는 금융강국으로 성장한 프랑스 은행의 현주소와 특징에 대해 소개하려 합니다.
그림 1 프랑스의 다양한 은행들

1. 18세기 프랑스 금융계의 사기꾼, 존 로(John Law)

'은행'이라는 명칭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신뢰를 바닥에 떨어뜨린 건 다름아닌 스코틀랜드 출신 금융가 존 로(John Law)였습니다. 루이 14세의 화려한 통치가 막을 내린 18세기 초반, 프랑스는 무리한 전쟁과 많은 세금을 납부하던 위그노(신교도)들의 이주로 인해 심각한 재정위기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그러나 고답적인 방식으로 상황을 해결하려 노력하던 프랑스 왕실에 존 로는 '국고의 역할을 하는 왕립은행의 설립과 화폐 발행'이라는 새로운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림 2 존 로(John Law)

사진출처: 위키미디어(https://commons.wikimedia.org/)

그림 3 미시시피 버블 사건에 대한 풍자화

사진출처: 위키미디어(https://commons.wikimedia.org/)

존 로가 제시한 방안은 처음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다만 그를 시험하기 위한 소규모 은행 설립만이 허가되었습니다. 1716년 6월 그는 귀금속 등 주화를 예치하고 은행권을 발행하며 안전성을 보장하는 일반은행(Banque Générale)을 설립하였습니다. 파격적인 조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반은행을 이용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는 일반은행의 은행권만으로 세금을 송달하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어서 1719년의 첫 날 일반은행은 왕립은행(Banque Royale)으로 승격되어 화폐 제조권과 징세 청부업, 그리고 직접세 징수 권한을 획득하는 등 높은 지위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재정에 대한 존 로의 개입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1717년 9월 미시시피 회사를 미국에 설립하고 루이지애나에서 금광이 개발될 것이라고 선전했습니다. 다양한 무역 회사를 합병하며 성장한 미시시피 회사는 담배징세청부업을 인수하여 국가 재정 수입 운영에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고, 여러 차례 주식을 증자하고 콜옵션을 판매하며 규모를 확대했습니다.

그러나 회사의 자본금 확보를 위한 왕립은행에서의 저리 대출과 투기의 급속 증가에 더해 북미 식민지의 척박한 현실이 알려지며 1720년 5월 주식이 급락합니다. 같은 해 7월 17일 왕립은행에서 은행권의 정화 상환을 중단한다는 결정이 내려지자 미시시피 회사의 주식은 휴지조각이 되었고, 이것이 유명한 '미시시피 버블 사건'의 전말입니다.

프랑스에서 '은행(banque)'이라는 명칭을 잘 사용하지 않는 이유, 이제는 이해가 되시나요? 존 로가 설립했던 은행의 악몽 때문에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되는 은행 대신 '협회', '신용', '계산소'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관습이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2. 재정위기로 시작해 재정위기로 끝난 프랑스혁명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망명길에 올랐던 루이 16세는 지폐에 그려진 얼굴로 왕을 알아본 한 농민에 의해 정체가 발각되어 체포되었고, 결국 처형당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지폐가 바로 프랑스 혁명기 국민공회의 재정 조달용으로 발행되었던 일종의 채권인 '아시냐(Assignat)'입니다.

루이 15세 시기 존 로에 의해 발생한 인플레이션의 영향은 루이 16세까지 이어졌습니다. 반 세기가 지났는데도 프랑스 왕실은 여전히 재정위기에 시달리고 있었고, 공채 발행 등의 해결안도 먹히지 않자 다시 지폐를 발행하여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한 포고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로 체제의 악몽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강하게 반대했고, 결국에는 세금을 더 부과하기 위해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었던 1789년 5월 삼부회를 소집합니다.

그림 4 루이 16세의 얼굴이 그려진 아시냐

사진출처: 위키미디어(https://commons.wikimedia.org/)

하지만 3계급인 부르주아의 동의를 얻어 새로운 세금을 걷고자 했던 왕의 의도와는 달리 이미 성나 있던 군중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의 함락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혁명이 발발합니다. 부르주아들은 '국민의회'라는 새로운 의회를 만들어 대표권을 행사했는데, 여기서 왕실과 교회의 토지를 몰수해 국가 재정을 충당하겠다는 결정이 내려집니다. 앞서 언급한 아시냐는 토지본위 화폐제도로, 이때 국민의회에서 몰수한 토지를 유동화하기 위해 처음 발행되었습니다.

어음의 성격을 띠었던 초기 아시냐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으나, 1789년 말부터 1791년까지 3차에 걸쳐 아시냐가 발행됨에 따라 통화량이 증가하며 점점 투기가 조장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791년에는 입법의회로, 1792년에는 국민공회로 권력주체가 빠르게 바뀌며 이전까지 총 14억 리브르가 발행되었던 아시냐는 입법의회 시기 10억 리브르가, 국민공회 시기 30억 리브르가 발행되었습니다.

이처럼 통화량이 급증함에 따라 물가도 고공행진 할 수밖에 없었고, 지폐는 다시 휴지조각이 되었습니다. 대혁명기 또 다른 은행이었던 '발권금고'는 혁명정부에 무리한 대출을 감행하며 또 파산했고, 은행가들은 프랑스를 뒤로 하고 망명길에 오르는 등 프랑스 금융계는 계속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3. 19세기 다양한 은행의 출현 및 발전

19세기 변화한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는 182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의 소설 『고리오 영감(Le Père Goriot)』입니다. 자신의 애인으로 정통귀족이 아닌 은행가의 아내인 델핀을 선택하고 돈을 중시하는 주인공 라스티냐크의 행동은 우리로 하여금 19세기 들어 커진 돈과 은행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무너져가던 프랑스 금융을 다시 일으킨 계기가 되었던 것은 1800년 나폴레옹이 설립한 프랑스 은행(Banque de la France)이었습니다. 1799년 나폴레옹의 쿠데타가 성공하며 그는 경제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입법부를 해산하고 금본위 화폐제도를 재확립하였습니다.

그림 5 소시에테 제네랄(Société Générale) 은행 파리 지점의 초기 모습

사진출처: 위키피디아(https://fr.m.wikipedia.org/)

왕정기의 은행은 나폴레옹이 일으킨 전쟁들 때문에 잠시 위태로운 상태에 놓이기도 했으나, 왕정이 끝난 뒤 로스차일드와 같은 은행가들이 국제 무역, 철도 건설 등의 복합적인 사업에 참여하는 '고등은행(Haute Banque)'을 설립하며 프랑스의 금융은 본격적으로 상승세를 타게 됩니다.

제2제정기(1848년)부터는 은행혁명(révolution bancaire)이 시작되었습니다. 주식합자은행 등 새로운 형태의 은행이 출현하기도 하였고, 크레디모빌리에(Crédit Mobilier)와 같은 주식자본은행들은 기업들의 자본 형성에 도움을 줌으로써 산업화와 산업자본주의의 촉진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소시에테제네랄(Société Générale), 크레디아그리콜(Crédit Agricole)처럼 현대 대형 은행의 전신이 되는 다양한 은행들도 19세기 중후반에 설립되었습니다.

4. 족쇄에서 벗어난 20세기 프랑스의 금융

유럽의 20세기 전반은 세계대전으로 대표됩니다. 프랑스도 예외는 아닙니다. 전쟁 후유증으로 인해 프랑스 은행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고, 1929년 경제위기까지 맞게 됩니다. 앞서 언급했던 다양한 실패들과 양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은행업은 20세기 중반까지 국가의 통제를 받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재건을 위해 정부는 국고국(Trésor Public)을 활용하여 가계 저축을 동원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자금을 제공하며 국영 및 민영 기업들이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 시기 프랑스의 은행은 크게 예금은행과 협동조합, 두 가지로 나뉩니다. 1945년 은행법 개정으로 4대 대형 예금은행을 국유화하고, 민간에 의해 운영되는 협동조합 간의 예금 네트워크 형성으로 가계 저축을 확보하며 경제 회복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1960년대에는 국가사업 축소로 국고국의 지위가 낮아진 데 반해 은행의 역할은 더욱 커졌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은행의 신용제공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1966년 소폭의 금융 자유화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이에 힘입어 1970년대 중반까지 예금 및 대출 규모가 급증하여 상업은행이 금융시스템의 기반이 되는 프랑스 금융시스템의 큰 틀이 구축되었습니다.

1974년 석유 위기에서 비롯된 한 차례의 혼란을 겪고 난 뒤 프랑스는 1980년대 중반 금융개혁 정책을 실시하여 단기 예금/투자/중장기 신용 등의 분야로 은행을 전문화하던 기존 정책을 폐기하고, 신용기관들에 동일한 법을 적용함으로써 경쟁을 강화했습니다. 또한 국가에 의해 소유되고 관리되던 국영 은행들을 대거 민영화하는 동시에 예금과 대출에 관련된 정부의 직접적인 규제도 폐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은행들 간의 인수합병으로 은행이 대형화/국제화되기도 했고, 은행 업무뿐 아니라 자산운용과 보험서비스 등을 겸하기도 하며, 예금과 대출이 중심이 되던 과거의 체제에서 증권거래 비중이 늘어난 투자은행으로의 변환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5. 프랑스 은행의 현재 모습과 특징

현재 프랑스의 가장 대표적인 은행으로는 BNP Paribas, Société Générale, Crédit Agricole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여전히 은행이라는 명칭보다는 협회, 신용 등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은행들은 유럽 은행 자산 순위 2위, 3위, 6위(2024년, 자산 기준)를 차지했을 만큼 그 규모와 영향력이 큽니다. 한국 은행 중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던 KB금융그룹이 2024년 자산 기준 세계 은행 64위에 이름이 올랐던 반면, BNP Paribas는 8위, Crédit Agricole은 10위에 랭크됨을 통해 상대적인 규모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표1 2022년 물동량 기준 세계 항만 순위
순위 회사명 본부 위치 총 자산(단위: 10억 유로)
순위 1 회사명 HSBC Holdings PLC 본부 위치 UK 총 자산(단위: 10억 유로) 2,641.48
순위 2 회사명 BNP Paribas SA 본부 위치 France 총 자산(단위: 10억 유로) 2,594.14
순위 3 회사명 Crédit Agricole Group 본부 위치 France 총 자산(단위: 10억 유로) 2,476.43
순위 4 회사명 Banco Santander SA 본부 위치 Spain 총 자산(단위: 10억 유로) 1,797.06
순위 5 회사명 Barclays PLC 본부 위치 UK 총 자산(단위: 10억 유로) 1,711.60
순위 6 회사명 Société Générale SA 본부 위치 France 총 자산(단위: 10억 유로) 1,553.81
순위 7 회사명 UBS Group AG 본부 위치 Switzerland 총 자산(단위: 10억 유로) 1,553.59
순위 8 회사명 Groupe BPCE 본부 위치 France 총 자산(단위: 10억 유로) 1,544.14

자료 출처: https://www.spglobal.com/marketintelligence/en/news-insights/research/europes-50-largest-banks-by-assets-2024, 내용을 바탕으로 표 재구성

그러나 규모와 영향력이 안정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규제개혁 이후 프랑스의 은행은 크게 BNP Paribas, Société Générale과 같은 대형 겸업(일반)은행과 Crédit Agricole 등의 협동조합은행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980년 은행법 개혁으로 일반은행과 협동조합은행 사이의 칸막이가 사라지자 협동조합은행도 점차 투자은행업을 확대하며 일반은행화 되었습니다. 이처럼 금융시스템이 점점 시장 중심으로 변화하자 몇몇 대형 겸업은행들이 경제 시스템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금융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금융과 은행의 부정적인 측면이 더 크다고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프랑스는 지속적으로 규제를 강화하고 체제를 감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은행동맹을 수립하는 등 금융안정성의 확립을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장단점이 분명한 프랑스 은행과 금융은 우리나라와 비교되는 뚜렷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첫 번째 특징은 바로 은행 업무가 비교적 복잡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모바일 은행 앱이 활성화되어 있고, 비대면 계좌개설도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는 한국과는 달리 프랑스는 일반적으로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서는 은행 직원과 헝데부(rendez-vous, 시간 약속)를 잡고 은행 창구를 방문해야 합니다. 서류를 서면으로 제출하고 나면 프랑스의 계좌번호에 해당하는 IBAN과 인터넷뱅킹용 비밀번호 코드 등이 적힌 우편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계좌 유지비가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유지비는 매달 3유로에서 5유로 정도로 크지는 않지만 프랑스 계좌를 개설 후 보유하기만 해도 납부해야 하며, 계좌에 연결된 카드를 발급할 경우 추가적으로 카드 발급 및 사용 비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계좌 해지를 위해서도 계좌를 닫겠다는 메일 또는 우편을 보내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세 번째 특징은 수표 사용이 꽤 잦다는 점입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수표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프랑스에서는 계좌를 처음 개설하면 수표책을 주고, 아르바이트 등의 월급을 수표로 지급하기도 하는가 하면 수표 입금이 가능한 ATM 기계가 거의 모든 은행 지점에 있을 정도입니다.

지금까지 18세기 프랑스인들이 '은행'이라는 명칭에 학을 떼게 만든 존 로와 미시시피 버블 사건부터 18세기 프랑스 혁명과 아시냐, 그리고 19세기의 은행 혁명과 20세기의 금융 자유화까지 근대 프랑스의 은행과 금융과 역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한 국가가 영향력 있는 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탄탄한 은행과 금융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는데, 프랑스의 은행은 의외로 '천덕꾸러기'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놀라웠습니다.

흥미로운 정보이길 바라며, 유익한 컨텐츠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À bientôt !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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