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법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어느덧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벌써 첫눈이 내리고 동장군이 부리는 심술도 제법인 겨울입니다.
가을이 온지 얼마되지도 않아 벌써 겨울이 찾아와 섭섭하지만, 아쉬움은 뒤로 하고 이번 2024년을 잘 마무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이번호에서는 지난 글에 이어서 아스트루이스 사회주의 공화국에 대해 알아보고 스페인 경제사에 대해 좀 더 다루고자 합니다.
제2공화국, 아스투리아스 사회주의 공화국을 해체하다
스페인 제2공화국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분리 독립을 선언한 아스투리아스 사회주의 공화국을 묵과할 수 없었고, 광부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기로 합니다.
아스투리아스 사회주의 공화국이 선포된 뒤, 스페인 제2공화국은 군대를 파견해 광부들을 무력 진압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스페인 사관학교장을 그만두고 왕실 고문관 정도의 명예직에 머물러 있던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기회를 잘 포착했고 숙달된 군인들과 함께 아수트리아스 사회주의 공화국이 선포된 2주 뒤, 강경한 무력 진압을 시작합니다.
일찍이 리프 전쟁에서 독립을 원하며 저항하던 베르베르족과의 전훈을 바탕으로 프랑코는 무자비한 진압을 시작했고, 사상자를 가리지 않고 반항하는 자들은 사살, 구금하며 아스투리아스 공화국을 해체했습니다.
후에 '아스투리아스 10월 혁명'으로 불리기도 하는 공화국은 수천 명의 사상자와 구금자를 발생시키며 해체됐고 프랑코는 분열의 위기를 막은 영웅으로 불리며 주목받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정치적 입장입니다. 사실 공화국 정부에서 프랑코는 잠재적으로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인물로 분류돼 일부 인물들로부터 위험시되고 있기도 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중립을 표방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알폰소 13세가 결혼식의 주례를 맡기도 했고 왕당파와 가까운 부분이 있었지만 막상 공화국이 출범했을 때 최대한 협조하는 모양새를 취했습니다.
하지만 공화국이 자신을 경원시하는 것을 알게 된 데다 아스투리아스 사회주의 공화국을 진압하면서 프랑코는 우파적인 시각을 확고히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추후 스페인에 역사적 비극을 안겨준 내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스페인 좌파 진보 세력의 대단결, 인민전선
아스투리아스 사회주의 공화국의 탄생을 촉발한 스페인 제2공화국의 우파 정권은 기존 토지정책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좌파, 진보 세력들의 반발과 극렬한 저항을 불렀고 이에 그들은 연합하기로 합니다.
1936년 좌파, 진보 세력들은 일심단결 하여 인민전선을 설립하고 총선거에 나섭니다. 사실 좌파나 진보 역시 개혁의 강도에 따라 서로 성향이 다르고, 그 안에서도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아나키즘) 등이 있어 통합이 쉽지 않았지만 우파 정부의 움직임에 분노한 그들은 모두 단합하여 하나의 정당으로 총선거에 나서게 됩니다.
우파 역시 이에 대응하기 위해 단합을 추구했으나, 기독교 세력, 왕당파, 팔랑헤당으로 대표되는 파시즘 세력 등 너무 복잡한 이해관계와 갈등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그들의 단합은 흐지부지하게 됩니다.
결국 총선거에서 승리한 인민전선은 집권을 이뤄냈고 우파 정부에서 소극적으로 행해지거나 중단됐던 개혁 조치를 다시 진행하기 시작합니다.
정치범 석방, 소작료 및 지대의 인하, 토지 분배 정책 등이 다시 진행됐고, 스페인 제2공화국은 개혁에 들어서게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인민전선의 정치적 상황이었습니다. 인민전선 역시 좌파 세력 내에서도 다양한 세력들로 구성되었고 이들은 다시 정권을 두고 다투기 시작합니다.
이에 일부 세력이 입각하지 못하면서 반발하는 등 스페인 제2공화국 정부의 혼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와중에 선거에 패배한 우파 정부 역시 다시 정권을 잡을 기회를 노리며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특히 급진적인 파시즘 정당인 팔랑헤의 설립자였던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는 아예 공공연하게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부를 전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녔습니다.
특히 그의 등장은 스페인 내전의 촉발제 중 하나로 작용하게 됩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