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완연한 초여름 날씨가 계속되면서 어느덧 여름에 접어들었습니다.
바쁜 일상이지만 풋풋한 초여름 기운을 느끼며 행복 가득한 한 달 되시기 바랍니다.
이번 호에서는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젊은 시절에 대해 더 다뤄보고자 합니다.
프랑코, 최연소 대위가 되다
1915년 프랑코는 22세의 나이에 대위가 되며 스페인 군 최연소 대위의 자리에 오릅니다.
프랑코는 다른 군인들과 달리 솔선수범해서 전장에 섰고 덕분에 병사들의 신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프랑코는 엘 비우츠 전투에서 중상을 입게 됩니다.
당시 복부에 탄환을 맞아 생명이 위태로웠으나, 프랑코는 수술을 망설이는 의사를 권총으로 협박하며 수술을 진행시켰고 기적적으로 회복합니다.
그를 따르고 있던 베르베르인 부하들은 그를 알라의 축복을 받은 사내라고 부르며 존경하게 됩니다.
1917년 소령으로 쾌속승진한 프랑코는 1920년 알폰소 13세가 프랑스의 외인부대를 모델로
스페인 모로코의 반란 세력들을 진압하기 위해 창설한 스페인 외인부대의 부사령관 자리에 오릅니다.
이 외인부대는 리프 전쟁에서 큰 활약을 펼칩니다.
리프 전쟁의 분수령, 멜리야 전투
압델 카림은 아누알 전투에서 실베스트레 장군을 전사시키고 대부분의 스페인 군을 패주시키는 성과를 거둔 뒤, 진군을 계속했습니다.
리프 공화국을 따라 많은 베르베르 부족들이 합세했고 스페인 군은 퇴각을 거듭했습니다.
베르베르 족은 스페인이 점령하고 있던 동부 항구도시 멜리야를 탈환하기 위해 공세를 펼쳤고 도시는 위기에 빠집니다.
이 때 프랑코는 3일에 걸친 강행군으로 멜리야에 빠르게 도착, 증원된 스페인 군과 함께 리프 공화국 군대를 격퇴하는 성과를 거둡니다.
이 소식은 연이은 패배로 혼란에 빠진 스페인에 오랜만에 전해진 승전보였고, 프랑코는 전쟁 영웅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멜리야 방어전에서의 성공으로 전쟁 영웅이 된 프랑코는 이 때 결혼을 하는데, 결혼식 대부를 맡아준 사람은 국왕인 알폰소 13세였습니다.
한 때 작은 체격 때문에 계집애라는 비웃음을 사던 한 청년이 이제 스페인의 영웅으로 추앙받게 된 것입니다.
프랑스의 개입이 시작되다
프랑코가 멜리야를 지켜냈지만 전쟁의 흐름은 여전히 리프 공화국에게 있었고, 스페인은 모로코에서 군대와 자국민 철수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리게 됩니다.
특히 스페인은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리프 전쟁에서 연이은 패전으로 전쟁에 개입했던 알폰소 13세의 인기는 땅에 떨어졌고 결국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알폰소 13세는 리베라 장군이 독재자가 되는 상황을 용인했지만 그 결과 스페인 왕정에 대한 불신이 심해졌고,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역에서 자치 운동이 벌어지는 등 정치적 혼란기가 초래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로코를 스페인과 양분하고 있던 프랑스는 위기를 느끼게 됩니다.
최초 프랑스는 전쟁에 적극 개입하기보다 관망했으나 연이은 스페인 군의 패전과 정치적 혼란 등으로 인해 전쟁 수행 능력이 극히 떨어지자,
모로코 프랑스 식민지까지 리프 공화국의 손길이 뻗치는 것을 우려하게 됩니다.
결국 1924년 프랑스는 스페인을 돕기로 결심하고 전쟁에 참전하기로 합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