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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과 미국 증시……
뉴욕거래소의 1960년대 모습은?
(2017년 10월 기사)

베트남 전쟁과 미국 증시…… 뉴욕거래소의 1960년대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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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0월 기사)
기고: 디지털서비스팀 권형우 매니저
안녕하세요? 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한다는 처서를 지나 벌써 9월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느껴지네요. 저번 호에서 다룬 1940년대 미국 증시 이야기 재미있으셨는지요? 그렇다면 오늘은 1950년대 미국 증시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50년대 미국의 모습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기간 동안 미국을 계속 이끌어왔던 민주당 정부가 교체되었습니다. 그리고 1953년 2차 세계대전의 전쟁영웅이자 원수였던 아이젠하워는 국민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공화당 후보로 출마, 미국 민주당의 스티븐슨 후보를 물리치고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 이후 건강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는 재선에 성공하며 1960년대 초까지 대통령 자리를 유지합니다.

1950년대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격변기 중 하나였습니다.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진영,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진영이 냉전(Cold War)이라 불리는 장기 대치상태를 이어 나갔습니다.

안녕하세요? 한해의 결실을 거두는 풍요로운 10월이 되었네요. 언제나 시간이란 새삼 빠르게 느껴지기 마련이지요. 지난 시간에는 들려드린 1950년대 미국 증권시장의 사정, 재미있으셨나요? 그렇다면 오늘은 1960년대 증시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

1960년대 미국 사회를 단적으로 상징하는 용어는 바로 '베트남 전쟁'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뉩니다. 일부 사람들은 베트남 전쟁을 '실패한 전쟁' 혹은 '무고한 민간인의 피해와 국수주의로 점철된 전쟁'이라고 절하하는 반면, '영웅적인 전쟁', '당시 공산주의 세력의 침공에 맞섰던 투쟁'이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1964년 8월 2일 베트남 통킹만에서 북베트남 해군 어뢰정이 미군의 구축함 USS 매독스를 공격하는 '통킹만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를 빌미로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이 시작됩니다. 그 이후인 1995년엔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었던 맥나마라의 고백으로 이 통킹만 사건 자체가 미국에 의해 조작되었음이 드러났지만, 당시 미국은 베트남에 대한 전쟁을 개시합니다.

탱크 사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사실 전쟁 전에도 북베트남 공격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이 있었으며 당시 남부 베트남 독재정권이 독재와 부패가 심각했던 수준이라 이에 대한 논란도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나 한국 전쟁과 달리 전면적인 지원은 받지 못한 채 자국의 우방국 중심으로 군대를 편성합니다. 우리나라 역시 미국의 우방이었던 만큼 중화민국, 호주, 타이 등과 함께 베트남에 군대를 파견했지요.

베트남 전쟁은 정치 뿐 아니라 미국 사회에 많은 이슈를 던져주었는데요. 미국의 예상과 달리 전쟁이 지루한 장기전으로 변화하고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미국 전역에 확대되면서 반전 운동도 일어났습니다.

시위하는 사람들 사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반전 여론이 드높아지면서 국가와 반전운동 세력과의 충돌이 벌어지는 가운데, 마닐라 정상체제(베트남 참전국들 간의 협력체제)가 가동되면서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필승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그럼에도, 전쟁은 승리가 아닌 1973년 휴전으로 종결됩니다. 그 이후,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에 무력 침공하고 베트남의 공산통일이 이뤄지면서 미국의 전쟁은 결국 패배였다는 결론으로 귀착되고 마는데요. 이는 1970년대에 미국의 주식시장 역사를 돌아볼 때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인플레이션과 성장

1960년대의 베트남 전쟁이 미국에 남긴 것은 '성장'과 '인플레이션'이었습니다. 우선 1950년대 한국 전쟁과 마찬가지로, 1960년대 역시 군수기업이 중점적으로 수혜를 입기 시작합니다. 특히 베트남 전쟁은 미군 총 사상자만 해도 5만 명을 넘겼을 만큼 상당히 큰 전쟁이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전쟁 경제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주식시장에는 악재로 떠올랐는데요. 인플레이션은 금리상승을 동반해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면이 커서 실제 많은 기업들이 곤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업무보는 여성 사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1950년대 강세장을 즐겼던 투자자들이 많았던 만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투자 악화로 어려움을 겪던 기업들의 부진한 실적은 투자자들을 실망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 기업에서는 소수 주주 청원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장은 점차 과열되기 시작했고, 이는 또 다른 시작을 열었습니다. 이후 10년 간 미국 증시의 상승을 즐겼던 투자자들은 1970년에 펼쳐질 대약세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뮤추얼펀드의 전성기

뮤추얼펀드의 전성기는 1960년대였습니다. 당시 미국의 투자신탁 대부분은 개방형으로 구성됐는데, 이들이 투자하고 있는 주식 자산은 뉴욕시장의 5%대에 해당했습니다. 전 인구의 10%가 미국의 투자신탁이나 뮤추얼펀드 등에 가입하고 있을 정도로 자산운용업계의 황금기였습니다.

특히, 이들의 성장에는 개인의 가입활성화 뿐 아니라 퇴직연금, 보험 등 기관들이 자체 뮤추얼펀드의 자산을 늘렸던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유 자산의 회전율을 높이는 펀드 등도 출시돼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지요.

1960년대 뉴욕거래소 이야기, 어떠셨나요? 다음호에서는 1970년대 미국의 주식시장을 살펴보기에 앞서, 당시 최고의 성장세를 누렸던 새로운 이머징마켓이자 오늘날의 '중국'과 같이 가파른 성장을 보였던 일본의 주식시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냉전의 여파는 전쟁 뿐 아니라 기술경쟁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프르쿠니크 1호를 발사하자 충격을 받은 미국이 이에 맞춰 우주개발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충합니다.

 

미국 시골 거리 사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이 와중에 미국과 소련의 이념전쟁은 매카시즘이라는 광풍을 낳기도 했는데요. 미국 위스콘신 주 상원이었던 J.R 매커시의 주장으로 시작된 반(反) 공산주의 열풍은 초창기에는 미국을 수호하는 애국적인 주장으로 받아들여졌으나, 후에 마녀사냥으로 모습이 변하기도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1950년대는 민권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때이기도 했는데요. 그동안 목소리를 숨겨왔던 흑인들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1951년, 린다 브라운이라는 이름의 딸을 둔 올리버 브라운 목사가 흑인 자녀들이 백인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청원을 냈고, 연방대법원은 1954년 이를 수용했습니다. 또한 1955년 흑인 여성이었던 로사 파크가 버스에서 백인 승객에게 좌석 양보하는 것을 거절했다가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유명한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중심으로 하는 민권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습니다.

1950년대 미국 증시, 탄탄대로의 길로

전쟁 사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미국의 증권시장은 1950년대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강세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소비재 소비가 늘고 경기 회복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면서 미국은 장기 랠리 국면에 접어듭니다. 특히 군수산업들은 큰 이익을 거두었습니다. 냉전으로 인해 미국과 소련이 동맹국을 확보하고 군비를 확충하는 데 집중하면서 호황을 맞은 군수산업체들을 중심으로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게 됩니다.

하늘을 나는 공군 비행기 사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실제로 이들의 성장률은 엄청나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61년 1월 대중연설에서 이들의 성장세에 대해 언급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군수기업의 성장은 이에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많은 수익을 안겨주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미국 주식시장에서 M&A(인수합병) 역시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당시 많은 기업들의 가치가 실제 주식의 가치보다 낮은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저평가된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인수, 합병이 더욱 더 속도를 내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요. 이는 미국 1950년대 활황장의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로 시장에서 천대받던 직업 중 하나였던 주식중개인도 장기 랠리를 타고 시장에서 우대받는 직업으로 다시 복귀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형 금융백화점이 곳곳에 설립되어 주식 중개 뿐 아니라 펀드 등의 상품을 판매하며 인기를 모으기 시작합니다.

뮤추얼펀드의 전성시대

증시 활황과 함께 뮤추얼펀드 역시 큰 규모로 성장합니다. 1954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계의 금융재산 비중에서 뮤추얼펀드가 현물주식의 비중을 넘어서게 됩니다. 즉, 현물 주식에 부담을 느끼거나 그에 투자할 만큼 자금에 여유가 없었던 투자자와 가계를 중심으로 뮤추얼펀드 열풍이 불었던 것인데요. 이처럼 1953년에는 국제 뮤추얼펀드가 설립되면서 펀드 시장이 대중의 주식투자를 선도하는 매체 중 하나로 떠오르게 됩니다.

메인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댓글목록

전형락님의 댓글

전형락

잘보았습니다.
경제 공부도 가끔해야죠.

이태용님의 댓글

이태용

전쟁 군수물자 
주식은. 별 상관없이 다른 무엇으로 반등을 노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