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위 그림처럼 대공황 시대에는 실직한 실업자들의 생계유지를 위한 배급소를 미국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대공황은 무엇이고, 왜 발생한 것일까요?
대공황은 역사적으로 1929년에 발생한 대규모 공황 사태를 의미합니다. 그 규모와 충격이 대단했기에, 일반적인 공황이 아닌 대공황(Great DeDepression)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죠.
후세 학자들은 1929년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미국의 대공황 원인을 밝히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가장 일반화된 이론은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으로, 사회의 전체적인 수요가 감소하면서 공급과잉상태로 인해 결국 공황이 발생해 대량의 실업과 경제난이 닥쳤다고 보는 시각입니다.
하지만 이후 프리드먼 등을 비롯한 신고전학파가 등장해 기존과 다른 이론을 내세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그들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걸쳐 중앙은행의 실책에 집중했는데 프리드먼은 이를 통해 대공황의 원인이 수요 문제가 아니라 화폐 통화량의 조절 실패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사실 대공황의 원인을 하나로 규정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 만큼 1920년대와 1930년대 대공황의 징조는 여러모로 나타났습니다.
1920년대 미국은 명실상부한 세계 제1의 국가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은 경제의 중심이 유럽에서 3세계 국가들로 이동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등이 존재했지요.
특히, 미국은 전쟁 이후 피폐화된 유럽을 대신해 제 1의 농업국가로의 위치를 확고히 했고 유럽 국가들에게 채무를 지원해 제 1의 채권국으로서 높은 위상을 가진 상태였습니다. 유럽 국가들이 전후복구에 나서면서 미국의 경제 역시 함께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 역시 근래 없는 호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자본은 제 3세계로 수출되며 지속적으로 부를 창출해 냈습니다. 특히, 소비재 사업과 주택 사업 등이 번창하면서 미국의 경제에는 유례없는 호황이 지속될 수 있었지요. 실제로 오늘날 보편화된 라디오, 자동차 등도 이 때 출현하여 미국 중산층의 전유물로 급부상한 것입니다. 이러한 1920년대 미국의 호황기는 <위대한 개츠비> 등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를 미국인들은 '광란의 1920년대(Roaring Twenties)'라 불렀습니다.
한편,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 역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전후 유럽 국가들이 가장 염두에 뒀던 것은 경제의 회복과 금본위제로의 복귀였습니다. 금본위제란 화폐를 금과 교환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화폐의 가치는 금과의 교환비율에 따라 결정됩니다.
유럽 국가들은 자신의 화폐를 금의 가치에 모두 고정시켜 놓음으로써 통화량을 통제하고 환율의 변동을 최소화하며 고정환율제를 유지해 왔습니다. 환율이 고정되어 있다 보니 수입가격이나 수출가격 역시 고정되어 물가에 대한 통제도 쉬웠습니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물가가 치솟는 바람에 유럽은 금본위제를 일시적으로 포기해야 했지요. 그래서 다시 이에 복귀하는 데에는 민감한 편이었습니다.
1922년 영국 등은 유럽의 경제복구를 논의하기 위해 제노바 회의를 주최했습니다. 당시 사회주의 혁명 때문에 관계가 소원해진 러시아나 패전국 독일까지 초청한 회의였지만, 정작 회의의 흐름은 지지부진했고 오히려 패전국 독일과 사회주의 국가 러시아가 서로 우호조약인 라팔로 조약을 체결하는 바람에 유럽 각국 간 불신만 키운 채 끝났습니다. 다만, 이 회의에서 유일하게 결론이 난 사항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는 바로, 각국은 부분적인 금본위제로 돌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금본위제가 진정 대공황의 단초가 되었는지에 데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본위제가 대공황의 원인으로 꼽히는 이유는 각 국가들이 금본위제 유지에 집중하느라 적극적인 경기부양 정책 등을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화폐발행=금 유출'을 의미하므로, 적극적인 재정정책 및 통화정책을 펴지 못하게 해 대공황을 악화시켰다는 것이지요.
한편, 유럽의 회복이 가시화되면서 세계의 공급 자체는 증가하고 전후 경제가 끝을 맺으면서 수요는 감소하고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주식시장과 플로리다 지역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시장의 투기는 1920년대 후반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시장을 진정시켜 줄 정책을 원했습니다. 실제로 그 당시 금리 인상 등을 통해 경기의 지나친 활황을 진정시키자는 이야기가 활발하게 나오고 있었는데요. 오히려 미국은 오히려 금리를 낮추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결정을 주도한 것은 미국 뉴욕연방은행총재였던 벤자민 스트롱이었습니다.
그는 막 설립된 미국연방준비위원회에 속한 뉴욕연방은행의 총재에 불과했으나 실질적으로 연준을 움직이고 있었답니다. 그는 엇박자 금리정책을 펴서 미국 내에서도 뜨거운 논란을 가져왔습니다. 구체적으로, 그는 1927년 과열 국면에서 금리를 내려 주식시장의 활황을 가져왔고 반대로 침체 조짐이 보였던 1929년에는 금리를 올리는 정책을 펴 당시 대통령이었던 후버로부터도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영국과의 공조 등을 강조하며 정책을 그대로 밀어붙였습니다.
문제는 벤저민 스트롱이 대공황이 일어나기 바로 3개월 전 급사하면서 정책의 키를 쥔 인물이 부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벤저민 스트롱의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대신할 인물이 미국에는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전조들이 미국의 대공황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결국 1920년대 미국의 주식시장은 황금기를 벗어나 대공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대공황의 배경과 본질에 대한 이해가 잘 되었나요? 다음 시간에는 주식시장의 폭풍이 불러온 대공황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도록 하지요.
메인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http://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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