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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분석'의 창시자, 찰스 다우가 본 주가의 흐름
(2017년 04월 기사)

(The Price Movement)

'기술적 분석'의 창시자, 찰스 다우가 본 주가의 흐름 (The Price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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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04월 기사)
기고: 디지털서비스팀 권형우 매니저
벌써 2017년 1분기가 끝나고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는 4월입니다. 올 한해 꼭 이루겠다고 다짐했던 목표들은 잘 지켜나가고 계신가요? 이 시점에서 잠시 멈춰서 각자의 목표를 날카롭게 재정비해 보는 건 어떨까요? 지나간 시간에 아쉬워하기보다,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더 멋지게 보낼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간에는 주가 흐름에 대해 최초로 기술적 분석을 시도해 미국 주식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 전설적인 인물, '찰스 다우'에 대해 소개해보려 합니다.

기술적 분석의 시대를 연 찰스 다우

흔히 '뉴욕 타임즈', '뉴욕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을 미국 3대 신문으로 꼽는데요. 특히 '월스트리트 저널'은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와 더불어 세계 경제지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때문에 가수 김장훈 씨가 독도 광고를 뉴욕포스트와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어 큰 화제가 되기도 했죠.

찰스 다우 흑백 사진

'월스트리트저널'의 창간자는 바로 찰스 다우입니다. '다우'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 중 하나인데요. 실제로 우리가 보통 미국증시를 볼 때 활용하는 지표 중 하나인 '다우존스 산업지수(Dow Jones Industrial Average)' 역시 그가 창안한 개념이랍니다.

하지만 그의 유명세를 알린 것은 후세에 그가 <다우 이론(Dow Theory)>의 정립자로 알려져 기술적 분석가들의 시초로 불리면서부터입니다.

찰스 다우, 월스트리트를 향해 달려가다

찰스 다우는 1851년 미국 코디니켓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생계가 어려웠던 그는 각종 직업을 전전하다가 18세에 신문사에 입사해 기자로서의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의 회상에 따르면 그가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거친 직업의 수만 해도 무려 20개에 이르렀다고 하는데요. 삶은 어려웠지만 끊임없이 노력한 끝에 중퇴자임에도 불구하고 기자에 합격했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그는 스프링필드에서 발행되는 '리퍼블리컨(Republican)'의 저명한 편집자 새뮤얼 바울스 밑에서 신문기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기자로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특파원으로 금광과 은광을 누비며 현지 탐사보도를 수행하고 철도회사와 증기선 업체, 범선업자 등과의 갈등을 소개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구축한 찰스 다우는 어느 날, 뉴욕으로 특파원 업무 파견을 나서게 됩니다. 그리고 뉴욕에서 그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됩니다.

뉴욕 증권거래소 사진

당시는 뉴욕 증권거래소가 막 태동하던 시기였는데요. 그는 뉴욕의 일상을 취재하기보다 증권의 분석 및 시세 연구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국 그는 증권을 다루는 전문지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회사를 퇴사합니다. 그리고 금융인 찰스 밀포드, 친구 에드워드 존스와 함께 1882년 회사를 설립합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다우존스'라는 이름은 위 '찰스 다우'와 '에드워드 존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랍니다.

다우 이론 대공황을 예측하다

처음은 늘 미약하지요. 셋이 잡지를 만들던 장소는 겨우 거래소 근처 음료수 가게 지하층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뉴욕 최초의 주식정보지 '커스토머스 애프터눈 레터(The Customer Afternoon letter)'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 후 심층보도기사에 다우의 인기까지 겹쳐 무려 2년 만에 인쇄기를 살 수 있는 돈을 가져다 준 이 잡지는 1889년 월스트리트 저널로 이름을 개명,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1889년 월스트리트 저널 사진

찰스 다우는 너무 많고 복잡한 각 개별 기업의 주가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 위해 미국 우량종목만을 모아 지표를 만들어 소개했는데 이것이 바로 다우존스 산업지수의 시작입니다. 이 때 그는 12개 우량기업의 개별종목 주가를 단순 합산해 평균을 도출했습니다. 이렇게 주가를 표현하는 방식을 '다우식'이라 합니다.

다우 존스 간판 사진
ⓒ star5112, flickr

뿐만 아니라, 찰스 다우는 칼럼리스트로서 자신의 주가 분석과 전망을 신문에 실어 자신의 이론을 전파했는데요. 이것은 훗날 다우가 사망한 뒤 월스트리트 저널의 편집장이 된 친우 월리엄 해밀턴 등에게 계승되면서 다우 이론(Dow Theory)이라는 이름이 붙게 됩니다. 실제로 다우 이론은 1929년 대공황을 정확히 예측해 지금까지 기술적 분석의 전범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시장에는 흐름이 있다

찰스 다우는 칼럼리스트, 분석가를 자처했기에 비록 실제 이론을 세우지는 못했어도 그의 생각은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기고한 칼럼에 충분히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글에 따르면, 기업의 주가는 단기적으로는 큰 변동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가치에 수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평소, 그는 일반 대중들과 주식 투자가들의 시각을 면밀히 구분하고 그들의 행태를 분석했는데요. 대세상승과 대세하락의 기간을 명확히 구분하고, 기업과 산업이 실적 바닥에서 탈출하면 대중들의 투자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가 주가가 상승하고 결국 이것이 인플레이션과 거품을 유발해 대세하락을 가져온다는 것을 예견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투자가들이 대중과 반대의 시각으로 접근하면서 주식을 매매, 이익을 거둔다고 보았습니다. 의외로 기술적 분석가로 알려져 있지만 찰스 다우 역시 기업의 가치에 걸맞은 매매를 할 것을 촉구했답니다.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가치를 읽고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식견을 밝힌 것이죠. 미국 주식 시장에 큰 영향을 준 찰스 다우는 5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오늘도 미국 증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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