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실님의 댓글
김봉실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투자신탁의 연원을 찾아보면 주식시장과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1822년 네덜란드의 왕이었던 월리엄 1세가 투자수단으로 오늘날의 신탁과 같은 개념을 제안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펀드, 투자신탁이 나타나게 된 것은 1860년 영국에서 설립된 식민지 신탁회사(Colonial Investment Trust)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미국에서 펀드가 자생적으로 나타난 것은 1893년으로, 이때 미국 보스턴에서 출발한 'Boston Personal Property Trust' 등이 생겨났습니다.
위 보스턴에서 출발한 'Boston Personal Property Trust'은 오늘날의 펀드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소액밖에 가진 것이 없어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일반 투자자들을 위해 자금을 한 데 모아 다양한 증권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또한 그 즈음 철도에 투자하는 'Railway & Light Securities Company'를 비롯하여 다양한 기업 및 자산에 투자하는 형태의 펀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 특정 지역에 한정돼있고 가입 범위도 친척 등에 지나지 않은 폐쇄형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한편, 남북전쟁을 끝낸 미국은 다시 산업발전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서부개척이 활기를 띠게 되면서 천연자원의 개발 뿐 아니라 인구의 증가, 노동자의 증가, 철도의 발달 등의 현상이 미국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강력한 산업국가로 발돋움하게 되었고 당시 남미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던 스페인과 전쟁을 벌여 1898년 스페인에게서 쿠바와 필리핀 지역을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경제와 산업은 급속도로 발달했지만 펀드 설립을 위해 투자를 하는 모습은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 역시 지금의 이머징 마켓 국가들이 그러하듯이 외국인 투자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이에 상대적으로 국내 국민들의 주식투자 및 저축 여력은 적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시 미국인들은 주식 투자에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미국인들은 저축, 보험 등에 투자할 여력은 있어도 당시 투자신탁에 투자하기에는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가 테러로 암살되면서 그동안 식민지와 확장정책을 두고 갈등을 빚어왔던 유럽 국가들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로 전 유럽을 뒤흔들었던 1차 세계대전의 시작인데요. 여기서 미국은 영국과 독일을 지원하며 무역 이득을 얻는 한편, 독일이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미국의 상선을 침몰시키자 전쟁에 참전, 결국 승전국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전례 없는 전쟁 호경기를 맞으면서 미국 국민들의 자산은 크게 증가했고 이에 투자신탁에 투자할 수 있는 투자자의 수 역시 증가하게 됩니다. 기존에는 '주식투자는 부자들의 돈 잔치'로 여겼던 일반 대중들이 이제 투자를 통한 자산 축적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자연스레 펀드 역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미국 최초의 펀드는 1921년 설립된 미국국제신탁(The International Securities Trust of America)으로 일종의 뮤추얼 펀드와 같은 구조를 가지면서 폐쇄형으로 조직되었습니다.
미국 국제 신탁은 초창기 소규모로 시작했으나 1924년 5천만 달러 이상의 자산 규모를 자랑할 정도로 큰 성장을 이루었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투자신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유익한정보감사합니다.
아하~
새삼 유익한 정보입니다.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투자의 중요성을 새삼 깨우치게 되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