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트화에 대한 공격, 즉 달러 매수와 바트화 매도 포지션의 확대는 1996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1997년입니다. 이후 태국의 위기는 아시아 금융위기의 도화선으로 작용하게 되는데요.
바트화의 가치가 하락하는 와중에도 태국 정부는 환율 문제보다 먼저 당시 만연한 불경기를 잡기 위해 재정정책에 나서 경기 부양에 나서려는 시도를 합니다. 하지만 고정환율제가 이용되는 상태에서 바트화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외환보유고를 적정수준 유지하는 등 긴축 정책이 필요했는데요. 태국 정부가 오히려 국고를 유출시키려는 행동에 나서면서 태국 정부의 신뢰도는 하락하게 됩니다.
이렇게 된 데는 태국 정부의 오판이 큰 원인이었습니다. 실제로 태국 정부는 1996~1997년 초까지만 해도 이번 사태가 금융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었답니다.
하지만 태국 경제 자체의 리스크가 심화됨에 따라 환 투기가 계속되면서 민간 외환보유고는 이미 예전에 바닥난 상태였지요. 이를 깨닫게 된 태국 정부는 정부의 외환보유고로 바트화의 가치하락을 막겠다고 결심합니다. 실제로 1997년 금융기관들의 부실, 경제지표의 부진, 바트화의 평가절하가 이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외국인들은 달러를 사고 바트화를 공매도하기 시작했는데요. 이에 태국 정부는 국가 외환보유고를 투입해 환율 방어에 나서게 됩니다. 이 덕분에 태국 바트화는 1997년 3~4월까지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그렇지만 1997년 5월에 이르러 바트화는 슬슬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태국 정부에서는 바트화의 평가절하에 동의하지 않던 재무장관에 대한 교체설이 돌기 시작했는데요. 이 시기에 맞춰 투기 세력들의 바트화 공매도-달러 매입이 대폭 강화됩니다. 이에 대한 환율방어로 인해 무려 200억 달러 가까운 외환보유고가 몇 달 만에 증발해버리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1997년 연초 459억 달러에 달했던 태국의 외환보유고는 25억 달러 수준으로 급감했고, 결국 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를 받아들여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의 이행을 선언합니다.
태국의 금융위기는 앞에서 말했듯이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태국이 금융위기의 첫 희생양이 된 이후, 나머지 동남아 지역까지 금융위기가 전이되기 시작합니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들도 피해를 입게 되는데요. 그 중의 대표가 바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입니다.
우선 동남아 국가들의 외환위기 상황에 대해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태국 바로 아래에 위치한 말레이시아부터 살펴볼까요?
말레이시아 역시 경제 펀더멘털을 좋은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외국인 투자와 수출의 빠른 성장으로 말레이시아는 10년째 연 9%대의 고속성장을 거듭하는 등 황금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실제 말레이시아 정부를 이끌던 마히티르 수상은 '비전 2020'을 외치면서 반드시 2020년에 선진국가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힙니다. 하지만 태국과 마찬가지로 말레이시아도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연평균 9% 대의 고속성장을 10년 간 반복하면서 말레이시아는 높은 인플레이션과 큰 빈부격차 등 여러 문제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태국이 겪었던 것처럼 말레이시아 역시 불황을 경험했습니다. 1995년에는 GDP의 8% 규모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는 등 어려움이 커졌지요. 결국 태국 바트화에 이어 말레이시아의 링깃화 역시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외환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고정환율 체제에서 링깃화의 가격은 1996년 7월 이전까지만 해도 1달러 2.5 링깃화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었는데요. 이후 환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링깃화의 가치가 1달러에 4.5 링깃 수준까지 하락하게 됩니다. 즉, 무려 80% 이상 말레이시아의 통화 가치가 급락한 것입니다.
이에 말레이시아의 화폐가치가 급락하고 외국인들이 자본시장에서 철수하면서 덩달아 주식시장도 크게 흔들립니다. 이 때문에 당시 엉망이 된 말레이사의 경제를 두고 말레이시아 마히티르 총리가 퀀텀 펀드의 조지 소로스를 비난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한편, 말레이시아와 태국에 비해 인도네시아는 상당히 위기를 낙관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인도네시아의 경우 태국이나 말레이시아처럼 완전히 고정환율제를 취하는 게 아니라 환율 변동을 허용하되 그 수준을 일정 범위 내로 묶어놓는 관리변동환율제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다른 나라에 비해 경제지표도 양호했던 점도 자신감의 원천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인도네시아 역시 위기가 전이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태국이 외환위기로 흔들리기 시작하자 변동환율폭 범위를 8%에서 12%로 늘리는 등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바트화, 링깃화에 이어 루피화도 공격대상이 되면서 인도네시아의 루피화는 변동제한폭인 12%를 넘는 큰 하락을 겪게 됩니다. 결국 외환보유고 소진이 시작되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한편, 변동환율제를 도입합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인도네시아 기업들이 외화부채를 갚기 위해 달러를 매입하면서 환율이 더 상승하는 역효과가 발생합니다.
한편, 환율이 폭등, 루피화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면서 생필품 품귀현상과 인플레이션이 인도네시아에 만연하게 됩니다. 결국 서민과 노동자들은 생계에 위험을 받게 되자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곧 학생과 지식인이 가세하면서 인도네시아의 반정부 시위로 발전합니다. 결국 1967년부터 1998년까지 엄청난 장기독재를 이어오던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부통령 하비비에게 인계하며 권좌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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