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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980년대 후반 주식시장의 모습은?
(2018년 05월 기사)

미국 1980년대 후반 주식시장의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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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05월 기사)
기고: 디지털서비스팀 권형우 매니저
안녕하세요? 오늘은 국제 증권시장의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의 모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980년대 블랙먼데이 이후 미국 증시는 어땠을지 함께 공부해 볼까요?

1987년 블랙먼데이 이후

1987년,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블랙먼데이는 상당한 후유증을 몰고 왔습니다. 블랙먼데이의 원인으로는 당시 금융기관 및 펀드 업계 등이 주도적으로 활용했던 포트폴리오 보험(Portfolio insurance)이 유력하게 지적되고 있지만, 그와 상관없이 블랙먼데이가 시장에 남긴 상처는 컸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서킷 브레이커와 같은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전력차단장치 사진

서킷브레이커는 전력차단장치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로, 증권시장에서는 시장이 크게 급락할 경우 거래를 일시 중지시키는 제도를 칭할 때 씁니다. 우리나라에도 서킷브레이커 제도가 도입돼 있어 10% 이상 급락할 경우 20분간 장 거래가 중지됩니다. 한편, 블랙먼데이 이후에 탄생한 또 다른 상품이 있습니다. 바로 상장지수펀드(Exchange Traded Fund)입니다.

상장지수펀드 사진

블랙먼데이 이후 자산운용사들은 깊은 반성을 시작했습니다. 인기를 끌었던 기존의 인덱스 펀드의 경우, 투자자들이 환매를 요청했을 때 펀드 포트폴리오에 속한 주식을 반드시 매도해야만 환매금을 지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운용사들은 펀드 수익률 관리를 위해 프로그램 매매를 이용하곤 했지요. 결국 이 방식이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쳐 블랙먼데이를 일으켰다고 비난받았습니다. 이에 증권가는 프로그램 매매를 줄일 수 있는 새로운 펀드 형태를 고민했고 그 결과, ETF가 탄생합니다. 비록 펀드지만 상장을 통해 거래가 가능해 환금성이 높고, 무엇보다 자산운용사 입장에서도 환매 부담이 줄어드니 자본금 조달이 쉬워졌습니다.

미국 화폐 달러 사진

미국, 세계의 제1 강자로 떠오르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사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1932년의 블랙 튜스데이, 즉, 검은 화요일과는 달리 블랙먼데이는 대공황을 불러오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왜일까요? 미국 경제에 호재가 됐던 사건들을 하나하나 짚어봅시다.

우선, 1985년 플라자 합의가 있습니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뒤에 살펴볼 일본 경제의 몰락을 가져오는 단초가 되었지만, 미국 경제에는 긍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플라자 합의는 1985년 9월 22일 뉴욕에서 있었던 G5(당시 프랑스, 서독, 일본, 미국, 영국)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들의 합의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강제적으로 달러가치 절하가 이뤄지면서(반대로 일본은 엔화절상을 타개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시행하면서 버블을 만들게 됩니다.) 당시 미국의 쌍둥이 적자를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편, 레이건 대통령은 자신의 이름을 딴 레이거노믹스를 통해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킵니다. 레이건 행정부의 또 다른 정치적 업적 중 하나는 소련의 붕괴입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전 '데당트' 분위기에서 벗어나 소련에 강세전략을 구사, 군비 증강과 스타워즈 계획의 실행을 내세웠는데요.

외부에서는 안정적인 국가로 보였던 '철의 장막' 소련은 이러한 미국에 전략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다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기 시작합니다. 특히, 공산주의 특유의 비효율성과 1979년 아프간 전쟁, 민족국가들 간의 갈등으로 소련은 이미 어려움에 빠진 상태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소련은 고르바초프가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페테스트로이카'를 내세우면서 해체됩니다.

레이건 행정부의 종결과 1980년대의 끝

조지 허버트 부시를 사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1988년 레이건은 자신의 부통령이었던 조지 허버트 부시를 차기 대선후보로 추천합니다. 레이건 행정부의 경우 강한 미국의 이미지를 건설하고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을 잡았지만, 반대로 구조조정으로 제조업 노동자들의 실업을 양산하고 국가부채의 규모를 늘렸다는 악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레이건 행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인기는 높았기에 무난하게 공화당은 다음 정권을 계승받게 됩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있었던 레이건의 경제정책의 후유증이 1990년대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으면서 1990년대 초 미국 경제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댓글목록

조병완님의 댓글

조병완

유익한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