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되니 이제 날씨가 제법 따뜻해졌습니다.
아직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많이 발생하면서 마스크를 벗기는 어렵지만, 따스한 봄날처럼 우리 일상에도 곧 변화가 찾아오기를 바라봅니다.
지난 글에서는 유럽석탄공동체의 탄생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유럽석탄공동체는 후일 유럽경제공동체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유럽 연합의 산파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유럽 화폐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유로화 이전의 유럽의 통화
역사를 살펴보면 유로화 이전에 유로화의 역할을 했던 여러 화폐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고대 로마제국이 독일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유럽을 지배하던 시절, 로마제국의 화폐 데나리우스는 전 유럽에서 통용되는 화폐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스부터 오늘날의 영국까지 로마의 손길을 거친 지역들은 이 데나리우스 화폐를 썼습니다.
이후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여러가지 화폐들이 등장했으나, 그 중에서 중요하게 볼 만한 화폐는 두카트입니다.
이 두카트는 1200년 나폴리 왕국에서 발행된 화폐로 이후 베네치아 공화국이 이를 공식 화폐로 지정하면서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두카트가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향력 때문이었습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이끈 국가 중 하나이자 곳곳에 식민지를 개척하며 번성했던 베네치아 공화국 덕분에 그들의 공식 화폐는 일종의 기축통화로 사용되면서, 세계 곳곳에 퍼졌습니다.
특히 베네치아 두카트를 모방해 여러 국가들이 두카트를 발행하기 시작했는데
헝가리나 네덜란드 등의 국가들도 베네치아 두카트를 본뜬 두카트를 사용하면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두카트가 환율 변동에 대단히 안정적이었다는 점입니다.
사실상 두카트는 순도 높은 황금으로 만들어기에 말 그대로 금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베네치아 공화국은 두카트의 순도와 무게를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이것은 화폐의 신뢰도를 대단히 높여주었습니다.
과거 유럽 왕실들은 화폐에 일정 부분 다른 금속을 섞는 방식으로 주조 차익(화폐의 액면가와 실제 발행에 든 비용의 차이)를 누리곤 했습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런 유럽 왕정들과 달리 주조 차익보다 화폐 가치의 안정에 최선을 다했고, 때문에 높은 신뢰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두카트의 사용 사례를 보면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장 2세는 흑태자 에드워드에게
붙잡혀 목숨의 대가로 몸값을 일부 지불했는데 이 때도 두카트를 사용했습니다.
이렇듯 중요하게 사용된 만큼 당시의 유로화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유럽 각국은 각자 통화 체제를 유지했나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발족되기는 했지만 유럽 국가들은 화폐만큼은 고유의 화폐를 사용했습니다.
프랑스는 프랑, 독일은 마르크, 이탈리아는 리라 등 고유의 화폐를 발행하면서 국가들이 각자 통화정책을 펼치며 지내왔습니다.
유럽 국가들이 화폐 통합을 서두르지 않은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우선 화폐를 자체적으로 발권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일단 중앙은행은 화폐 발권을 유지하면서 시뇨리지(앞에서 봤던 주조 차익이라는 단어를 기억하시죠? 이를 시뇨리지라 합니다)로 이익을 창출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각국의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자율적으로 펼쳐 경제를 관리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딱히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할 정도로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환율은 소위 '브렌트우즈 체제'로 운영되어 왔습니다.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 브렌트우즈의 마운트 워싱턴 호텔에서 44개의 국가들이 통화회의를 가졌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어떻게 전 세계 통화를 관리할 것이냐가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기 앞서 갑자기 연합국 경제관료들이 통화 회의를 한 것은 대공황과 관련이 깊습니다.
대공황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이 통화제도의 문제입니다.
과거 여러 국가들은 1차 대전이 끝나자 전후 회복을 위해 금태환을 일시 정지하고 화폐 발행을 늘리다가 영국, 프랑스를 필두로 금본위제로 다시 복귀하는 정책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이 변화가 급격하게 발동되는 바람에 세계적으로 수요가 급격히 침체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물론 화폐문제 하나로만 대공황이 발생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이런 불행을 막기 위해
유럽 경제 관료들이 모여 앞으로 전 세계 국가들은 어떻게 화폐 정책을 펼쳐야 할지를 논의한 것입니다.
브렌트우즈 체제의 특징
여기에서 미국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미국 달러를 기준 통화로 삼은 금본위제인 브렌트우즈 체제가 탄생하게 됩니다.
우선 브렌트우즈 체제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미국의 달러만 금으로 교환이 가능합니다. 다른 나라의 통화를 금으로 바꾸려면 우선 해당 통화를 달러로 바꾼 뒤, 다시 달러를 금으로 바꿔야 합니다.
2. 금 1온스 당 35달러로 고정됩니다. 이 비율은 고정되었기 때문에 달러의 발행은 미국이 얼마나 금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언뜻보면 미국이 최고고 자기들의 화폐인 미국 달러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으니 매우 유리한 것 같지만 미국 입장에서도 달러를 무조건 많이 발행할 수는 없습니다.
보유하는 금만큼 발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갑자기 약속을 무시하고 달러를 마음대로 찍어내지 않는 이상, 달러의 화폐 가치는 안정적입니다.
좀더 시각을 넓혀 보면 달러의 가치는 금의 보유량, 가치와 연동됩니다. 그리고 각국의 통화 가치는 달러를 기준으로 연동됩니다.
즉, 달러 가치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각국의 환율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유럽 국가들은 굳이 새로운 화폐를 만들 필요도 없었고 각자 자신들의 통화체제를 유지하면서 지내왔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이 흐름이 깨지면서 각 유럽 국가들은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됩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