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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는 유럽 통합에 대한 이야기 전에 유럽에서 과거 통합이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오늘은 유럽 통합을 위해 움직였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유럽 통합의 아버지, 장 모네
유럽 통합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은 여러 명이 있지만, 유럽 통합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 인물로는 대부분 주저없이 같은 사람을 언급합니다.
바로 프랑스의 장 모네입니다. 일찍이 장 모네의 집안은 코냑 중개업을 했습니다. 영국, 독일 등 각국의 상인들과 국제적인 거래를 하는 경우가 잦았고,
때문에 장 모네 역시 자연스럽게 국제적인 정세와 경제에 관심을 가지며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후에 그가 회상한대로 그가 태어난 코냑 지방 사람들은 전 유럽을 강타했던 민족주의에는 관심이 없었고,
글로벌리즘(Globalism)을 갖춘 세계주의자에 가까웠습니다. 이는 그가 나중에 유럽 통합을 주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모네는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군에 입대하고자 했지만, 복무부적합 판정을 받아 입대에 실패합니다.
대신 그는 독일에 맞서는 연합군의 군수물자 통합, 영국과 프랑스의 공군 통합 운영 등을 주장했습니다.
재능을 인정받은 모네는 프랑스 비비아니(René Viviani) 수상의 크림반도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 구매공조 제안에 참가하는 등 정계에서 활발히 움직입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당시 난관에 부딪힙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공군을 통합하자는 것은 영국의 반대에 부딪혔고,
양국 모두 전쟁 승리를 위해 공동으로 작전을 입안하고 전쟁을 하는 데는 동의했으나, 군수물자까지 합쳐서 관리하는 데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모네는 전쟁 중반 중요한 식량인 밀의 공동 관리와 연합군의 해상 운송 분야에 대한 공동 운영을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전쟁 후반 미국이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하게 되면서 해상 운송의 중요성이 커졌고, 장 모네는 이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연합국의 승전에 기여하게 됩니다.
전쟁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고 국제연맹이 새롭게 발족되면서, 모네는 국제연맹의 사무차장으로서 영국-프랑스의 자르 지방,
프랑스-폴란드 간 실레시아(슐레지엔) 지역에 대한 조율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자르 지방 관리 실패는 새로운 유럽 질서를 꿈꾸던 모네에게 중요한 경험이 됩니다.
독일-프랑스의 경계 지역 자르 관리에 실패하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국제연맹은 독일의 자를란트 지역을 '자르 분지 지역'으로 분리시켜 관리하게 됩니다.
이 곳은 옛날 통일 독일 제국 전에 프로이센 왕국과 바이에른 왕국에서 분리된 지역으로 독일 지역이기는 했지만 프랑스와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었습니다.
자르 지역이 중요한 이유는 석탄이 많이 채굴되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로인해 1차 대전으로 피해를 입은 프랑스는 이 지역을 적극적으로 영토에 편입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연합국인 일원인 미국이 이를 반대했기 때문에 국제 연맹의 관할로 두었습니다.
문제는 말이 국제연맹 관리구역이지 자르 지방의 통치는 프랑스가 담당했습니다.
애초 자르 통치위원회부터 자르 출신 독일인 대표는 한 명 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프랑스인과 기타 제3국 인으로 채워졌습니다.
아울러 프랑스는 해당 지역에서 군정을 실시하며 프랑스어 학교를 설치하는 등 자르 지역을 완전히 프랑스에 합병하려고 했습니다.
아울러 공장의 60%를 프랑스가 직접 관리하고 프랑스화를 반대하는 시위대를 군대로 진압하는 등 다소 폭압적인 정책을 펼쳤습니다.
결국 이런 정책은 독일인들의 반감을 일으켰고, 히틀러와 나치당 정권이 독일에 들어서면서 1935년, 자르 분지 지역은 국제연맹의 손을 떠나 독일로 다시 환원되게 됩니다.
모네는 국제연맹의 사무차장으로서 독일에 대한 지나치고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던 것이 자르 분지 관리의 실패의 원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전쟁이 시작되다
한편 추축국이 2차 대전을 일으키며 빠르게 프랑스 침공에 나서며 프랑스는 위기를 맞습니다.
집안 사정으로 사무처장 자리를 그만두고 뉴욕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인 블레어(Blair & Company)에서
일하던 모네는 귀국해 영국과 프랑스의 공통 물자를 관리하는 조달장관으로 임명받습니다.
하지만 모네가 적극적으로 활동하기에 앞서 프랑스는 독일에 패배했고, 1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던 페탱을 수반으로 하는 비시 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장 모네는 독일의 꼭두각시 정권이 된 비시 정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다시 미국으로 출국합니다.
더불어 이 무렵 그는 미국의 정가 인물들과 교류하며 많은 인맥을 쌓게 됩니다. 이는 나중에 그가 유럽통합을 외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2차 대전 이후 모네의 행보와 유럽 통합의 또 다른 중요 인물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두 코로나19 조심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