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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우민정책과 장기독재
(2023년 10월 기사)

포르투갈의 우민정책과 장기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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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0월 기사)
기고: IT지원팀 권형우 선임매니저
이제는 일교차도 커지고 바람에서 제법 가을이 느껴집니다. 환절기를 맞아 독감과 변종 코로나가 기승을 부린다고 하니 모두 건강 조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이번호에서는 지난호에서 예고한 대로 포르투갈 국민연합 정부의 정책인 3F 정책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민정책을 펼치다

살라자르 총리는 정권을 잡은 뒤 적극적인 우민 정책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살라자르 총리는 지식인 계층이 많을수록 정권의 불안정성이 높아진다고 보았고, 이에 따라 국민들의 교육 수준을 낮추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했습니다. 아울러 살라자르 총리는 다른 나라들이 열중하던 공업화, 산업화와 달리 전 국토의 농업화를 꿈꿨습니다.
보통 당시 많은 국가들은 본토와 식민지를 경영할 때 본토는 공업화를 진행하고, 식민지는 농업화를 진행해서 식민지를 본토의 공업을 위한 원료 생산 기지와 본토에서 생산한 공산품의 수출시장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이하게 포르투갈의 경우 식민지를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업화보다는 정반대인 농업화를 꾀했습니다.
아울러 독재정권에 대해 누적된 불만을 피하기 위해 국민들을 적극적으로 달래는 우민화 정책, 3F 정책을 펼쳤습니다. 3F는 당시 살라자르의 국민연합 정부가 강조했던 정책의 앞 글자를 딴 것입니다.
첫째는 축구(Futebol)입니다. 축구에 대한 열기를 조장하고 스포츠 도박을 허용한 것입니다. 아울러 축구 클럽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을 펼쳐 포르투갈의 축구 실력은 일취월장했습니다.
포르투갈 국기에 축구공 사진
실제로 살라자르는 축구에 대해 관심이 없었지만 당시 유럽 최고의 스타였던 에우제비우가 다른 나라로 진출하는 것을 승인하지 않을 정도로 통제를 가했습니다. 에우제비우는 식민지 중 하나였던 모잠비크 출신으로 포르투갈 대표팀에서 활약하며 유럽을 제패해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런 에우제비우를 선전 도구로 쓰고자 포르투갈에 잔류하게 했습니다.
둘째는 파두(Fado)입니다. 포르투갈의 유명 민속음악인 파두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을 해서 국민들이 대중 가요에 빠져들도록 노력했습니다. 암울한 독재 정치에 대한 슬픔을 애잔한 가락을 가진 민속음악인 파두로 전환하려는 정책이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은 파티마(Fatima)입니다. 1971년 포르투갈 파티마에서는 기적적인 성모 발현 사건이 발생합니다. 돌담을 쌓으며 놀던 세 아이의 근처에 있던 떡갈나무에서 성모 마리아가 출현했다는 것입니다. 세 아이가 성모 마리아를 만났다는 소식에 포르투갈 전역에서 아이들을 만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도였던 안토니우 살라자르 총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1928년부터 아이들이 성모 마리아의 재림을 확인했다고 하는 장소에 성당 건설을 시작해 1953년 봉헌되었습니다. 포르투갈 정부는 파티마 순례를 장려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국민들의 관심을 종교적인 부분으로 돌리려 했고 이 부분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살라자르 장기 독재의 성공 요인

보통 독재 정권은 오래가지 못하고 내부적인 모순과 국민들의 열망으로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안토니우 살라자르의 국민연합 정권은 카네이션 혁명으로 무너지기까지 30년 넘게 존속하며 성공적인 독재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적극적인 우민정책도 큰 영향을 끼쳤지만 살라자르 자체의 청렴성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보통 독재자들이 자신의 재산을 증식하거나 부정부패를 저질러 사회 모순을 만드는 반면, 살라자르는 매우 청렴했습니다. 이는 살라자르를 비판하는 역사가들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실제로 그는 독재정부 수장이 되었을 때 옷의 주머니를 모두 꿰매기도 했습니다. 자신에게 뇌물을 주려는 사람들을 차단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아울러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가정부 한 명만 두고 방 세 개짜리 집에 살면서 직접 석탄을 나르고 난방하며 검소하게 지냈습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을 표방하며 연합국을 지원해 국제 사회에서도 고립을 피했습니다. 당시 그와 같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독재를 펼치던 스페인의 프랑코가 중립을 표방하면서도 내전 시 자신을 도와줬던 추축국(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 독일, 이탈리아가 맺은 삼국 동맹을 지지해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연합국과 대립한 여러 나라)을 지원했다 국제적으로 고립 신세가 된 것과 대비가 됩니다.
부정부패 거절 표현 사진
아울러 무자비하게 숙청을 일삼던 스페인 프랑코 정부와 달리 독재정권임에도 완화된 정책을 펴서 자신의 정적들도 죽이지 않고 추방하는 등 보다 완화된 정책을 펼쳐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살라자르의 독재는 포르투갈의 경제를 매우 퇴행시켰습니다. 다른 유럽 국가들이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전후 복구에 성공하며 부흥한 반면, 중립을 지켰던 포르투갈은 전화를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전 없는 농업국가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뒤떨어진 포르투갈의 경제 상황은 2000년대까지 이어져 유로존 사태 때 포르투갈이 경제적 위기에 빠지는 원인을 제공하게 됩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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