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근 무더위와 국지성 호우가 반복되면서 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건강 유의하시고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 글에 이어서 포르투갈의 정치사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지난 호에는 포르투갈이 연합국의 일원으로 1차 세계대전의 승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과연 1차 세계대전은 포르투갈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이름뿐인 승리
포르투갈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은 했으나 애초에 농업 기반의 저개발 국가였기에 영국과 프랑스 등 연합국의 군수 지원 등을 받아 분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 내 분쟁에 처음 나섰기 때문에 실전 경험도 다소 부족한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되었습니다.
아울러 1차 세계대전은 참혹한 참호전으로 진행됐기에 독일군과 맞서면서 많은 인력 손실을 입은 데다, 독일이 유보트를 통한 무제한 잠수한 작전을 펴면서 많은 선박들이 피해를 입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승리했고, 승전국으로서 보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보상은 고작 독일 제국이 영유하고 있던 독일령 아프리카 중 키옹가 삼각지대를 넘겨받은 것이었습니다.
포르투갈이 흘렸던 피와 경제적 손실에 비하면 상당히 적었습니다.
문제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닥친 인플레이션이었습니다.
산업 전반이 농업 위주라 공업 경제 기반을 갖추지 못한 포르투갈에게 인플레이션은 대단히 치명적으로 작용했습니다.
특히 영국이나 프랑스 등 식민제국들은 발전된 공업력을 바탕으로 식민지 등에 경제 블록을 설정하여 경제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근대화에 실패한 포르투갈에게는 현실적으로 도입이 어려운 정책이었습니다.
때문에 포르투갈의 경제적 위기는 심화됐고, 특히 1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보수적 군부 정권의 불만을 사게 됩니다.
군부 쿠데타의 발생
포르투갈은 가톨릭 교세가 컸고 농업 위주였기 때문에 애초에 보수 성향이 강했습니다.
왕정을 뒤엎은 공화파 세력들은 이 점 때문에 군인들의 참정권을 박탈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으나, 이는 오히려 보수 세력의 반발을 불러들였습니다.
정권 안정을 위해 포르투갈 공화 정부는 군인들을 달래는 정책을 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정권이 바뀌는 바람에 정책이 계속되지 못했고 결국 성난 군부에 의해 공화 정부가 붕괴되고 맙니다.
문제는 군부 정권도 일단 공화당 정부를 끌어내리기는 했는데 이 혼란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 지 모르는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마뉴엘 다 코스타 장군은 군사 쿠데타로 혼란스러운 공화정을 끝냈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앞으로 포르투갈의 암울한 경제 상황을 끝낼 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포르투갈 군부 정권은 직접 경제를 꾸리기보다 전문가에게 이 일을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
군부 정권은 당시 보수적인 경제 전문가로 알려진 안토니오 데 올리베라 살라자르 코임브라 교수를 재정상으로 초빙합니다.
해리포터 소설 속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어원
안토니오 데 올리베라 살라자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판타지 소설인 해리포터 시리즈에 언급되는 인물인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모티브가 된 인물입니다.
안토니오 데 올리베라 살라자르는 1889년 4월 28일 포르투갈 베이라알타 주의 시골마을에서 독실한 가톨릭 신도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고독하고 우울한 성격을 지녔던 그는 11살이 되던 해 신부가 되려고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그만두고 코임브라 대학의 경제학과에 진학합니다.
그리고 탁월함을 발휘해 졸업 후 모교의 교수로 발탁되게 됩니다.
가톨릭 신부가 되지는 않았지만 살라자르는 경제학적 성취와 더불어 보수적이고 금욕적인 성격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술, 담배, 여자, 노래 등을 절대 가까이하지 않았고 가톨릭 질서에 대단히 충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얼음 같은 사람'이라고 평가할 정도였습니다.
학생들이 악수를 청할 때도 무표정하게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대하기 어려운 교수였다고 합니다.
그는 포르투갈이 정치적 혼란에 빠져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던 혼란의 시기에도 경제학 연구를 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권고로 가톨릭 후보로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지만, 공화 정부와는 일할 수 없다며 한 번만 등원하고 의원직을 그만두기도 했습니다.
정치와 철저히 거리를 두고 살았던 경제학 교수를 포르투갈 군사 정부는 인플레이션 해결을 위한 경제통으로 임명합니다.
이 결정은 포르투갈 역사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