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문님의 댓글
이정문우리나라도 이런 기업이 있어야하는데 대기업을 생태적으로 어렵게하니 참.....
1949년 아돌프 다슬러가 독일에 설립한 스포츠 브랜드이다. 전 세계에 운동화, 스포츠의류, 운동 용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1949년 아돌프 다슬러는 자신의 애칭인 아디(Adi)와 성 다슬러(Dassler)를 결합해 아디다스(Adidas)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었다. 형 루돌프 다슬러와 각자의 길을 가기로 결정한 지 2년만의 일이었다. 아디다스는 첫 걸음을 떼자마자 독일 축구 대표팀의 공식 납품업체가 되었다. 5년 뒤 열린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은 아디다스가 급성장할 수 있는 큰 기회의 장이 되었다. 당시 월드컵에 참가했던 서독대표팀은 아디다스 축구화를 신고 경기를 뛰었다. 서독의 우승을 점치는 이는 드물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승전까지 올랐다. 강팀 헝가리와 경기를 펼친 서독팀은 경기 초반 주도권을 빼앗겼지만 폭우가 내리면서 전세를 뒤집었다. 아디다스의 축구화는 바닥의 스터드를 교체할 수 있는 신발이었기에 진흙탕에서도 원래의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대 2 동점이던 상황에서 서독 선수가 결승골을 넣으며 서독이 우승을 했고 아디다스의 기술도 승리를 거머쥐었다. 월드컵 우승은 패전국으로 의기소침하게 살아가던 독일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이었고, 아디다스가 축구 전문 브랜드로 급성장하는 데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우승을 가져온 아디다스의 징 박힌 축구화는 한 해 45만 켤레 넘게 생산되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스포츠 의류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고 1963년에는 공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아디다스 축구공은 모든 FIFA 월드컵의 공인구로 채택되었다. 1980년대까지 아디다스는 스포츠 용품 분야에서 승승장구하며 독주를 이어갔다.
2013년 아디다스가 뛰어난 쿠셔닝과 에너지 리턴을 동시에 충족하는 신기술, 부스트(BOOST)를 선보였다. 종합 화학 회사 BASF와 협력하여 특수 제작된 수천 개의 에너지 캡슐을 사용해 기존 제품보다 월등히 향상된 러닝 에너지 리턴을 느낄 수 있게 제작했다.
부스트의 핵심은 쿠셔닝을 느끼게 하는 소재에 있다. 열가소성 폴리우레탄 엘라스토머(TPU)를 수천 개의 작은 캡슐로 변환시켜 에너지를 캡슐에 저장한 뒤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게 개발한 것이다. 날씨와 오랜 시간의 러닝에도 관계없이 편안한 착화감을 느낄 수 있다.
선수들의 기량이 발전하고 포지션이 세분화되면서 축구화 기능 역시 그에 발맞춰 매우 다양해졌다. 아디다스는 네 가지 사일로에 맞춘 축구화 라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피드 사일로, 컨트롤 사일로, 에너지 사일로, 컴포트 사일로로 명칭에서 축구화의 핵심 기능을 엿볼 수 있다. '아디제로 f50'은 스피드 사일로의 대표 모델로 공격수나 윙어(Winger)처럼 빠른 스피드와 민첩한 움직임이 필요한 선수들이 즐겨 신는다. '프레데터'는 컨트롤 사일로 대표 모델로 정확한 패스를 구사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기에 미드필더에게 인기가 많고, 경기장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활동량 많은 미드필더는 에너지 사일로 모델인 '나이트로차지'를 신는다. 포지션과 무관하게 편안한 착화감을 원하는 선수들은 컴포트 사일로 모델인 '아디퓨어 11pro'를 즐겨 착용한다.
한편, 2001년부터 시작된 라인으로, 개성이 강한 젊은 세대들이 주로 구매한다. 1960년대 유행했던 스포츠화를 재현한 제품들과 아디다스의 역사적인 제품들을 재해석한 제품들로 이루어졌다. 특히 아디다스 오리지널 스탠스미스(Stansmith)는 1970년대 테니스계를 이끌었던 선수 스탠리 스미스(Stanley Smith)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1971년에 제작된 경기용 테니스화로 역사상 최초로 갑피를 가죽으로 만든 테니스화이다. 뿐만 아니라 스트리트 신발로도 인기를 얻어 전 세계적으로 4천만 켤레 이상이 팔려 아디다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신발로 이름을 올렸다. 팬들의 재요청으로 2014년 4월부터 재발매를 시작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이런 기업이 있어야하는데 대기업을 생태적으로 어렵게하니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