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예술은 참으로 다양한 작품으로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경건하고 겸허하게 하여 치유에 닿게 한다. 다양한 불교 예술품 중 나한상은 불가의 진리를 깨우친 성자의 모습이라고 알려져 있다.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나한은 일반적으로 십육나한, 십팔나한, 그리고 오백나한으로 무리를 이루는데, 그 중 오백나한은 나한의 위력을 가장 극대화한 것이다. 여러 오백 나한상 중 강원도 영월의 창령사 터에서 발굴된 오백나한상은 인간미를 그대로 닮은 소박하고 다채로운 표정을 하고 있어 보는 이에게 불교적 성찰과 깨달음을 얻게 해준다.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과를 이룬 불교 수행자 오백 인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을 이르는 나한상. 대개 불가적인 분위기를 듬뿍 담은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창령사 터에서 발굴된 오백나한상은 너무나 소박하고 인간적인 표정을 하고 있다. 미소 띤 나한, 수행하는 나한, 생각에 잠긴 나한, 선정에 든 나한, 바위 뒤에 앉은 나한 등 너무도 다채로운 표정을 하고 있는 나한은 하나같이 우리의 얼굴을 담고 있다. 우리 자신의 일상적 삶이 드러나는 표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특히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은 화강암으로 만들어 특유의 질감으로 인해 이러한 표정이 더욱 풍부하게 드러난다. 석조로 오백나한상을 조성한 예는 흔치 않아 창령사 터 석조 오백나한상은 나한상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독특함을 담은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은 대부분 얼굴을 비롯한 상체 중심적으로 표현하고 하체는 과감하게 생략했다. 또 얼굴만 제외하고 두꺼운 두건과 가사를 머리에서부터 신체 전체를 길게 덮은 나한상이 유독 많은 것도 특이하다. 머리 위에 쓴 두건과 가사의 표현은 고려시대에 유행되었던 지장보살상이나 승가대사상, 고려청자 나한상에서 볼 수 있는 시대양식이다.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의 발견은 2001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도 영월군의 한 외진 땅에 사찰을 짓기 위해 땅을 정리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땅을 파기 시작하자 어른 팔뚝 만한 돌덩어리가 발견되었다. 한두 개도 아니고 다수가 묻혀 있었다. 놀란 작업자들이 집중적으로 파보니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한 석불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발굴된 나한상은 총 317점으로 그중 온전한 형태를 유지한 것은 64점, 몸체만 발굴된 것은 135점, 머리만 발견된 것은 118점이었다.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은 그렇게 선물처럼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오백나한상이 출토된 창령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전기에 번성했다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골 깊숙이 자리 잡은 작은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석조 오백나한상을 봉안할 정도로 당시 창령사의 불교사적인 위상은 매우 컸을 것으로 학자들은 짐작한다. 나한상은 다른 불교 조각상과는 달리 경전에 따른 도상적 제한이 상대적으로 적어 조각가의 개성이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었다. 특히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은 마치 우리 이웃의 얼굴을 하나하나 새긴 듯 친근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담은 작품이라 더욱 귀할 수밖에 없다.
국립춘천박물관에서는 2층에 별도로 브랜드실을 만들어 <창령사 터 오백나한_나에게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상설전시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창령사 터에서 발굴된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가진 오백나한상의 매력에 흠뻑 젖어 든 채 사유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홈페이지: https://chuncheon.museum.go.kr/
문의: 033-260-1594 / 1533
메인 사진출처: 국립춘천박물관 홈페이지 > 브랜드실 (https://chuncheon.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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