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화하고 부드럽게 미소 짓는 얼굴은 보는 사람의 얼굴에까지 미소를 머금게 한다. 이렇듯 미소는 고유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감정이 드러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문화유산에서 그런 미소를 찾을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신라와 백제를 대표하는 기품 있고 고귀한 미소를 머금은 작품이 있다.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와 서산마애여래삼존불이다.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慶州 人面文 圓瓦當)는 일제시기 경주 영묘사지(靈廟寺址, 현재 사적 흥륜사지)에서 출토된 신라시대의 기와의 한 종류이다. 연꽃무늬를 새긴 일반적인 수막새와는 달리 얼굴무늬가 아름답게 새겨져 있어 흔히 '신라의 미소'라고도 불린다.
신라시대 원와당(圓瓦當)으로, 일제시기 경주 사정리(沙正里, 현 사정동)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이 수막새는 1934년 경주 시내 야마구치 의원의 의사로 근무하던 일본인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가 골동상점에서 구입하였을 당시부터 고고학술 자료를 통해 존재가 알려졌다. 이후 일본으로 반출되었으나 당시 국립경주박물관장이었던 박일훈의 끈질긴 설득에 기증자가 응하면서 1972년 10월 국내에 반환되었다.
일반적인 와당 조성방법처럼 틀(瓦范)에 찍어 일률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먼저 형태를 잡은 후 손으로 직접 빚어 얼굴의 세부 형상을 만들고 도구를 써서 마무리한 작품이라 섬세함과 자연스러운 미소가 더욱 돋보인다. 자연스럽고 정교한 솜씨로 보아 숙련된 장인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실제 사용한 흔적도 있다. 오른쪽 하단 일부가 손상되어 완전한 모습을 알 수 없는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그래서 더욱 오묘한 아름다움을 획득했다. 이마와 두 눈, 오뚝한 코, 잔잔한 미소와 두 뺨의 턱 선이 조화를 이루며 신라인 들의 염원과 이상형을 구현한 듯한 높은 예술적 경지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손꼽힌다. 지금까지 알려진 손으로 빚은 유일한 얼굴무늬 수막새이자 신라인의 소박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담아낸 작품이라 그 은은한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차갑고 단단한 바위 속에서도 풍만하고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서산마애여래삼존상은 흔히 '백제의 미소'로 불린다. 역사의 뒤편에 가려져 있던 천년의 미소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불과 1959년. 부여박물관 관장이었던 홍사준은 현재 삼존상이 자리한 인근인 보원사지에 발굴 조사를 나왔다가 다른 유물을 찾으려 동네 사람들 수소문을 하고 다녔는데 한 주민이 "인근 산에 웃고 있는 산신령이 조각되어 있고 그 옆에 그의 마눌들도 같이 새겨져 있다"고 하는 이야기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곳에 바로 오늘날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국보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 龍賢里 磨崖如來三尊像)이 온화하고 풍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층암절벽에 거대한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입상,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된 서산마애여래삼존상은 암벽을 조금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하여 형성되었다. 연꽃잎을 새긴 대좌(臺座) 위에 서 있는 여래입상은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 반원형의 눈썹, 살구씨 모양의 눈, 얕고 넓은 코, 미소를 띤 입 등을 표현하였는데, 전체 얼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하여 백제 불상 특유의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준다. 둥근 머리광배 중심에는 연꽃을 새기고, 그 둘레에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는 오른쪽의 보살입상은 얼굴에 본존과 같이 살이 올라 있는데, 눈과 입을 통하여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다. 왼쪽의 반가상 역시 만면에 미소를 띤 둥글고 살찐 얼굴이다. 두 팔은 크게 손상을 입었으나 왼쪽 다리 위에 오른쪽 다리를 올리고, 왼손으로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 오른쪽 손가락으로 턱을 받치고 있는 모습에서 세련된 조각 솜씨를 볼 수 있다.
기품 있고 은은한 미소에 담긴 한국 조형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와 서산마애여래삼존상은 섬세한 조각에 한국인의 아름다운 풍모를 담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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