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시선을 차단하고 인테리어 효과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커튼이나 블라인드 등은 아주 익숙한 생활용품이다. 이에 비견할 수 있는 한국 전통의 발은 외부의 시선을 막아주는 것은 물론 천연 소재를 사용해 정교하게 제작함으로써 바람은 통하고 멋스러움도 연출할 수 있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장식용 살림 소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조금 낯설게도 느껴지는 발에 대해서 보다 친숙하게 이해하기 위한 좋은 예로 '수렴청정(垂簾聽政)'을 들 수 있다. 역사서나 사극에서 자주 보고 들었을 이 수렴청정은 과거 왕조시대에 어린 왕이 즉위하면 어머니 혹은 할머니가 국정을 함께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 수렴은 '발을 드리운다', 청정은 '정사를 듣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교적인 사상에서 여성이 신하 앞에서 얼굴은 가리고 그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발을 이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엿볼 수 있듯이 발은 왕실에서 아주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물론 왕실 공간을 더욱 격조 있고 멋스럽게 장식하는 용품으로도 활용했는데 왕실에서는 벽이나 문으로 가릴 수 없는 곳에 발을 걸어 공간을 분리하고 외부인의 시선을 차단했다.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셔두고 제사를 지내는 종묘에서도 발을 찾을 수 있는데 발을 쳐서 각각의 공간을 구분하고, 제사를 지낼 때마다 필요에 따라 공간을 열거나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발은 왕실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칸칸으로 이어진 우리의 한옥은 발을 걸어서 쉽게 공간을 분리하고 독립성도 얻을 수 있었다. 주로 부엌이나 가장이 거처하는 공간에 문 대신 달아 햇빛이 직접 들어오는 것을 막으면서 바람은 시원하게 통하게 했다. 특히 여름에는 방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으면서 바람이 잘 통해서 집집마다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었다.
이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전통 발. 하지만 통영에는 전통의 기법을 그대로 이어 통영발을 만드는 염장(簾匠) 보유자 조대용 부녀가 있다. 5대째 전통 발을 만들고 있는 이들은 전통은 이어가면서 전통 발의 새로운 쓰임새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통영발은 통풍성이 좋은 가리개라는 쓸모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문양을 넣어 미감을 더한 공예품으로 우리 전통 발의 대명사격이다. 햇빛을 가린다는 점에서 커튼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바람이 통하고 밖을 내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특화된 쓸모를 가지고 있기에 현대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우리 전통 발의 미학을 알리고 다양한 공간을 멋스럽게 만드는 장식품이자 일상용품으로 당당히 가치를 발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하고 있다. 전통 발은 대나무로 만들어 가벼운 데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위로 돌돌 말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만 풀어서 내리면 되므로 쉽게 공간을 분리하고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특히 걸었을 때 안쪽 공간이 은은하게 비치면서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통영발만의 매력으로 꼽을 수 있다.
한옥 생활의 불편함은 보완하고 멋스러움을 연출하는 유용한 생활용품이자 전통 삶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도 한 몫을 담당했던 발. 멋과 실용성을 모두 겸비한 발은 그 독특한 아름다움과 탁월한 용도로 현대의 생활공간에서도 인테리어 효과를 톡톡히 발휘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전통 소재라고 할 수 있다. 무더위기 시작되는 이즈음, 바람은 통하고 빛은 가려주면서 품격 있는 분위기를 내고자 한다면 발을 걸어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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