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은 전에 없는 폭우가 예상된다고 해서 벌써부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여름은 본격적인 휴가철이라 설렘을 불러오지만 이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비. 특히 우리나라 여름은 장마철이 겹쳐 길게 이어지는 비로 인해 일상의 불편함을 초래한다. 비 오는 날 필수품인 우산은 지금은 단순히 비를 막는 도구로 이용되지만 우리 조상들은 다양한 형태와 재질로 우산을 만들어 신분을 드러내기도 하고, 효과적으로 비를 피하기도 했다. 비 오는 날 운치까지 더한 한국 전통 우산의 면면을 들여다보자.
비 내리는 날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인 우산은 그 역사가 생각보다 깊다. 고려시대의 기록을 보면 비를 피하는 우산과 햇빛을 가리는 일산으로 용도를 구분해 현재의 우산과 양산처럼 사용했다는 자료를 찾을 수 있으며, 다양한 벽화와 그림에서도 이를 사용한 장면이 묘사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현대에는 우산이야 그저 비를 막는 도구로서의 쓰임이 전부지만 이전에는 신분과 권위를 상징하기도 하고 장식용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비보다는 햇빛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된 차일산은 댓살을 성글고 둥글게 만들어 펴고 그 위에 기름종이를 바른 큰 양산으로 주로 백일장, 야외의 시연(詩筵), 향연(饗宴) 따위에 많이 등장했다. 특히 과거시험장에서도 빠지지 않았는데 단원 김홍도의 그림 <공원춘효도>에서 이 차일산을 찾을 수 있다.
서민들이 비를 막기 위해 사용한 제품을 꼽자면 삿갓과 도롱이가 있다. 이는 우산과는 모양이 많이 다르지만 비 오는 날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 쓰임이 우산과 동일하다. 무엇보다 조선시대에 우산은 권력의 상징이라 양반들이나 사용할 수 있었던 지라 서민들은 소유하기도 어려운 물건이었다. 뿐만 아니라 비가 와도 농사를 비롯한 각종 노동을 해야 했기에 두 손이 자유로우면서 비를 비할 수 있는 우비 형태의 도롱이와 삿갓을 썼다. 짚이나 띠풀 등으로 만들어 보기에는 허술하지만 바깥으로 퍼지는 모양을 한 도롱이를 따라 빗물이 흘러 옷이 젖지 않고, 챙이 큰 삿갓까지 쓰면 비를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어 조상의 지혜가 듬뿍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여자들의 우산 역할을 한 것은 전모다. 비와 해를 동시에 가리는 용도로 쓰개의 한 종류인 전모는 댓살을 엮어 그 위에 한지를 바른 후 기름을 먹여 만든 것으로 지름이 넓어 어깨까지 모두 덮을 수 있을 만큼 넓으며, 그 형태가 지금의 우산과 아주 흡사하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모양을 갖춘 전통 우산은 지우산이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 보급되기 시작한 지우산은 뽕나무로 만든 종이에 기름을 먹이거나 밀랍을 칠해 비를 막을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이후에는 전라도 지역에서 나는 대나무로 살을 만들고 전주에서 나오는 양질의 한지를 사용해 멋과 품격을 가진 우산을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 전통 우산은 종이 '지(紙)'를 붙여 지우산이라고 부른다. 공이 많이 들어가고 재료의 가격도 높아져 현대인들이 지우산을 사용하는 것은 명품 우산을 쓰는 것과 다름 아닐 정도다. 그렇지만 환경친화적인 재료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섬세한 대나무 살과 은은한 멋스러움이 그대로 스민 한지 덕분에 격조 있는 공예품의 가치를 획득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지우산이다.
하지만 재료의 수급도 쉽지 않고 수요도 많지 않은 데다 만들기도 까다로워 현재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우산장 윤규상 장인에 의해 그 명맥이 겨우 이어지고 있다.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제작하고 틀어지지 않는 정교한 우산을 만들기 위해서 대나무 살의 순서도 맞춰서 제작할 정도로 섬세한 장인의 손길을 거쳐 완성되는 지우산은 색은 은은하고 방수효과는 탁월하다. 우리나라 전통 공예품 중 하나인 지우산의 매력을 알리는 장인의 노력 덕분에 지금도 우리는 귀하디 귀한 지우산을 만날 수 있다.
비 오는 날, 조금은 귀찮고 번잡스러워지기도 하지만 좋은 우산을 받쳐들고 비 내리는 풍경 속을 걷는 것처럼 운치 있는 것도 없다. 우리 전통의 귀하고 멋스러우며 품격까지 갖춘 지우산이 명맥을 잘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비가 잦을 거라는 올 여름에는 지우산을 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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