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따스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몸과 다음을 데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우리에게는 좋은 사람과 담소와 더불어 차를 나누는 문화가 있다. 다반향초(茶半香初)라고 해서 '차를 마신 지 반나절이 지났으나 그 향은 여전히 처음과 같다'(원칙과 태도가 늘 한결같은 사람을 높이 평가할 때 쓰이는 표현이기도 함)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깊고 은은한 차를 마시며 그 매력에 젖어드는 문화를 즐긴 것이다. 찬바람이 몸에 스며드는 이 무렵, 선조들처럼 차문화를 즐기며 행복한 시절을 보내자.
우리 조상들은 차 한 잔을 마실 때도 예의와 풍류를 중요시 여겼다. 다례는 말 그대로 '차를 대하는 예절'이라는 뜻으로 기본적으로는 차를 마실 때 필요한 다구(茶具)들과 물, 찻잎을 준비해야 하고 차와 함께 먹는 다과 등은 선택사항이다. 차문화는 삼국시대 때도 있었지만 특히 고려시대 때 불교를 중심으로 크게 융성하였으며 조선시대 때는 숭유억불을 겪으며 잎차를 마시는 문화가 비교적 쇠퇴하기도 했으나 역시 불교 승려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보존하여 왔고, 잎차 대신 열매차와 과일차를 마시는 문화가 부흥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후기부터 정약용 등으로 대표되는 차 문화에 대한 관심이 다시 되살아났다.
한국 전통 다례는 격식에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고 편하고 자연스럽게, 하지만 예절을 갖추고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차를 우리는 것을 중요시한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차와는 달리 한국식으로 만든 덖음차는 상대적으로 온도에 덜 민감하며, 차 본연의 맛에 차를 덖을 때 나는 불맛이 섞여 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구수한 숭늉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한국식 다례는 중국식이나 일본식 다도와 달리 다기 배치와 우리는 과정에서 딱딱 맞춘 듯한 정형이 없어도 되며 규칙으로부터 더 자유로울 수 있다. 그저 계절에 맞게 물을 준비하고, 필요한 경우 차를 아주 진하게 우려도 좋고, 옅게 우려도 무관하다.
차는 색(色), 향(香), 미(味) 등 3요소가 조화를 이루어야 비로소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다도(茶道)는 정성스레 불을 피우고 물을 잘 끓여, 좋은 차를 잘 우려 마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 평범한 일체의 행위들이 정신을 가다듬어야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선인들은 도(道)로 승화시켜 찻일을 다도라 하였다. 한국의 다성 초의선사는 차의 기본을 '겸손'과 '덕행'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차를 달이는 모든 과정에 정신을 곧추세우지 않으면, 색과 향은 물론 맛도 바로 내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차를 마실 때 형식적인 예절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세는 정좌하고 눈은 앞사람을 직시하는 것을 삼가며, 언행은 조용하게 상대방의 말이 끝나면 조금 후에 시작하고, 손은 공손하게 할 것이며, 차를 마실 때도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차예절도 몸에 익고 습관이 되면, 다도의 깊이가 더해지고 스스로를 충만한 기쁨과 치유의 시간으로 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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