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정(樓亭)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함께 지칭하는 명칭으로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루 바닥을 지면에서 높여 지은 다락식 건축물이다. 대개 자연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수려한 곳에 세우는 것이 특징으로 확 트인 사방의 풍경을 보며 마음을 씻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면서 풍류를 즐기는 공간으로 사용했다. 조금 더 폭을 확대하면 누정은 루(樓), 정(亭), 대(臺), 각(閣), 헌(軒), 재(齋) 등을 통칭한다. 본래의 명칭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선비들은 정확한 구분을 하기보다는 누정으로 통칭하여 불렀다. 그 중에서 재는 수신 또는 학문적인 공간으로 사용한 곳으로 다른 누정과 가장 큰 차이점은 사방에 벽을 두었다는 점이다. 정은 길을 가던 사람 누구나 잠시 들러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방했으며, 당은 터를 높여 우뚝한 모습의 건축물이다.
누정은 대개 마을이 아닌 경승지에 세워 풍류를 곁들인 휴식공간으로 지은 건물로 대부분 높은 지형에 자리하고 있고,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한 특징을 지닌다. 쉬기도 하고,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으며, 바둑을 두거나 거문고 등의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손님을 대접하거나 학문을 닦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남다른 의미를 가진 공간인 누정. 선조들이 남겨준 여러 가지 문화유산 중에 현대인들에게 큰 선물이 되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누정이다. 지금도 곳곳에 남아있는 수려한 누정들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어 언제든 들러 잠시 쉬어갈 수도 있고, 선비의 풍류를 더듬어 좇아 즐길 수도 있으며, 고요히 풍경에 젖어들면서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특히 요즘같은 여름 날, 풍경이 좋은 누정에 앉아 더위를 식히며 반나절짜리 알찬 휴가를 보내면 더 없이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을 누릴 수 있다.
몇 곳의 누정을 살펴보자면 경북 예천에 있는 초간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저술한 초간 권문해 선생이 세우고 심신을 수양하던 곳으로 암반 위에 절묘하게 자리 잡아 송림과 한데 어울러져 선비들의 무위자연사상을 엿볼 수 있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초간정은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경북 봉화 닭실마을에 있는 청암정은 충재 선생이 지은 정자로 거북바위 위에 세운 것이 인상적이다. 정자 전체가 연못으로 둘러져 있고 단풍나무를 식재해서 풍경이 일품인데, 우리나라 아름다운 10대 정자로 손꼽히기도 한다. 영화 <바람의 화원>, <조선남여상열지사> 등을 청암정에서 촬영했다. 보길도에 윤선도가 세운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는 세연정은 윤선도가 「어부사시사」를 지은 곳이기도 한데 유배 기간 중 책을 읽고 뱃놀이를 하며 자연에 기대어 마음을 위로한 곳이다. 한국 정원의 백미로 손꼽힐 정도로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세연정은 주변의 동천석실, 곡수당과 어우러져 더욱 멋스러움을 연출한다. 가사문학의 근거지가 된 전남 담양 면앙정은 여름이면 배롱나무가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곳으로 송순이 건립하여 이황을 비롯한 강호제현들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길러낸 곳이다.
무더운 여름 날,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며 마음의 시름도 씻고, 학문도 정진하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재충전한 선조들의 지혜가 가득 담긴 누정. 아직도 우리 가까이에 많이 남아 있는 수려한 풍경을 더한 위대한 문화유산이자 멋스러운 건축물 누정이 참으로 반갑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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