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선비들의 손에는 계절과 상관없이 부채가 들려있는 경우가 많다. 망중한을 즐기며 마음을 다스릴 때 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시름을 날려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일상에서 많이 사라졌지만 우리 조상들에게 부채는 더위를 가시고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바람을 일으키는 기능성은 물론 부채 안에 한폭의 그림을 담아냄으로써 멋스러움을 드러내는 장신구로서의 역할, 그리고 때때로 호신용으로 이용되기도 하는 물건이었다.
이렇듯 그 역할이 다양했던 전통 부채에는 여러 가지 문양을 새겨 멋을 담아내고 상징적인 의미를 표현하기도 했다. 석류, 버섯, 복숭아, 연꽃과 같은 식물 문양은 다복과 다자를 상징하고, 봉황, 박쥐, 용, 나비와 같은 동물과 곤충 문양은 부귀와 상서로움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그림에 어울리는 시 구절을 함께 적어 넣기도 하고, 지인에게 부채를 선물할 때 하고 싶은 말을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처럼 부채는 단순히 더위를 식히는 생활 도구일 뿐 아니라 소통의 창이었고, 자신을 우아하게 꾸미고 표현할 줄 아는 선조의 지혜였으며,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예술품이기도 했다.
전통 부채는 다양한 그림과 시를 넣은 것은 물론 소재와 모양 역시 다채로움을 자랑한다. 그 중 가장 고급스러운 부채로 우선(羽扇)을 꼽을 수 있다. 우선은 새의 깃털로 만든 것으로 공작의 깃털로 만든 공작선, 부채 자루의 조각이 학의 모양인 백우선, 꿩의 꼬리 깃털로 만든 치미선, 까마귀와 같은 검은 새의 깃털로 만든 오우선 등이 대표적이다.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했으며 현재에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단순한 둥근 모양의 부채인 단선(團扇)도 있다. 태극모양이 들어가 있는 태극선, 연잎 모양의 연엽선, 오동잎 모양의 오엽선, 파초의 잎처럼 생긴 파초선, 조류나 어류의 꼬리 모양을 본뜬 미선 등이 대표적이다.
접었다 펼쳤다를 할 수 있어 활용도와 휴대성이 높은 접선(摺扇) 역시 요즘에도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의 부채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부채의 모양이다. 합죽선이라고도 부르는 접선은 대나무 살을 펼쳐 한지를 붙여 만들어서 멋스러움이 더하는데 부챗살과 변죽의 모양, 수, 재료, 색상 그리고 그려진 그림 등에 의해 종류가 나누어진다.
바람을 일으켜 열을 식히는 용도 이외에 다른 용도로 쓰이는 부채를 통칭하는 별선(別扇)도 있다. 햇볕을 가릴 때 쓰는 윤선, 얼굴을 가리는 차면선, 맹세의 증표로 쓰는 합심선,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쓰는 무선, 혼례 때 얼굴을 가리는 혼선, 궁중에서 공주가 혼례 때 얼굴 가리개로 쓴 진주선 등이 있다.
현대인에는 에어컨이라는 강력하고 편리한 냉방기기가 주어졌지만 이는 당장의 더위를 식힐 수는 있으나 이용을 할 수록 환경에는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결국 지구는 점점 뜨거워질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다시 인간들에게 주어지는 악순환을 만든다. 더위에 지치고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마음을 다스리며 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더위도 시키고 풍류도 즐기면서 여유로움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더위에 대처하는 현명한 부채질이 다양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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