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수님의 댓글
윤병수훌륭해요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부터 8년간 외국인은 한국 주식을 85조원 매수했습니다. 단순평균으로 연간 10조원이 넘습니다. 외국인의 주식 포트폴리오에서 한국 비중은 얼마나 될까요? 글로벌 펀드집계 기관인 EPFR 통계를 기반으로 추출해 보니, 전세계 주식에 분산투자를 표방하는 주식형펀드들의 평균 한국 비중은 2.3%이고, 신흥국 주식형펀드에서는 10.8% 수준입니다. 그런데 MSCI 벤치마크 기준으로 전세계주식인덱스에서 한국의 시가총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1.65%이고, 신흥국 인덱스에서는 15%입니다. 이렇게 보면 전세계 주식투자 펀드들의 한국 비중이 벤치마크보다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에서 설정된 전세계 분산투자 펀드 중에는 자국(미국)이 빠져있기 때문에 미국을 제외하고 계산하면 한국 비중은 3.45% 정도까지 올라갑니다. 쉽게 말해 외국인은 한국을 비중 축소 국가로 분류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장기간 대규모 매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벤치마크 비중이 늘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2009년 이후 외국인의 한국주식 매수액 중 98%인 83조원이 프로그램비차익 매수로 유입되었다는 사실에 그 답이 있습니다. 프로그램비차익 매수가 많다는 것은 한국 종목을 시가총액 비중만큼 고스란히 매수한 것이며 결국 한국 시장 전체를 매수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패시브 자금은 한국의 고유요인보다 외부 요인에 민감한 특징이 있습니다. 한국의 정국 불안은 물론 최근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와 같은 한국 고유 악재에 외국인 수급은 둔감했고 프랑스 대선 불확실성 해소 이후 오히려 대규모 매수가 유입된 것도 그 예입니다.
외국인의 기계적 매수는 ETF 때문입니다. ETF 같은 패시브 펀드가 각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제로금리 그리고 세 차례에 걸친 양적완화로 풍부해진 유동성 때문에 달러 약세를 피해 신흥국으로 유입되었는데, 그 수단으로 저비용 분산투자 수단인 ETF가 활용된 셈입니다. EPFR 통계를 보더라도 2009년부터 신흥국주식형 펀드로 유입된 1,374억 달러 중 78%가 ETF 형태를 갖춰 유입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결국, 모든 나라를 비중대로 사는 ETF 같은 패시브 펀드들의 유동성이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외국인 매수금액은 많았지만 한국 비중이 특별히 늘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한국 비중이 늘어날지의 여부는 액티브 투자자들이 한국을 얼마만큼 매력적으로 보는지 여부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액티브펀드는 벤치마크 수익률을 이기는 것이 목적인 펀드를 일컫습니다. 즉, 시가총액 비중대로 주식을 사는 패시브펀드와 달리 액티브펀드는 투자 매력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의 비중을 높이고 기대수익이 낮은 국가 비중을 줄이는 행동을 할 것입니다.
일반론으로 보자면, 한국이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수출액과 기업이익 증가가 예상되거나, 경기 회복 속도가 다른 나라보다 견고해야 할 것입니다. 밸류에이션 부담이 낮으면 더 좋습니다. 하지만, 액티브 투자자들은 한국 전체를 사는 주체가 아닙니다. 한국은 전세계 국가 중 비중이 1.65%일 정도로 작아서 주요 선진국은 물론 중국과 비교해도 존재감이 있는 시장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액티브 매니저들은 주식매수에 앞서 투자할 국가와 산업 비중을 정하지만, 결국 해당 비중을 어떤 종목으로 채울 것인지가 핵심 관심사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한국이라는 바구니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보기에 매력적인 종목들이 담겨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매력적인 종목이란, 바구니에 담긴 과일로 보자면 크기도 크고(시가총액) 맛도 좋아 보이는(밸류에이션) 기업입니다. 한국의 주요 종목들은 크기도 맛도 좋을까요?
전세계 주식들을 11개의 섹터로 나눠볼 때, 한국 주식 중에서 섹터 내 시가총액 랭킹 10위 안에 드는 종목은 정보기술 섹터에 삼성전자가 유일합니다(전세계 정보기술 섹터에서 삼성전자는 0.46%로 6위를 차지). 펀드매니저 입장에서 정보기술 섹터의 주식을 산다고 할 때, 한국 종목 중에서 면밀히 고민해 볼 종목은 삼성전자 정도에 불과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글로벌 플레이어가 아니더라도 특정 산업의 독과점 지위를 확보했거나 이익이 드라마틱하다면 또 모르지요. 그런데 이마저도 시가총액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매수 대상군(universe)에서 제외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준을 신흥국으로 바꿔보면 한국 주식이 10위권에 포진한 섹터는 정보기술(2종목), 산업재(4종목), 소재(2종목), 경기민감소비재(2종목), 필수소비재(2종목), 유틸리티(1종목), 금융(1종목), 헬스케어(1종목) 등 15종목 정도로 걸러집니다.
종합해보건대, 신흥국 주식투자 환경이 개선되면서 패시브 자금이 기계적으로 들어올 경우 한국 시장은 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 시장의 자체 매력과는 크게 무관한 상승일 것입니다. 액티브 외국인들이 한국 주식을 산다면 글로벌 플레이어로 대상을 좁힐 것입니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 기준으로 보면 한국 비중은 여전히 확대할 여력이 많지만, 한국 시장의 크기가 제한적이라 외국인들은 이미 한국 주식의 1/3을 보유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분산 투자 차원에서도 투자의 대상이 되는 한국이라는 자산의 매력 어필 및 개선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한국 주식시장이 사상 최고치를 넘어 의미 있는 레벨로 가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첫째, 기업이익 증가에 걸맞은 배당의 확대입니다. 국내주식형펀드 환매 동선과 한국 기업의 배당수익률은 상당히 유사합니다. 저금리 환경이 지속될수록 자본차익보다는 배당의 민감도가 높아집니다. 배당수익률이 정기예금 금리를 의미 있게 넘어서지 않는다면 가계자금이 리스크프리미엄을 지불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가계자금의 주식시장 유입입니다. 99년에도 그랬고 2000년대 중반에도 주식시장의 의미 있는 레벨업을 이끈 주체는 외국인 자금이 아니라 아니라 국내 자금이었습니다. 가계자금의 주식시장 유입 여부는 수익률 제고가 관건인데, 사상 최고치 갱신 시점에서 대규모 환매는 완화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KOSPI가 박스권을 돌파한 이후에도 국내 주식형 펀드 환매는 더 진행되고 있는데, 사상 최고치를 갱신할 경우 가계자금의 유입이 재개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것은 2011년 사상 최고치 갱신 시점에도 경험한 바, 사상최고치를 향해 랠리를 하는 동안 이미 뮤추얼펀드는 시장 수익률을 상회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과거 안정적 수익률은 가계자금의 펀드 선택에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될 것입니다. 셋째, 퇴직연금 자산의 주식시장 참여 확대입니다. 80년대에 2000포인트 수준에 머물던 다우지수가 1만 1포인트까지 수직상승 하게 되었던 원인은 401K로 대변되는 퇴직연금의 도입을 통한 실적배당상품 투자 확대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훌륭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