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양사는 올해 5나노 공정 양산에 나서면서 시장 주도권이 점점 더 공고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현재 기준으로는 두 회사만 7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 받기 때문입니다. 3위 회사인 글로벌파운드리스는 10나노 미만 EUV 공정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5위 기업인 중국의 SMIC도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올 연말까지 7나노 양산을 목표로 세우고 있지만 기술력 측면에서 뒤처진 게 사실입니다.
최근 미국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미국 상원에서는 'The American Foundries Act of 2020'이라는 제목의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 법안을 내놓았습니다. 이 법안의 요지는 미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 및 확장 지원, 미국 내 건설되어 있는 18개 반도체 공장의 현대화, 반도체 기술 R&D 지원 등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법안은 아시아권에 수십 년간 아웃소싱 했던 반도체 어셈블리, 테스트, 패키징 부분 등을 더 이상 아시아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전략적인 뜻으로 풀이됩니다. 게다가 글로벌 판데믹 사태로 인해 미국의 반도체 서플라이체인 부분에서의 의존성, 취약성이 드러나 이런 자국 내 육성 방안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 법안을 통해 인텔, 글로벌파운드리스, 마이크론, NXP, 텍사스 인트루먼트 등 미국 회사들이 크게 수혜를 입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미세공정 단계의 발전으로 점점 반도체 설비 가격 자체가 오르는 것은 자명합니다. 이 때 미세공정 경쟁에 참여하기 위한 자본 지출에 부담을 느끼는 기업들에게 숨통을 터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리고 이런 반도체 관련 자본 지출은 EUV 설비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EUV(Extreme Ultra Violet)는 극자외선 파장의 광원으로 웨이퍼에 패턴을 그리는 차세대 반도체 공정입니다. 기존 불화아르곤(ArF) 광원보다 파장이 훨씬 짧아 세밀하게 패턴을 그릴 수 있습니다. 같은 면적의 도화지(웨이퍼)에 훨씬 세밀한 펜(EUV 광원)으로 기존의 두꺼운 붓(DUV 광원)보다 훨씬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원리와 같습니다. 기존의 ArF, KrF 방식으로는 미세공정이 진행될수록 멀티패터닝 방식을 사용해 공정 단계 수가 계속 늘어났고, 이에 따라 필요한 마스크의 개수도 필연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동시에 사이클 타임이 길어지고 비용이 늘어나는 등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반도체 설비투자 로드맵에서 볼 때 EUV는 '도입을 해야 할지 말지'의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투자 해야할지'의 문제입니다. DUV 방식으로는 로직/파운드리 기준 멀티패터닝으로도 7나노까지가 한계이며, DRAM 기준으로는 1Z 이하 칩을 제조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EUV 공정을 도입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공정 경쟁에서 향후 도태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직 반도체 업체들은 5G와 AI 등 고성능 컴퓨팅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지원하기 위해 계속 미세공정 비중을 확대하고 있는 중입니다. 특히 TSMC와 삼성전자는 10~7나노가 아직 주력이긴 하지만 올해 하반기 5나노까지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로직 반도체에 국한됐었던 EUV 공정이 DRAM을 축으로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도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3월 25일 삼성전자가 EUV 공정을 적용해 생산한 1X 10나노급 DDR4 D램 모듈 100만 개 이상을 글로벌 고객사(아마존 웹서비스)에 공급한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업계 최초로 DRAM에서의 EUV 공정 적용 및 양산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향후 DRAM 미세화 공정이 1Z, 1A에 도달하면서 최대한 많은 레이어에 EUV를 도입한다는 기존 계획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EUV를 적용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로직과 메모리 부문은 EUV를 사용하는 목적이 서로 다릅니다. 로직/파운드리의 미세공정은 고성능 칩을 개발하기 위한 성능 경쟁이었지만, 메모리 부문은 원가를 낮추기 위한 생산성이 중요합니다. 최근 EUV 노광장비의 성능개선으로 효용 대비 비용 문제가 점차 수용할 수 있는 선으로 부담이 낮아진 것이 메모리 반도체의 EUV 활용에 주효했다고 봅니다.
이러한 메모리/비메모리 반도체 미세공정 로드맵에 따라서 올해와 내년을 기점으로 EUV 공정이 기존의 DUV 공정(ArF Dry, ArF Immersion 공정)의 활용 점유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EUV 공정에서 핵심 장비인 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회사는 ASML社가 유일합니다. 기존 ArF Dry 공정에서는 Canon, Nikon社와 3파전이었지만 EUV 공정에서는 ASML만 독주하는 무대로 재편됐습니다.
또한 ASML의 EUV 장비는 연도별 판매대수는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올해 2분기부터 두 자릿수 출하를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EUV 장비의 평균 판매가격이 기존 DUV 장비보다 최대 6배가량 오를 것으로 예상돼 EUV 판매비중이 올라 가며 수익성 개선을 엿보는 동사의 수혜가 돋보입니다.
이러한 ASML의 주요 고객사들로는 작년 매출 기준 TSMC(매출비중 약 40%), 삼성전자(매출비중 약 15%), 인텔(매출비중 약 13%) 등이 꼽힙니다. 따라서 이 세 반도체 메이커들의 CAPEX에 따라서 글로벌 EUV 공정 투자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바로 삼성전자입니다. 평택캠퍼스 P2와 V2의 파운드리 라인에 EUV 공정 도입을 천명했다는 것에 더해 지난 6월 P3를 EUV 전용라인으로 공장을 구축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에 TSMC도 미국 애리조나주에 대규모 5나노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계획했고, 100억 달러 규모 대만 먀오리현에 패키징/검측 공장의 신축도 공식화했습니다.
글로벌 파운드리 경쟁에는 완전히 불이 붙은 모양새입니다. 웃으면서 불구경을 할 수 있는 곳은 EUV 밸류체인 업체들입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