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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앱노멀·빅 체인지 시대, 한국 기업과 금융사…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에 걸리지 않으려면
(2017년 08월 기사)

뉴 앱노멀·빅 체인지 시대, 한국 기업과 금융사…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에 걸리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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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08월 기사)
기고: 한상춘 한국경제신문사 객원 논설위원 겸 미래에셋대우 리서치센터 부사장
한상춘 부사장
흔히 요즘을 '규범의 혼돈(chaos of norm)' 시대라 부른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그렇다. 각국의 이기주의와 보호주의로 2차 대전 이후 '자유무역'을 목표로 지향해 왔던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GATT·WTO 체제를 주도했던 미국이 이탈한다면 다른 국가가 지키기는 더 어렵다.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 파리기후협약 등이 미국을 배제한 차선책이 논의되고 있으나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제적 실리에 의해 좌우되는 국제 관계에서는 철저하게 '그레샴의 법칙(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달러 중심의 브레튼우즈 체제도 흔들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마찰이 심화됨에 따라 일본에 이어 '트리핀 딜레마'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던 중국이 미국 국채를 매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리핀 딜레마'란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처음 주장한 것으로 국제 유동성과 달러 신뢰성 간 상충관계를 말한다.
탈(脫)달러화 조짐도 빨라지고 있다. 세계경제 중심권이 빠르게 이동됨에 따라 현 국제통화제도가 안고 있었던 문제점이 갈수록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중심이 돼 글로벌 불균형과 환율전쟁을 줄이기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태다.
[그림 1] IMF 세계 경제 수정 전망
IMF 세계 경제 수정 전망 그래프 자료: IMF World Economic Outlook
[그림 2] OECD 경기 선행지수
OECD 경기 선행지수 그래프 주: OECD+6대 비회원국 기준 / 자료: OECD
국가마다 커다란 변화도 일고 있다. 올해 1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출범했다. 트럼프노믹스(트럼프 정부의 경제정책)의 총체적 기조는 '미국의 재건(Make America Great Again)'이다. 이는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태생적 한계였던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크게 손상된 국제위상과 주도권의 반작용에서 비롯된 캐치프레이즈다. 한 마디로 글로벌 이익과 미국의 국익 간 상충될 때에는 후자를 중시하겠다는 것이다.
유럽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격변을 치르고 있다. 올해 3월에는 네덜란드 총선, 5월에는 프랑스 대선을 치렀다. 9월에는 독일 총선이 예정돼 있다. 올해 하반기에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도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연임에 성공하지 못하거나 브렉시트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경우 유럽 통합의 앞날에는 시련이 닥칠 것이다.
일본에서는 추진 5년차를 맞는 아베노믹스(아베 정부의 경제정책)가 최대 고비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1단계 '발권력을 동원한 엔저 유도', 2단계 '미국식 양적완화', 3단계 '마이너스 금리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함에 따라 일본은행(BOJ)이 추가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금융완화 수단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아베 총리 앞날도 만만치 않다.
중국도 '2년차 증후군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시진핑 국가 주석의 장기집권과 대내외 위상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13차 5개년 계획(2016년∼2021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출범(2016년 1월), 위안화 국제통화기금 특별인출권(IMF SDR) 편입(2016년 10월)이 올해는 모두 2년차를 맞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대서방 세력 확장, 북한의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 등에 따른 지정학적 위험도 주목해야 할 변수다. 9년 만에 '긴축' 기조로 바뀌는 선진국 통화정책에 자금이탈 방지 등을 신흥국이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해당 국가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림 3] 세계 지정학적 위험 추이
세계 지정학적 위험 추이 그래프 자료: Dario Caldara, Matteo Iacoviello, "Measuring Geopolitical Risk"
각국의 정책도 크게 변하고 있다. 8년 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위기극복'과 '경기부양'이라는 미명하에 돈을 무제한으로 풀고 금리를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뜨렸던 '중앙은행의 만능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경제정책의 주안점인 '큰 정부론'이 국민으로부터 힘을 얻으면서 재정정책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이러한 대세를 선도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재건'을 위해 도로, 철도, 항만 등 낙후된 사회간접자본(SOC)을 복구하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는 케인즈 이론이 태동됐던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루즈벨트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과 유사해 '트럼프-케인즈언 정책'이라고도 불린다. '제2의 레이거노믹스'라 부르는 감세 정책도 병행된다.
유럽도 올해 4월부터 양적완화 규모를 줄이면서(월 800억 유로→600억 유로) 경기대책을 재정정책과 분담시키고 있다. 일본은 '금융완화(하마다 고이치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 주도)' 중심의 1단계 아베노믹스를 마무리하고 2단계 '재정정책(혼다 에쓰로 영국 대사 주도)'을 하반기부터 본격 추진할 방침이다.
중국은 올해 경제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중앙경제공작회의(지난해 12월 개최)에서 재정정책을 적극 활용해 목표 성장률(6.5∼7%)을 달성해 나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국도 대내외 통화정책 여건을 감안하면 추가 금리인하는 어렵다고 보고 여유가 많은 재정정책을 활용해 올해 성장률을 끌어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림 4] FOMC 정책금리 중간값 변화
FOMC 정책금리 중간값 변화 그래프 자료: 블룸버그
표 1 올해 미국의 금리 예상 분포도
회의 일정 6월 5일 기준
0.75∼1.00 1.00∼1.25 1.25∼1.50 1.50∼1.75 1.75∼2.00
6월 14일 0.0 87.3 12.8 0.0 0.0
7월 26일 5.9 82.2 11.9 0.0 0.0
9월 20일 4.4 62.4 30.2 3.1 0.0
11월 1일 4.3 61.2 30.8 3.7 0.1
12월 13일 3.2 47.6 38.1 10.2 0.9
1월 31일 3.2 46.7 38.3 15.7 1.1

자료: 블룸버그

각국의 산업정책도 우선순위가 변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 창사자인 크라우스 슈밥이 지난해 다보스 포럼에서 제시했던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거세게 불어 닥치고 있다. 명칭은 다르지만 미국, 중국, 독일, 일본은 4차 산업혁명을 육성시키는 'industry 4.0' 계획을 확정해 올해 예산을 집중 배정하고 있다.
국제원유시장도 8년 만에 다시 카르텔 체제로 환원됐다. 금융위기 이후 석유수출국기구(OPEC)은 '사실상 와해됐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한계를 보이면서 100달러를 상회하던 유가가 26달러대로 폭락했다. 지난해 11월말에 열렸던 정기총회에서 OPEC가 다시 감산체제에 들어갔다. 이는 이행 여부에 따라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다.
글로벌 자금흐름도 더 주목해야 할 변수다. 올해 하반기 들어서자마자 국채금리가 급등(국채가격 하락)함에 따라 국채시장이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각국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일제히 올라가면서 '하우소포리아(housophoria=house+euphoria)'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호황을 구가했던 세계 주택시장도 주춤하는 분위기다.
국채와 주택시장에서 이탈된 자금이 이동되는 새로운 투자처는 크게 두 곳이다. 하나는 지금까지 나타난 변화가 '추세적인지'는 시간을 갖고 판단하자는 취지에서 나타나는 '금융 노마드' 현상이다. 다른 하나는 위험선호 자금이 선도하는 증시로의 '그레이트 로테이션(great rotation·대이동)' 현상이다. 후자로 진전된다면 대내외 증시는 대세상승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규범과 체제가 흔들리면 관행과 경륜에 의존해야 혼돈을 바로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국가나 기업 차원에서는 '아웃사이더 전성시대(outsiders' time)'다. 세계경제 최고단위인 주요 20개국(G20) 독일 정상회담만 하더라도 트럼트 미국 대통령,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데뷔 무대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경륜이 많은 최고경영자(CEO)일수록 수난을 겪고 있다. 행동주의 투자자 넬슨 펠츠가 이끄는 트라이언펀드가 주가 정체 등을 이유로 제왕적 CEO의 상징인 제너럴일렉트릭(CE)의 제프리 이멜트를 쫓아냈다. 비슷한 이유로 마리오 롱기 US스틸 CEO, 마크 필즈 포드자동차 CEO도 해임됐다.
문제는 세계경제질서, 정치, 정책에 있어서 종전의 규범과 관행에 의존하지 못함에 따라 세계경제가 더 혼돈에 빠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확실성 시대(케네스 갤브레이스)가 나온 지 40년이 지났지만 오히려 새로이 '초불확실성 시대(배리 아이켄그린)'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전보다 커진 심리요인과 네트워킹 효과로 '긍(肯·긍정)'과 '부(否·부정)', '부(浮·부상)'와 '침(沈·침체)'이 겹치면서 앞날을 내다보기가 힘들어졌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질서는 '뉴 노멀'로 요약된다. '노멀' 시대 통했던 이론과 규범, 관행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점에 착안해 붙여진 용어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에는 미래 예측까지 어려워졌기 때문에 누니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뉴 앱노멀(new abnormal)'라 부른다.
초불확실성 시대가 무서운 것은 어느 날 갑자기 '큰 변화(big change)'가 온다는 점이다. 규범과 관행에 의존하다보면 과감한 개혁과 혁신을 줄 수 없어 '작은 변화(small change)'만 생긴다. 하지만 의존하고 참고할 만한 규범과 관행이 없으면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로 개혁과 혁신을 생존 차원에서 추진할 수밖에 없어 어느 순간에 큰 변화가 닥친다.
[그림 5] 주요 4차 산업별 'big change' 가능성 비교
주요 4차 산업별 'big change' 가능성 비교 그래프 자료: 세계경제포럼, 2017년
'빅 체인지', 즉, 큰 변화에 성공한다면 그에 따르는 보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 '세계가 하나'로 시장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세계 10대 부호에 들어가려면 노멀 시대에는 최소한 30년이 걸렸으나 뉴 노멀 혹은 뉴 앱노멀 시대에는 10년 이내도 가능하다. 구글과 페이스북 창업자 등이 대표적인 예다.
'뉴 앱노멀·빅 체인지' 시대에 가장 신경을 써야 할 것은 '리스크 관리'다. 일등기업이 됐다고 승리에 도취돼 있으면 곧바로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에 걸리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드배치 보복을 앞두고 면세 사업권을 따내 성공을 자축했던 국내 백화점 업계가 지금은 텅 빈 매장으로 깊은 시름에 빠져 있다. 경쟁사 애플을 제치고 세계일등기업으로 거듭난 삼성전자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두가 궁금해 한다.
'지속 가능한 흑자경영'은 모든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업은 성장 동력을 개발하고 고객가치 창출과 전략을 설계하고 경영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경주한다. 하지만 베인 앤 컴퍼니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현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이 목표를 달성해 생존한 기업은 10%도 채 못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전에는 지속 가능한 흑자경영 달성에 실패하는 것을 시장점유율 하락, 경쟁 격화, 기술진보 부진 등과 같은 외부요인에서 찾았다. 하지만 '뉴 앱노멀·빅 체인지' 시대에는 오너쉽 약화, 의사결정 지연, 현장과의 괴리 등 내부적인 문제가 있다.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내부적인 복잡성이 증가하고 초창기 왕성했던 창조적인 문화, 임직원의 주인의식이 약화되는 '성장의 함정'과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다.
[그림 6] 한국 경제성장률
한국 경제성장률 그래프 자료: 블룸버그
[그림 7] 주요 경기 심리지표
주요 경기 심리지표 그래프 자료: 블룸버그
기업은 성장할수록 가장 먼저 '과부화(overload)' 위기를 맞아 급속한 사업팽창에 따라 신생기업이 겪는 내부적인 기능장애에 봉착한다. 과부화 위기는 '속도 저하(stall-out)' 위기로 전이돼 기업규모가 커짐에 따라 조직의 복잡성이 증가하고 초창기 조직을 이끌었던 명확한 창업자적 미션이 희미해짐에 따라 성장둔화를 겪게 된다. 속도 저하 위기가 무서운 것은 곧바로 '자유 낙하free fall)' 위기로 악화돼 창업자 정신을 상실한 기업일수록 주력 비즈니스 모델의 경쟁력을 잃게 되고 핵심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한국 기업은 '저성장 늪'에 빠져 성장 미래를 찾는데 골몰하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성장둔화 요인을 중국의 추격 등과 같은 외부요인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 '스스로의 도피'다. 기업 내부적으로 '창업자 정신'에 기반을 두고 모든 조직원이 주인의식을 갖고 있는지, 철저하게 현장 중심적 의사결정과 사고체계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뚜렷한 고객층을 위한 반역적 미션을 갖고 있는지를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창업자 정신은 '반역적 사명의식'과 '현장 중시', '주인 의식'이라는 세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이 정신은 성장을 막 시작한 기업이 자신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경영여건이 잘 갖춰진 기존 기업에 도전할 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창업자가 직접 이끄는 기업이나, 직원이 일상적인 결정과 행동방식에 준거의 틀로 삼는 규범과 가치에 창업자의 영향력이 남아 있는 기업일수록 흑자경영을 달성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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