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10년, 2020년대 첫해를 맞아 그 어느 해보다 희망과 기대를 갖고 출발했던 세계 경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뜻하지 않았던 사태를 맞아 절망과 불안으로 점철된 어두운 터널을 헤매는 중이다. 코로나19는 'BC(Before Corona)'에서 'AD(After Disease)'로
비유될 만큼 모든 분야에서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바이러스 전염병의 본질적인 특성에 따라 경제 분야에서 가장 먼저 닥친 변화는 '세계화의 퇴조'다.
세계화의 속도가 둔화된다는 의미의 '슬로벌라이제이션'을 넘어 '탈세계화'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다.
백신이 나오기까지 바이러스 전염병에 대처하는 유일한 길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의 이동이 제한되면 상품과 자본의 이동까지 제한되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퇴조 움직임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사태로 '효율성(기업 차원에서는 이윤 극대화)'을 중시하는
세계화에서 안정성과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각국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닥칠 변화를 감안해
글로벌 전략 등 모든 경제정책을 수정해 나가고 있다.
반면에 자급자족 성향이 더 강해지는 추세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범세계주의'보다 '보호주의'가 힘을 얻어가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수출'보다 '내수', '오프쇼오링' 보다 '리쇼오링', '아웃소싱'보다 '인소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 하는 극우주의 세력이 날로 커지고 있다.
주력산업도 커다란 변화가 일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알파 라이징 업종'의 부상이다.
'알파 라이징 업종'이란 현존하는 기업 이외라는 관점에서 '알파(α)'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더 떠오른다는 의미에서 '라이징(rising)'이 붙은 용어다.
클라우드, 온디멘드, 리모트, 온라인 스트리밍, 네트워크 5G, 인공지능과 함께 바이오 업종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K'자형 경기가 심해지면서 중산층이 무너짐에 따라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즉 BOP(Bottom of the Pyramid) 업종이 부상하는 것도 눈여겨봐야 할 변화다.
BOP계층은 세계 인구(74억 명)의 72%인 50억 명에 이를 만큼 많은 데다 평균소비성향(소득대비 소비비율)이 높아 시장규모도 10조 달러가 넘는 거대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올해처럼 세계 경기 앞날을 예측하기가 어려운 때도 없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이먼 쿠츠네츠가 국민소득 통계를 개발했던
1937년 이후 경기 앞날을 보는 시각이 올해처럼 엇갈리는 적이 없다. 코로나19 사태 직후 경기 앞날과 관련해 'I'자형, 'L'자형, 'W'자형,
'U'자형, 'V'자형에 이어 '나이키형'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예측이 나왔다.
지난 2월 중순 코로나19가 국제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 세계 증시가 한순간에 무너지자 누니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1930년대 대공황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I'자형의 극단적인 비관론을 제시했다. 반면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코로나 백신 개발이라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조기에 회복할 것이라는 'V'자형으로 반박했다.
세계적인 석학 간에 경기 앞날을 보는 시각이 엇갈리게 만든 것은 코로나19가 갖고 있는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코로나19는 발병 원인과 시기, 진행 방향, 그리고 치료제와 백신 개발 등 그 어느 하나 확실하지 않았다.
하이먼 민스크 리스크 이론에서는 '아무도 모른다' 위험은 투자자를 비롯한 경제주체들이 대응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보고 있다.
각국 경기는 경제활동 재개시기에 따라 순차적으로 달랐다. 가장 빨리 지난 4월 들어서자마자 재개한 중국 경제는 1분기에 성장률이
-6.8%까지 추락한 이후 2분기 3.2%, 3분기에는 4.9%로 'V'자형 반등에 성공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대부분 예측기관은
올해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경제활동 재기 시기가 가장 늦었던 미국 경제는 1분기 -5% 역성장한데 이어 2분기에는 -31.4%로 'I'자형으로 추락했다.
2분기 성장률을 놓고 본다면 대공황 때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 3분기에는 33.1%로 반등했지만 2분기 급락에 따른 '기저 효과'로
지속 성장 가능 여부에 있어서는 의심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요한 것은 올해 4분기 이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난 3월 1차 논쟁 때와 마찬가지로 2차 논쟁 때도 두 가지 시각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3분기에는 기저 효과 등으로 잠시 회복세를 보였지만 4분기 이후부터는 다시 침체될 것이라는 'W'자형과 2분기를 저점으로 회복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U자형' 시각이다.
1차 논쟁 때와 다른 것은 극단적인 비관론인 'I'자형과 'L'자형 시각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2차 논쟁 때 비관론인 'W'자형의 근거로
삼는 코로나19가 2차 대감염이 발생하더라도 1차 대감염 때보다 학습 효과로 당황하지 않으면서 거리두기 등이 일상화됐다.
경제 재봉쇄도 쉽지 않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시기도 1차 대감염 때보다 다가왔기 때문이다.
경기 부진과 함께 재택근무 등 고용행태의 변화로 직장에서 실업자뿐만 아니라 완전히 쫓겨난 영구 실업자가 급증한 것도 또 다른 변화다.
미국만 하더라도 영구 실업자가 380만 명에 이르고 3분기 이후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는 데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영국, 프랑스, 일본, 한국 등도 마찬가지다.
고용시장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남에 따라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잣대도 흐트러지고 있다. Fed의 양대 목표의 이론적 근거가 되는
물가 상승률과 실업률 간의 음(-)의 관계를 보여주는 '필립스 곡선'이 금융위기 이전에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됐으나,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양(+)의 관계로 바뀌거나 평탄화됐다.
Fed가 내부적으로 고용시장의 개선 여부를 파악할 때 '베버리지 곡선'을 중시한다. 이 곡선은 일반적으로 경기가 호전될 경우 기업의 구직활동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실업률이 하락하는 점을 착안해 구인율과 실업률 간에 음(-)의 관계가 있음을 도식화한 것으로 필립스 곡선과 다른 점은 고용시장만을 대상으로 한 이론이다.
하지만 피터 다이아몬드 MIT 교수 등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전까지 우하향하던 베버리지 곡선이 위기 이후에는 우상향해
미국 노동시장에 구조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미국 기업들이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명확하지 않으면 고용을
늘리는 것을 가능한 억제한 것이 주요인이다.
예측기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극복된다 하더라도 1990년대 후반 신경제 시대보다 '더 거친 고용 창출 없는
경기회복(more harsh jobless recovery)'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오히려 영구 실업자가 주축이 된 극좌파 세력이
확산되면서 2011년 뉴욕 폭등 사태처럼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가 중대한 국면에 봉착할 수 있다.
경기와 고용 부진 속에서도 세계 주가가 크게 오른 것도 올 한해를 정리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현상이다.
지난 3월 중순 이후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55%, 나스닥지수는 무려 70% 이상 급등했다. 세계 평균주가 상승률도 50%에 달한다.
같은 기간 한국의 코스피 지수는 70%, 특히 코스닥 지수는 100% 넘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올랐다.
주가가 너무 오름에 따라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전통적인 주가평가지표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미국 상장기업의 PER는 25배로 적정수준인 16배를 훨씬 뛰어넘는 고평가됐다. 한국의 바이오 종목의 PER은 평균 200배가 넘는다.
이론적으로 주가는 내려가야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르고 있는 추세다.
이에 따라 주가무형자산비율(Price Patent Ratio, PPR)과 꿈 대비 주가 비율(Price to Dream Ratio, PDR) 등 새로운 평가지표도 나왔다.
PPR과 PDR은 지금 당장 경기와 실적이 뒤따라주지 않더라도 미래에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는 무형자산이 높게 평가되면 주가가 오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만든 지표다.
세계 경기와 주가가 다른 행보를 보인 것은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각국 중앙은행이 금융위기 당시보다 더 큰 초(超)금융완화 정책 때문이다.
선봉장 역할을 섰던 미국 중앙은행(Fed)은 지난 3월 초 1913년 설립 이후 두 번째로 열렸던 임시회의 이후 가보지 않는 길을 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때까지 정크 본드 등 매입 대상을 가라지 않고 무제한 달러화를 공급하겠다는 방침이다. 중앙은행의 고유기능인 최종 대부자 역할을 포기한 셈이다.
기준금리도 '빅 스텝' 방식으로 한꺼번에 크게 내렸다. Fed는 제로 수준으로 환원했고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추진해온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은 그 폭을 더 깊게 가져가는 방안을 놓고 고민했다. 중국 인민은행도 기준금리에 해당하는
1년 만기 대출금리를 비롯해 모든 정책성 금리를 내렸다. 한국은행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0.5% 포인트(p)씩 1%p 인하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제로 금리'와 양적완화를 통해 달러화 공급이 많을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트리핀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트리핀 딜레마란 미국은 경상수지적자를 통해 달러화를 공급해야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달러 가치가 떨어져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의 주장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장 안전하다는 달러화가 강세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하락한 것도 올해 세계 경제를 점검하면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지난 3월 중순 이후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3'대에서 '92∼93'대로, 원·달러 환율은 1,285원에서 1,110원대로 폭락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운용자인 래이 달리오는 달러화가 휴지조각이 될 것이라는 극단적인 비관론까지 내놓았다.
기축통화로 달러화 위상이 흔들림에 따라 중국을 비롯한 미국 이외의 다른 국가는 브레튼우즈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담했던 과다
달러화 보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탈(脫)달러화 움직임이 빨라졌다. 디지털 콘택트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각국의 디지털 통화 도입도 앞당겨졌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를 도입했고 일본도 디지털 엔화를 도입할 방침을 확정했다. 국제통화질서에 일대 지각변동을 초래할 새로운 움직임이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세계 권력 구도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발병 진원지'라는 오명을 극복하고
시진핑 국가주석은 2차 방역, 경제활동 재개 등을 신속하게 결정해 정치적 입지가 재강화됐다. 지난 10월 말에 폐막된 19기 5중
전회(19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 회의)를 계기로 '쌍순환 전략'과 '홍색 공급망 전략'을 추진해 중국 중심의 '팍스 시니카' 구상을
앞당겨 실현시켜 나가겠다는 야망을 선언했다.
반면에 도쿄 올림픽 성공, 대통령 연임 등과 같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코로나19 사태에 미숙하게 대응하거나 악용했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권력이 교체되거나 교체될 운명에 놓여있다. 레젭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등과 같은 권력욕이 많은 최고통수권자들도 같은 운명에 놓여 있다.
'코로나19 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그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경자년'이 마무리되고 있다. 지난 8월 말 스가 요시히데 일본 정부에
이어 내년 1월 20일에는 조 바이든 정부도 출범한다. 코로나 백신 개발 소식도 들린다. 신축년인 2021년에는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이
어떻게 전개될 지 올 한해를 정리하면서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