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10년이 시작되는 첫 해인 2020년을 맞으면서 그 어느 해보다 희망과 기대를 갖고 출발했던 세계 경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태를 맞으면서 절망과 불안으로 점철된
어두운 시기를 겪고 있다. 유일하게 세계 주가가 올라 코로나19 사태를 견디게 하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경기가 추락하는 속에서도 주가는 크게 올랐다. 지난 3월 중순 이후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55%,
나스닥지수는 무려 70% 이상 급등했다. 세계 평균주가 상승률도 50%에 달한다. 같은 기간 중 한국의 코스피 지수는 60%,
특히 코스닥 지수는 100%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올랐다.
주가가 너무 오름에 따라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전통적인 주가평가지표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미국 상장기업의 PER는 25배로 적정수준인 16배를 훨씬 뛰어넘게 고평가됐다. 한국의 바이오 종목의 PER은 평균 200배가 넘는다.
이론적으로 주가는 내려가야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르고 있는 추세다.
전통적인 주가평가지표로 설명되지 않음에 따라 주가무형자산비율(Price Patent Ratio, PPR)과 꿈 대비 주가 비율(Price to Dream Ratio, PDR) 등 새로운 평가지표도 나왔다.
PPR과 PDR은 지금 당장 경기와 기업 실적이 뒤따르지 않더라도 미래에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는 무형자산이 높게 평가되면 돈이 몰리면서 주가가 오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만든 지표다.
하지만 무형자산은 그 자체가 불안해 언제 어떤 상황으로 바뀔지 모른다.
표 1 Fed의 미국경제 전망 (단위: %)
구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장기
GDP성장률
-3.7
4.0
3.0
2.5
1.9
실업률
7.6
5.5
4.6
4.0
4.1
PCE물가상승률
1.2
1.7
1.8
2.0
2.0
근원PCE물가상승률
1.5
1.7
1.8
2.0
-
연방기금금리
0.1
0.1
0.1
0.1
-
주 : 전망 시점은 2020년 9월 자료 : Fed
코로나19 사태에도 주가가 크게 오르는 것은 각국 중앙은행이 추진해 왔던 적극적인 금융완화정책이 결정적인 힘이 됐다.
선봉장 역할을 섰던 미국 중앙은행(Fed)은 지난 3월 초 1913년 설립 이후 두 번째로 열렸던 임시회의를 통해 무제한 채권매입 방침을 결정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때까지 돈을 공급하겠다는 의미다. 정도 차가 있지만 다른 중앙은행도 마찬가지다.
기준금리도 '빅 스텝' 방식으로 한꺼번에 크게 내렸다. Fed는 제로 수준으로 환원했고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추진해온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은 그 폭을 더 깊게 가져가는 방안을 놓고 고민했다. 중국 인민은행도 기준금리에 해당하는 1년 만기 대출금리를
비롯해 모든 정책성 금리를 내렸다. 한국은행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0.5% 포인트(p)씩 1%p 인하했다.
케인즈언의 통화정책 전달경로(기준금리 인하→시장금리 하락→총수요 증가→경기 회복) 상 기준금리를 내려 시장금리가 오르는 것을 제약할 때는
주가가 고평가된다 하더라도 자금이 증시에서 빠지기가 쉽지 않다. 주가가 오를 때 채권시장에서 자금이 증시로 이동(great rotation)해 채권가격이
떨어져야 거품이 우려될 때 채권투자 매력이 부각되어 증시에서 이탈된 자금이 유입(money move)되면서 주가는 자율적으로 조정된다.
하지만 기준금리가 시장금리에 따른 주식과 채권시장 간 자율적인 자금이동을 억제시킬 경우 주가도 채권가격도 높은 수준이 유지될 수 있다.
주가와 채권가격이 거품을 우려할 정도로 높아지면 이번에는 자금이 주거용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집값도 올라간다.
지난 7월 이후 미국, 영국을 중심으로 세계 집값이 이례적으로 급등하는 것도 이 선상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주식, 채권, 부동산 등 모든 자산가격이 높은 수준이 유지되면 코로나19 사태 이후처럼 금융과 실물경제가 따로 노는 이분법
경제에서도 '부(富)의 효과'를 통해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금융과 실물경제 간 연계가 강화돼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이 마련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은 코로나19 사태처럼 경제와 금융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추진되는 한시적 성격의 비상대책이다.
경기가 어느 정도 살아나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풀린 돈을 회수하는, 즉 출구전략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
통화정책 상 출구전략과 같은 대변화를 모색할 때 시장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 기준을 명확하게 예고해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출구전략 필요성이 처음 언급될 때 Fed도 이런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일몰조항 중심(sunset based)',
'조건충족 중심(threshold oriented)', '경제지표 중심(data dependent)' 등 세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금융위기 이후에는 첫 번째 기준에 따라 1차 양적완화는 2010년 3월, 2차 양적완화는 2011년 6월, 3차 양적완화는 2014년 10월에 종료됐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기준은 물가상승률이 2.5%를 상회하고 실업률이 6.5%를 하회할 때다.
통화정책 시차를 감안해 두 번째와 세 번째 기준 충족이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한 2015년 12월부터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Fed가 제시했던 출구전략 추진의 세 가지 기준을 코로나19 이후로 적용해 보면 양적완화에 해당하는 무제한 채권매입 정책은 시한이 정해지지 않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기준도 물가상승률이 2%, 실업률이 3.5%로 더 강화됐다. 9월 회의에서 평균물가목표제 도입으로 Fed로서는 물가 목표를 엄수해야 한다는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다.
앞으로 출구전략은 '실업률이 언제 3.5%에 도달할 것인가'가 관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Fed 양대 목표의 이론적 근거가 되는 물가 상승률과 실업률 간의 음(-)의 관계를 보여주는
'필립스 곡선'이 금융위기 이전에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됐으나, 금융위기 이후에는
양(+)의 관계로 바뀌거나 평탄화됐다.
Fed가 내부적으로 고용시장의 개선 여부를 파악할 때 '베버리지 곡선'을 중시한다. 이 곡선은 일반적으로 경기가 호전될 경우 기업의 구직활동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실업률이 하락하는 점에 착안해 구인율과 실업률 간의 음(-)의 관계가 있음을 도식화한 것으로 필립스 곡선과 다른 점은 고용시장만을 대상으로 한 이론이다.
하지만 피터 다이아몬드 MIT 교수 등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전까지 우하향하던 베버리지 곡선이 위기 이후에는
우상향해 미국 노동시장에 구조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미국 기업들이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명확하지 않으면 고용을 늘리는 것을 가능한 억제한 것이 주요인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재택근무 등으로 고용시장에서 보다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점이다.
직장에서 완전히 쫓겨난 영구 실업자가 380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필립스 곡선의 평준화와 우상향으로
전환된 베버리지 곡선이 고착화돼 평균목표물가제를 실시한다 하더라도 고용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현실이 닥칠 수 있음을 암시한다.
Fed가 가장 중시하는 고용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경기 회복이 언제부터 이뤄질 것인가가 최대 변수다.
코로나19 사태 직후 '수직 절벽형', 'L'자형, 'W'자형, '나이키형', 'U'자형, 'V'자형에 이어 '로켓 수직 발사형'까지
나올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예측이 나왔다. 코로나19는 발병 원인과 진행 방향, 그리고 백신 개발 등 모든 것이 아무도 모르는 외생변수이기 때문이다.
1차 경기 논쟁의 꽃은 누니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수직 절벽형'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했던 '수직 발사형'이다.
지난 2월 중순 이후 세계 증시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상황에서 루비니 교수는 세계 경기가 1930년대 대공황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극단적인 비관론'을 제시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발사 후 수직으로 떠오르는 로켓에 비유해 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낙관론'을 주장했다.
종전의 경기침체 요인과 달리 코로나19는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 질병이기 때문에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기 이전 유일한 대처방안은 '격리'다.
오프쇼어링, 아웃소싱 등 효율성만 겨냥해 '집중화'에 익숙했던 성장 체제에서 사람을 격리시켜 놓을 경우 초기에는 극단적인 비관론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루비니 교수가 결정적으로 실수한 것은 포퓰리즘 성향이 강한 최고통수권자들은 경기가 어려워질수록 과감한 경기 부양책을 추진할 확률이 높아지는 점을 간과했다.
코로나19 사태 직후 각국의 최고통수권자는 금융위기보다 더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추진한 가운데 2차 팬더믹에 대한 우려 속에서도 경제활동 재개를 서둘러 단행했다.
각국의 2분기 성장률 발표가 마무리될 지난 6월 말 무렵 3분기 이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놓고 2차 논쟁이 벌어졌다.
3분기에는 기저 효과 등으로 잠시 회복세를 보이다가 다시 침체된다는 'W'자형과, 2분기를 저점으로 회복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U'자형 시각이다.
1차 논쟁 때와 다른 것은 극단적인 비관론과 극단적인 낙관론은 사라진 점이다.
2차 논쟁 때 비관론인 'W'자형은 코로나19가 2차 대감염이 발생하더라도 1차 대감염 때보다 학습 효과로 당황하지 않으면서 마스크 착용,
거리 두기 등이 일상화된 데다 경제 재봉쇄도 쉽지 않은 점을 근거로 들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시기도 1차 대감염 때보다 다가왔다는 점도 또 다른 이유다.
최악의 경우 2차 대감염에 따라 경제활동이 재봉쇄된다 하더라도 각국 중앙은행이 코로나 사태가 극복될 때까지 모든 것을 다 풀어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1차 대감염 때보다 완충능력이 확보된 상태다. 1차 대감염 이후 주가가 크게 오른 것에 따른 '자산 효과'도 기대돼 'W'자형의
두 번째 저점은 첫 번째 저점보다 높게 형성될 것으로 내다봤다.
중요한 것은 자산 효과에 따라 경기가 회복세를 보인다 하더라도 고용 창출이 안 될 경우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이 마련될 수 있느냐를 놓고 3차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격리 후 경제활동 재개에 따른 반사 효과로 실업률이 떨어지고 있지만 계속해서 개선될 것인가에 있어서는 경제활동 재개 이후 급증한 영구 실업자를
감안하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영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도 영구 실업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3차 논쟁은 1차, 2차 논쟁처럼 '비관론'과 '낙관론'으로 대립되지는 않지만 1990년대 신경제 시대보다 '더 거친 고용창출 없는
경기회복(more harsh jobless recovery)'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와 고용사정이 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데에 의견이 수렴되고 있는 점을 시사한다.
Fed와 국제통화기금(IMF)이 적극적인 재정정책 역할을 촉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현대통화이론(MMT)의 골자는 이렇다.
물가에 문제가 없는 한 재정적자(쌍둥이 이론에 의해 무역적자도 포함)와 국가부채를 두려워하지 말고 달러를 찍어 써도 문제가 없다는 시각이다.
통화정책에 있어서는 양적 완화와 같은 정책이다.
미국 대선 이후에도 주가 상승세는 영원할까. 전통적으로 Fed는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시장의 예상을 받아들이는 '순응적 선택'을 한다.
시차가 긴 통화정책이 의도했던 대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시장과의 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Fed의 의중이 잘못 읽히거나,
통화정책 추진여건이 애매모호할 때 '체크 스윙' 차원에서 시장의 예상과 달리 '역행적 선택'을 한다.
조지 에컬로프 미국 버클리대 교수가 비대칭 정보를 활용해 노벨 경제학상까지 받은 '역행적 선택론'은 경제활동에 필요한 완전한 정보를
보유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현상을 분석하는 정보 경제학의 한 부류다. 출구전략 추진이 지연될수록 곤경에 처할 것으로 보이는 Fed가
잘못된 시장 예상을 시정할 때 '체크 스윙' 수단으로 자주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Fed와 IMF의 요구대로 재정지원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MMT에서 우려하지 말라는 국가채무는 늘어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아르헨티나, 터키,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신흥국이 디폴트 위험에 계속해서 시달렸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도 국가채무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 대선 이후에는 이 요인들이 주식 상승에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