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호님의 댓글
유한호나라의 근간을 정치논리로 이끌어가다보면 어느순간 자가당착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고 봅니다.
당사국인 영국이 리보 금리 퇴출을 결정한 이후 G20(주요 20개국), 미국 중앙은행(Fed), 영란은행을 중심으로 리보 금리를 대체할 새로운 기준금리를 연구해왔다. Fed가 가장 먼저 제시한 것이 '담보부 조달금리(SOFR·secured overnight financing rate)'다. 산출 방식은 시장 참여자의 실제 거래금액을 감안한 중간 금리라는 점은 리보 금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무담보인 리보 금리와 달리 SOFR는 담보부 금리인 데다 익일물 확정금리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하루 평균 거래금액도 최소 8,000억 달러가 넘어 5억 달러에 불과한 리보 금리와 커다란 차이가 난다. 리보 금리가 문제가 됐던 조작은 사실상 불가능해져 기준금리의 생명인 신뢰를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앞으로 SOFR가 기준금리로 사용할 경우 국제금융시장은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조달기준금리를 어느 국가 것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국제금융 중심지가 이동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통화위기가 발생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리보 금리를 기준금리로 삼아왔다. 국제금융 중심지가 '런던'이라는 의미다.
그 이후 리보 금리가 조작 사태에 수시로 휘말림에 따라 3개월 미국 재무성 증권금리로 대체되면서 '뉴욕'이 부상했다. 올해 하반기 이후 리보 금리가 SOFR로 완전히 대체될 경우 국제금융 중심지로서 뉴욕의 위상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달러 임페리얼 서클이 더 강해지고 월가의 영향력도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리보 금리와 함께 또 하나의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FFR·federal fund rate)도 '익일 환매 금리(ON RRP·overnight repurchase agreement)'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2015년부터 보조지표로 검토해온 ON RRP는 Fed의 통화정책 상 기준금리로 갖춰야 할 기능이 FFR보다 월등히 뛰어난 것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SOFR, ON RRP 등이 새로운 기준금리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하나는 국제금융시장을 상징할 수 있을 정도의 대표성을 가져야 하고, 다른 하나는 인식 차원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정도의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 국제금융시장의 움직임이 잘 반영될 수 있도록 각종 금리 간의 체계(interest system)도 잡혀야 한다.
각국 중앙은행도 새로운 기준금리가 빠른 시일 안에 정착되기 위해서는 국제금융시장에서 거래 규모부터 늘어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과 함께 인프라 면에서도 중층적(中層的)인 발전을 도모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참여자의 능력을 배양하는 동시에 국제화도 병행해 나갈 방침이다.
2023년 잭슨홀 미팅에서는 새로운 기준금리 조기 정착 방안과 함께 작년 3월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단기간에 큰 폭으로 인상한 문제에 대한 평가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론적으로 통화당국이 기준금리를 어떻게 조정해 왔으며 그것이 과연 적절했는가를 사후적으로 검증하기 위한 방법 중이 하나가 '테일러 준칙(Taylor's rule)'이다.
산출공식은 우선 실질 균형금리에 평가 기간 중 인플레이션율을 더한다. 여기에 평가 기간 중 인플레이션율에서 목표 인플레이션율을 뺀 수치에 정책반응 계수(물가 및 성장에 대한 통화당국의 정책의지를 나타내는 계량수치)를 곱한다. 그리고 평가 기간 중 경제성장률에 잠재성장률을 뺀 값에 정책반응 계수를 곱한 후 모두 더해 산출한다.
3년 전 들이닥친 코로나19 사태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아무도 모르는 뉴 노멀 디스토피아의 첫 사례다. 때문에 초기 충격이 커 미국 중앙은행(Fed)은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내리고 통화공급으로 무제한으로 풀었다. 정도 차가 있지만 한국은행을 비롯한 다른 중앙은행도 마찬가지였다.
어빙 피셔의 화폐수량설(MV=PT, M은 통화량, V는 통화유통속도, P는 물가수준, T는 산출량)에 따르면 통화공급은 그대로 물가로 연결된다.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19 사태는 백신만 보급되면 세계 경제가 '절연'에서 '연계' 체제로 이행되고 돈이 돌기 시작하면 '쇼크'라는 용어가 나올 만큼 갑작스럽게 인플레 우려가 불거진다.
2년 전 '쇼크'라 불릴 정도로 인플레가 갑자기 불거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인플레 지속 여부를 놓고 '일시적'이냐 논쟁이 거세질 무렵 미국의 성장률이 높게 나오자 정책 요인에 의해 촉발된 인플레가 수요 견인 인플레로 옮겨지면서 하이퍼 인플레까지 우려됐다. 통화정책의 생명인 선제성(pre emptive)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됐다.
만약 당시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의 권고를 받아들여 선제 조치를 취했더라면 Fed 설립 역사 상 금리를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높은 인상 폭인 500bp(1bp=0.01%포인트)까지 올릴 필요가 있었느냐는 비판과 반성이 미국 학계와 Fed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인플레가 통제권에 들어오면 "Fed의 금리인상 정책이 적절했던가" 반드시 평가돼야 할 문제였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테일러 준칙에 의해 도출된 적정수준보다 높아 작년 3월 이후 Fed의 금리인상이 얼마나 급하게 단행했는지 입증하고 있다. 2년 전 인플레가 불거질 당시 '일시적'이라 오판하고 평균물가목표제로 안이하게 관리해온 Fed가 뒤늦게 '볼커 모멤텀'으로 대처한 결과다.
볼커 모멘텀식 대응은 장단기 금리 간 역전현상을 불러온다. 말이 뛰는 식의 금리인상으로 통화정책에 민감한 단기금리가 빠르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2년물과 10년물 금리 간 역전현상이 1년 이상 길어지면서 그 폭도 갈수록 확대되는 추세다. 올해 하반기 들어서는 100bp((1bp=0.01%포인트) 이상으로 40년 만에 최대 폭으로 벌어지고 있다.
'유동성 프리미엄 가설', '기대 가설', '분할시장 가설'에 따르면 수익률 곡선이 음(-)의 기울기(단고장저)를 나타내면 경기가 차입비용 증가로 침체국면에 접어들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수익률 곡선이 양(+)의 기울기(단저장고)를 나타내면 투자에 유리한 환경이 지속되어 경기가 회복될 확률이 높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2분기 연속 성장률 추이로 경기를 판단한다. 하지만 '선제성'을 중시하는 미국 중앙은행(Fed) 입장에서는 NBER식으로 지나간 성장률 추이로 경기를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유효성 문제가 있긴 하지만 Fed가 경기를 판단하고 예측하는 기법으로 '수익률 곡선 스프레드'를 선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투로 에스트렐라와 프레디릭 미시킨 연구에 따르면 수익률 곡선 스프레드는 가장 성공적인 경기예측기법으로 나타났다. 특히 장단기 금리 차의 '변화(change)'보다 '수준(level)'이 예측력이 더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뉴욕 연방은행도 장단기 금리 차는 실물경기를 4~6분기를 선행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1960년 이후 15차례 걸쳐 장단기 금리 간 역전, 즉 단고장저 현상이 발생했고 대부분 경기침체가 수반됐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같은 투자의 구루가 뉴욕 연방은행이 매월 확률 모델을 이용해 발표하는 장단기 금리 차의 경기 예측력을 각종 투자 판단 때 가장 많이 활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확률 모델이란 장단기 금리 차의 누적확률분포를 이용해 12개월 이내에 경기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을 확률로 변환하는 모델이다. 동 모델로 추정한 결과 마이너스 장단기 금리 차가 경기침체를 예측한 확률은 지금과 상황이 비슷한 1981∼82년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서 98%까지 치솟은 적이 있다.
하지만 최근 장단기 금리 간 역전현상에 대해 Fed는 경기침체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견해다. 그 근거로 고용시장이 견실한 점을 들고 있다. 오히려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경기가 희생되더라도 이를 감수하겠다는 볼커 모멘텀식 대응을 계속할 뜻을 비추고 있다. 올해 잭슨홀 미팅에서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 것인지 궁금하다.
볼커 모멘텀식 대응으로 'r스타(r*)' 금리가 'r스타스타(r**) 금리'보다 높아진 것도 부작용이다. r* 금리는 실물경기를 침체시키거나 과열시키지 않는 중립금리다. 반면 r** 금리는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을 훼손시키지 않는 또 하나의 중립금리다. r* 금리가 r** 금리보다 높아지면 금융시스템이 불안해져 스트레스 지수(SI)가 올라가고 위기가 발생한다.
특정국의 위기 발생 가능성을 파악하는 방안으로 스트레스 지수(SI)를 개발한 캐나다 중앙은행은 'SI를 시장과 정책당국의 불확실한 요인에 따라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피로도'로 정의했다. 경제변수의 기대값이 변하거나 분산이나 표준편차로 표현되는 리스크가 커지면 SI를 높이는 요인으로 꼽고 있다.
코로나발 인플레이션이 불거질 직전까지 20년 이상 저물가가 지속되는 여건에서 r* 금리와 r** 금리 간의 괴리는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 3월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실물경기 섹터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단기간에 급하게 올리는 과정에서 r* 금리가 높아졌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한다.
r* 금리가 r** 금리보다 얼마나 높아졌는가에 대해서는 추정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다. 분명한 것은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만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더 올릴 경우 두 금리 간의 격차가 벌어져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지금 수준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Fed만 하더라도 올해 안에 두 차례 금리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의 추가 금리인상으로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더 떨어져 세수가 부족할 경우 재정정책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도 통화정책 이상으로 중요하다. 만약 세금 인상과 공공서비스 지출삭감 등을 통한 긴축으로 대응할 경우 도심일수록 죽임의 도시로 내모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감세와 공공서비스 지출을 늘려 도심의 매력을 증대시켜야 한다는 방안이 제시됐다. 간단한 래퍼 곡선을 통해 살펴보면 대도시처럼 세율과 재정수입 간에 역비례 관계인 비표준지대에 놓여있는 여건에서는 세율을 낮추는 것이 경제 의욕과 도시 매력을 높여 상업용 부동산 가격하락을 막고 세수도 늘어나게 된다.
최근처럼 작년 3월 이후 각국의 금리인상으로 r* 금리가 r** 금리보다 높아진 상황에서는 인플레가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통제권에 들어오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경기부양' 쪽으로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인플레 목표치를 높이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올해 하반기 이후 경기와 증시가 나빠 보이지 않는 이유다.
나라의 근간을 정치논리로 이끌어가다보면 어느순간 자가당착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