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주수단이었던 IEEPA는 1977년 제정 당시부터 태생적으로 한계를 갖고 있었다. 자의성 개입 소지가 큰 만큼 '비상 상황'에 대해 포지티브 방식으로 명확하게 규정해 놓아야 하나 이마저도 없었다. 북한, 이란 등과 같은 테러 적성국에 대해 경제적으로 제재할 목적으로 사용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전 IEEPA를 거론할 때 '과연 지금이 비상 국면인가'에 대한 논란이 컸다. 오히려 상호관세를 부과한 내역을 보면 테러 적성국보다 전통적인 동맹국에 집중적으로 부과했다. 결국 법적 근거와 논쟁을 무시한 것이 나라 안팎으로 역풍을 맞으면서 플랜 A를 조기에 마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올해 하반기 들어 본격적으로 추진될 관세정책 플랜 B는 법적 근거부터 명확히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정책 성과에 목말라하고 조세 감세법 통과 과정에서 일부 공화당 의원의 이탈을 고려해 새로운 법을 제정하기보다 과거의 법을 부활하는 방식을 택했다. 목적도 '저항하면 더 세게 때린다'는 복수(revenge) 성격을 분명히 했다.
플랜 B의 3대 축을 보면 무역법 122조는 무역적자가 위험수위가 넘은 교역국에 대해 해소 목적으로 150일 동안 15%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일몰조항법이다. 목적이 달성되지 못하면 무제한 연장도 가능하다. 관세법 338조는 저항하는 교역국에 대해서는 아예 내놓고 50% 추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보복법이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은 비관세 장벽 해소에도 초점이 맞춰져 있다. 10대 비관세 장벽 중 관세를 무력화시키는 환율 조작을 최우선 시정 목표로 꼽고 있다. 집권 1기에 부활해 놓았다가 조 바이든 정부 들어 사문화된 슈퍼 301조를 다시 활용해 환율 조작국에 대해서는 200% 이상의 보복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트럼프 관세 협상의 실체는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함축된 '카멜레온식 유연성'이다. 플랜 B는 플랜 A가 한계에 봉착하자 부정 쪽으로 강화된 보완책으로 평가된다. 플랜 B를 근거로 교역국과의 협상 원칙도 ①사전에 여지가 없다 ②예외를 두지 말아라 ③세게 밀어 붙이라는 원칙과 톱다운, 패지지 딜, A-게임 방식은 그대로 유지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주목되는 것은 관세정책 플랜 B를 추진할 때 '스텔스 양적완화(QE)'를 병행해 추진해 나간다는 점이다. 플랜 A를 추진할 때 국채 발작이 일어나고 국채금리가 급등해 국가부도 위험이 커지는 등 관세정책 이상으로 부담이 됐다. 플랜 A보다 더 센 플랜 B를 추진할 경우, 국채시장 안정방안을 병행하지 않으면 또 한 번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스텔스 QE는 2022년 10월 이후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자산시장이 붕괴 일보 직전에 몰렸을 때 나온 정책이다. 당시 미국 중앙은행(Fed)과 제롬 파월 의장이 곤경에 처하자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만기 이전에 국채를 사주는 '바이 백(buy back)'과 '분기별 장단기 국채 발행 물량 조정(QRA)' 등으로 안정시킨 정책을 말한다.
올해 하반기 이후 미국 중앙은행(Fed)의 통화정책 프레임워크가 어떻게 변화되느냐도 주목해야 한다. 1913년 설립 이후 Fed는 물가 안정을 제1선 목표로 통화정책을 운용해 왔다. 1930년대 대공황, 1980년대 초 2차 오일쇼크 이후 들이닥친 스태그플레이션 등으로 고비를 맞은 적이 있지만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1선 목표를 잘 지켜왔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네트워크 산업의 부상으로 통화정책의 프레임워크가 변하기 시작됐다. 생산할수록 물가가 떨어지는 고성장-저물가의 신경제 국면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물가 안정 목표가 달성된 것처럼 착시 현상이 발생한다. 통화정책 목표와 프레임워크 간 불일치는 2008년 이후 금융위기로 귀결됐다.
급한 불이었던 금융위기 극복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2012년에 착시 현상부터 제거하기 위해 통화정책 목표를 바꾸었다. 양대 책무(dual mandate)로 물가 안정에 고용 창출 목표를 추가했다. Fed 역사상 100년 만에 가장 큰 변화였다. 그 이후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까지 통화정책을 되돌아보면 전자보다 후자에 더 주력해서 운용해 왔다.
종전의 금융 시스템과 시장이 작동되지 않는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통화정책 목표와 프레임워크 간 불일치를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는 상황까지 내몰았다. 인플레이션이 경기와 같은 총수요 요인이 아니라 공급망 붕괴와 같은 총공급 요인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때 도입됐던 것이 '유연한 평균물가목표제(FAIT·Flexible Average Inflation Targeting)'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끝난 지도 어느덧 2년이 지나간다. 무너졌던 금융 시스템(특히 통화정책 전달경로)과 시장도 어느 정도 복원됐다. 과도기 성격을 띠었던 FAIT를 폐지 혹은 어떻게 개편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자연스럽게 논의할 때가 됐다. 올해 8월에 열릴 잭슨홀 미팅에서는 이 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으로 공급 인플레이션 여건이 지속되고 있는 점이다. 금융 시스템과 시장이 작동되는 여건에 FAIT를 지속해 나가면 정책금리와 시장금리가 따로 노는 수수께끼(conodrumn) 현상이 발생한다. 작년 9월 이후 정책금리를 100bp(1bp=0.01%포인트) 내렸는데 10년물 국채금리는 100bp 올라가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통화정책 프레임워크를 변경하는데 전제돼야 할 것이 '수익률 곡선 통제(YCC·Yield Curve Control)'를 도입할 것인가 여부다. 금융시장 효율성을 보장하는 정책금리와 시장금리 간 격차를 ±0.5% 포인트로 설정해 놓았을 경우 상단을 벗어나면 국채를 매입하고, 하단 밑으로 떨어지면 국채를 매각에 국채금리를 밴도 폭으로 수렴시키는 방식이다.
양대 책무 중 고용 창출 목표의 대리변수(proxy)인 실업률은 도입 당시 3.5%에서 4%로 상향 조정해 통화정책을 운용해 왔다. 물가 상승률과 실업률 간 역(逆)의 필립스 관계가 유지되는 여건에서는 실업률을 상향 조정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물가 안정 목표를 달성하는 데 주는 간접적인 효과가 크다.
남은 것은 물가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는 '인플레이션 타겟팅'이다. 총수요 요인에 물가가 오르는 여건에 설정됐던 2%는 최근처럼 총공급 요인에 의해 물가가 오르는 여건에서는 지나치게 낮게 설정됐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여건도 됐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제안했던 4%에 공감대가 두텁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올해 하반기 이후에는 지니어스법, 즉 스테이블 코인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됨에 따라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국민의 화폐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해야 한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의 골격은 이렇다. 대상 코인의 가치는 미국의 국채를 담보로 하되 달러화와 1대 1로 태환을 보장해 안정시킬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브레튼 우즈 체제의 금 본위제와 비슷하다. 금이 코인으로 바뀔 뿐이다.
한동안 전략자산 비축안을 검토하다가 이 안을 선택한 것은 트럼프 정부가 당면한 대내외 현안이 워낙 급하기 때문이다. 다가온 X-date(국가부도 예정일)를 앞두고 국채 텐트럼이 발생하고 국채금리가 올라가는 것을 좀처럼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달러 가치도 너무 떨어져 기축통화 지위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마저 돌고 있다.
지니어스법과 함께 시행에 들어갈 신시아 루이스 시나리오대로 라면 현재 20만 개 내외인 비트코인 보유를 100만 개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실행만 들어가더라도 가장 시급한 국채 수요를 늘려 국채 발작을 방지하고 국채금리를 안정시킬 수 있다. 중국 국채 매각과 하반기에 불가피하게 늘어난 국채 발행에도 대처할 수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구상하는 디지털 달러화(CBDC)와 별도로 스테이블 코인이 활성화되면 디지털 달러라이제이션이 빠르게 진전될 확률이 높다.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를 통한 기축통화 야망이 법정 화폐 단계에 왔더라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 보유량 증대 과정에서 가격이 높아진 비트코인을 차익 실현하면 재정적자와 국채 채무를 줄일 수 있는 효과도 기대된다.
트럼프 정부가 가장 주력하고 있는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작년 말 뉴욕 증시 개장을 알리는 오프닝 벨에 초청된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가 이례적으로 주식보다 가상화폐를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대선 자금 보답 차원에서 언급한 종전과 달리 중국 견제 수단으로 가상화폐의 중요성을 분명히 했다.
구분 | 해당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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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공식 도입 | 해당 국가바하마, 동카리브, 나이지리아, 중국 등 |
구분시범 운용 | 해당 국가우크라이나(러시아와 전쟁으로 중단), 우루과이 등 |
구분모의 실험 | 해당 국가한국, 대다수 유럽연합 회원국, 일본, 스웨덴, 러시아, 터키 등 |
구분기초 연구 | 해당 국가미국(트럼프 당선 이후 사실상 중단), 영국, 캐나다, 호주, 노르웨이, 태국 등 |
자료: 한국은행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민간에게 맡길 경우 물가 안정은 어떻게 도모하고 시뇨리지(seigniorage·화폐 발행 차익)는 누가 가져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따른다. 투기, 불법 거래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금융 시스템도 불안해진다. 최악의 경우 권력층의 부정부패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스테이블 코인과 함께 '준비자산(resreve asset)'과 '전략비축(strategic stockpile)'으로 코인을 설정하는 문제도 계속 검토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자는 기존 외화 보유 자산인 금 등으로 가상화폐를 대체하는 방안이지만 Fed가 허락하기는 쉽지 않다. 트럼프노믹스 2.0의 가이드라인인 '프로젝트 2025'에 Fed의 폐지 혹은 개편안이 담긴 것도 이 때문이다.
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단독으로 추진할 수 있다. 전략비축이란 국가 안보와 국민 경제생활에 직결되는 핵심 자산을 보유하는 것을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회원국에게 3개월 치 원유를 전략비축 자산으로 보유할 것을 권하고 있다. 가상화폐가 중국 견제 수단으로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하면 얼마든지 전략비축 자산에 포함될 수 있다. 가상화폐가 전략비축 자산에 포함되면 법정통화인 달러를 담보로 하는 스테이블 코인과 비슷한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끄는 국민주권정부가 출범한 이후 원화의 스테이블 코인 도입 방안이 전향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과 마찬가지로 우리 국채를 담보로 원화와 태환성이 보장되는 방안이다. 국채의 담보력, 중심통화 위상 등을 고려하면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 더 선호될 확률이 높아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도 재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도 변해야 한다. 앞으로 전개될 디지털 화폐 시대에 맞게 한은 목표를 물가 안정에만 고집할 것인가를 검토하고 통화정책의 생명인 '선제성(preemptive)'을 잃지 않는 방안도 보완해 놓아야 한다. 경기순환 주가의 '단축화(shortening)'와 진폭의 '순응성(procyclicality)'에 통화정책 수단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시장과의 교감 차원에서 우리도 점도표 등을 공식적으로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이밖에 디지털 시대에 통화정책의 유용성을 높이기 위해 경제 예측력 제고, 새로운 통화지표 개발, 코인 등 대안화폐 활성화에 따른 법화의 통화유통속도와 통화승수 무력화 방지, 통화정책 전달경로 상 중간 표적변수 개발, 통화정책 관할 범위 확대, 리디노미네이션 단행 여부, 중앙은행 독립성과 중립성 유지 등 다양한 과제를 사전에 준비해 놓아야 한다. 분명한 것은 정책금리 변경만을 놓고 만지작거릴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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