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본격적인 무더위가 열리는 7월이 다가왔습니다. 이번 년도에는 여름이 길어지고 무더위도 심하다고 합니다. 탈 없이 여름 날 수 있도록 건강 잘 챙기시고 휴가 가시는 분들은 즐겁게 여름휴가를 다녀 오시길 바랍니다. 지난 글 말미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스페인에 대해 다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세계대전 이후 스페인의 모습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 보겠습니다.
국제적으로 고립된 스페인
스페인 프랑코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축국에 가담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청색사단을 의용군 형태로 파견하는 등 사실상 참전을 했기 때문에 승전국인 연합국 시선이 곱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는 전쟁이 끝나기 전에 감지됐는데,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1945년 종전이 임박한 시점, 마드리드에 대한 미국 주재대사를 통해서 독재자가 권력을 유지하는 한 지원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할 것을 전달했습니다.
특히 국제연합(UN) 창설 시가 문제였는데, 1946년 유엔은 스페인 정부를 유엔이 설립한 국제기구 및 회의에서 제외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아울러 스페인에 새로운 정부가 수립되지 않을 경우 안전보장의사회가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으며, 스페인에 파견된 대사들 역시 즉시 철수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아울러 미국이 유럽의 방위 및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설립하고 마셜플랜으로 서유럽 국가들을 전격적으로 지원하기로 하자, 프랑코는 NATO 가입 및 마셜플랜 지원을 강력히 희망합니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은 독재국가인 데다 2차 대전에서 추축국을 지원한 스페인과는 같은 배를 탈 수 없다며 적극적으로 반대했고, 미국에서도 스페인에 대한 부정여론이 발생하며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이로 인해 가뜩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스페인은 세계대전 종결 후 국제적으로 더욱 고립되면서 어려움이 심화됩니다.
내수 악화로 인한 어려움
유로존의 과거 부채 국가들이 PIGS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스페인의 경제가 유럽의 타 국가들에 비해 늦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경제제재였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전쟁을 치렀어도 미국의 적극적인 마셜플랜으로 인해 경제 회복이 빠르게 이루어진 반면, 내전으로 고통받았던 스페인은 초기에는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스페인도 무역을 아예 못하고 한 것은 아니고, 아르헨티나 등 일부 국가들과 거래는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미국 및 서유럽 국가 외의 교역은 제한이 극심했고, 결국 스페인 경제는 자급자족 위주로 흘러갔습니다.
단, 전체 산업이 어려움을 겪은 것은 아니고 건설업 등은 성장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내전 중에 스페인의 기간 인프라는 대부분 파괴되었기 때문에 재건이 필요했고, 스페인의 건설사들은 전후 경제의 수혜를 입게 됩니다.
냉전 이후 미국의 분위기 변화
하지만 스페인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냉전(Cold War)의 시작입니다. 승전국이었던 미국과 소련은 각자 정치체제의 차이 등으로 즉각적인 전쟁은 아니지만 냉전에 돌입했고, 미국의 기조 역시 공산주의의 확산을 견제하고 제1의 국가가 되는 데 주력하게 됩니다.
이에 맞춰 프랑코는 스스로를 반공투사로 포장해 선전합니다. 프랑코가 이끌던 팔랑헤당은 여러 복잡한 세력이 한 데 섞였다 프랑코 1인 체제를 옹위하는 것으로 변모했으나 공산주의의 참여는 없었습니다. 반면 과거 스페인과 싸워 최종적으로 패배했던 공화국 정부는 소련의 지원을 받은 데다 다수 공산주의 세력들이 포함됐습니다.
실제로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스페인 프랑코는 미국에 대규모 파병 지원을 약속하며 대한민국을 돕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 참전이 프랑코 독재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명분이 될 수 있다는 미국과 유럽의 반대 끝에 스페인의 파병은 결국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냉전이 지속되면서 미국 트루먼 정부는 스페인의 고립 탈피에 고심하게 됩니다. 미국 내에서는 언젠가 미국과 소련이 전쟁을 벌이게 되면 유럽의 방위를 위해서 스페인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조금씩 조성되고 있었습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